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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거나 뻔한 이야기(6) / 기억의 저편
게시물ID : readers_343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수와영이
추천 : 1
조회수 : 22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12/03 21: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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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칙칙한 하늘은 그냥 그대로 있었다. 수많은 차량들도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내닫고 있었다. 이제 여자의 입을 통해서 쏟아지는 강화도라는 말은 낯설지가 않다. 여자에게 강화도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굳이 딴청을 피울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시간이 넉넉한 탓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강화도를 가면? 드라이브를 즐기다가 조금 해가 주저앉으면 적당한 어느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할 것이고 그리고 다시 그 지루한 길을 돌아와야 할 것이다. 그건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는 참으로 무모한 짓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여자가 강화도를 가자고 하는 데는 나름의 까닭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여자는 운전대를 다잡으며 앞을 주시하고 있었다. 여자의 옆얼굴이 보기 좋게 홍조를 띠고 있었다. 여자는 자기의 농담에 남자가 우물거리며 난처해하는 모습을 즐기는 것 같았다. 도로 주변이 황량하게 느껴졌다. 주변은 벗은 몸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공룡 같은 거대 도시에도 아직 개발이 안 된 곳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다. 그러나 그곳도 얼마 지나지 않아 크고 작은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설 것이다. 도회의 사람들은 빈터를 그냥 보아 넘기는 법이 없다. 그들은 언제나 탐욕의 눈을 번뜩인다. 그들의 눈빛이 서치라이트 마냥 훑고 지나면 그곳은 신기하게도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말뚝이 쳐진다. 이어 투기바람이 몰아치고, 그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일확천금을 노리고 또 다른 눈을 번뜩인다. 그 사이 빈부의 격차는 점점 심해진다. 그로인해 세상이 소란스러워지면 그제야 정책 당국자는 예전에도 수도 없이 내놓았던 정책들을 다시 책상 서랍에서 끄집어낸다. 그리고는 몇 번의 가위질이 오가고 마침내 새로운 정책으로 둔갑을 한다. 재미를 본 사람들은 이미 그 일에 익숙해 있지만 한동안은 숨을 죽인다. 정책이 감추고 있는 덫이 어떤 것인지를 파악하기 위함일 것이다.
 
아무리 의식 있는 사람들이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걱정해도 그건 그 때뿐이다.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망각에 길들여져 있다. 그저 며칠만 지나면 이내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참 편리함이 생활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건 우리의 삶의 터전과 무관하지 않을 우리들만의 굴레 같은 것이다.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나 우리나라의 역사는 민초들의 입장에서는 피란의 역사이다. 역사 이래 수많은 전란이 있었고 거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저 달아나는 길 밖에는 없었다. 당연히 달아나지 못한 자는 죽임을 당했거나 온갖 굴욕으로 몸을 떨었다. 세상을 뒤엎을 듯한 난리가 휩쓸고 지난 자리로 도망갔던 사람들이 되돌아오면 마을은 언제나 폐허였다. 남은 것이라고는 벼 한 톨도 없었다. 어쩌다 도망하지 못한 사람들의 굴욕스러운 삶만이 여기저기 추한 모습으로 널려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통곡하고 또 통곡했다. 그러나 산 자는 어디까지나 산 자이다. 산 자가 살기 위해서는 그들의 쓰린 그 동안의 기억을 잊어야 했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은 현실이다. 사람들은 아무도 지난 일을 입에 담지 않는다. 지워야만 했다. 그건 불문율이었고 묵시적으로 약속된 삶의 방식이었다. 그런 탓에 망각은 우리들의 삶의 원천이 되었다. 강한 망각의 유전적 특질은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만 고유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러한 망각이 이제는 도덕적 해이를 동반하고 생활의 전반에 넘쳐난다. 그런 사회 분위기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말세라고 했다.
여자가 남자 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눈빛으로 대답을 강요하는 것 같았다. 왜 여자는 강화도를 거듭 말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남자는 딱히 거절할 구실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럽시다.
-정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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