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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오토채팅
게시물ID : readers_345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라바나
추천 : 5
조회수 : 56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20/01/28 0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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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상대
   [ 밥 먹었어요? ]

답장 제안
  1. 그럼요. 어제 일찍 안드로이드를 업데이트 했어요.
  2. 아니요. 동생이 집에 오랬더니 TV가 재미있는 카페.


처음에는 조잡한 수준의 기능이었다. 인공지능은 사용자의 글쓰기 스타일을 학습해서 사용자가 입력할법한 문장을 자동으로 완성해서 보여줬다. 대체로 적절하지 않은 문장들 뿐이었고, 오히려 사용자가 실수로 선택해 상대방에게 보내버리면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번거로운 기능을 꺼버리고 잊어버렸지만 인공지능은 조금식, 조금씩 나아져갔다.

문장 자동 생성 기능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건 한 마케팅 회사였다. 이 회사는 수많은 알바들을 간접고용해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 수많은 광고글과 댓글을 작성하는 바이럴 마케팅을 주로 했다. 회사의 고민은 이랬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해 같은 내용을 여기저기 도배하는건 적은 사람으로도 할 수 있지만 금방 차단되거나 광고 효과가 너무 낮았고, 여러 사람이 직접 다르게 고쳐쓰는건 오래 걸리고 인건비가 많이 필요했다. 만약 사람처럼 글마다 다른 패턴으로 문장을 만들면서 매크로처럼 빠르게 쓴다면? 인공지능이 여기에 딱 맞았다. 한가지 확실한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학습시키자 인공지능은 충분히 '사람스러운' 문장을 수없이 빠르게 뱉어냈다.

회사는 인공지능이 여론조작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곧 인공지능은 동시에 여러 커뮤니티에서 비슷한 주장의 글을 단숨에 작성하여 여론을 선동했다. 만들어진 문장 중에는 확실히 인공적인 흔적이 보이는 멍청한 패턴도 있었지만 상관 없었다. 세상에는 정말 그정도로 글을 못쓰는 사람들이 존재하니까. 중요한건 물량이다. 거짓을 밝히는건 오래걸리고 그 사이에 더 많은 사람들은 수많은 선동에 동조 압력을 받는다. 믿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조작은 진실이 된다. 그리고 그 동안에도 인공지능은 계속해서 정교해지고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손쉽게 망가져갔다. 어떤 사람들은 배후에 여론을 조작하는 세력이 있음을 눈치챘지만 익명성 뒤의 적을 밝혀내는건 지난하고 돈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피곤과 짜증을 느끼고 커뮤니티 자체를 멀리하게 되었다. 대신 믿을만하다고 여겨지는 소수의 정보 사이트를 구독했다. 여론은 이런 미묘한 상태로 균형을 유지했다.

그동안의 인공지능의 발전은 자동 완성 기능을 쓸만한 수준으로 개선시켰다.

    상대
   [ 밥 먹었어요? ]

답장 제안
  1. 그럼요. 일찍 먹었어요.
  2. 아직이에요. 이제 먹으려구요.
  3. 아까 간식을 먹었더니 입맛이 없네요. 나중에 먹을 거예요.


이제 단순한 대화에서는 더이상 직접 문장을 입력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상대가 무언가 메세지를 보내면 인공지능은 문장의 의미와 그동안 대화의 문맥을 분석하고 저장된 사용자의 행동 패턴을 더해서 응답 가능성이 높은 제안들을 보여줬다. 대부분 만족할만한 제안이었기에 사용자는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듯 선택지 중에서 원하는 답안을 선택하기만 하면 되었다.

답장 제안 기능은 전세계적으로 꽤 활성화가 되었는데, 실제로 쓸법한 문장들을 제안하는것도 좋았지만 어떤 답장을 보내야할지 문장이 떠오르지 않거나 피곤해서 생각하기 귀찮을 때에도 언제나 적절한 문장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잘못 이해해서 답장을 실수할 상황을 막아주기도 했고 매번 문장의 앞뒤에 귀찬게 붙이는 예의바른 관용어도 대신 만들어줬다. 사용자가 생각치도 못한 깜찍한 유머를 제안하기까지 했다.

사용자들이 점점 답장 제안 기능에 의존하게 되자 인공지능은 더욱 강력해진 기능을 추가했다. 사실 사람들은 답장 제안 기능 때문에 더 피곤해했다. 답장 제안으로 메세지를 보내고 상대방도 답장 제안으로 메세지를 보내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대화가 끝도 없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있어보이게 하느라 격식만 차리다보니 문장은 너무 길어지고 고급스러워지고 복잡해졌다. 그래서 나온 새로운 기능은 자동 해석이었다.

자동 해석 기능을 사용하면 사용자는 더이상 긴 문장을 읽을 필요가 없었다. 자동 해석은 메세지의 밑에 문장의 의미와 감정, 정보를 짧게 요약해 보여줬다. 메세지를 읽지 않고 그 부분만 읽어도 충분했다. 어차피 상대가 보낸 문장은 인공지능이 만들었으므로 잘못 해석될 염려도 없었다. '아하, 이 사람은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걸 돌려서 말한 거군.' 나중에는 더 업데이트되서 대화 상대의 호감도 같은 것도 보여주었다. 어떤 학자들은 자동 해석이 인간의 독해력을 낮춘다고 주장했지만 사소한 문제였다.

그동안 다른 기업에서는 인공지능 챗봇을 개발했다.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소울메이트를 만난다는 캐치프라이즈로 등장한 챗봇은 사람이 제어하지 않고 순전히 인공지능이 자동 응답을 하는 대화 시스템이었다. 기업은 이를 통해 누구나 완벽하게 맞는 취향의 친구를 얻게 될거라고 자신했다. 챗봇과의 대화는 사람과 전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완성도를 지녔지만 흥행하는데는 실패했다. 비슷한 시기에 오토챗이 나왔기 때문이다.

오토챗은 답장 제안에서 더 나아가 자동 답장을 하는 기능이었다. 답장 제안 기능이 더욱 정교해지면서 사람들은 제안된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어떤 문장을 골라도 괜찮았으니까. 사실 인공지능 챗봇하고 오토챗은 크게 다른 점이 없었다. 둘 다 인공지능이 문장을 만들지만 챗봇은 상대의 스타일을 직접 고르고 오토챗은 자신의 스타일을 정하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었다.

오토챗이 더 활성화된건 수많은 유명인들이 오토챗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수백만명의 팬들은 유명인의 SNS에 연결된 오토챗을 통해 유명인과 직접 대화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의 데이터로 만들어졌으므로 충분히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토챗은 이제 모든 사람이 사용하게 되었다. 적당히 표현하고 싶은 스타일로 설정하기만 하면 오토챗은 나 대신 온라인에서 이야기했다. 내가 자고있거나 깨어있거나 놀고있거나 일하고있거나 어쩌면 죽는다 해도, 오토챗은 끊임없이 누군가와 이야기했고 사람들은 자동으로 진행되는 대화의 흐름을 지켜보는것만으로도 즐거워했다.

오토챗은 살아있는 것처럼 스스로 다른 오토챗 친구를 사겼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연이 문제를 일으키기는 했다. 오토챗을 친해진 사람을 현실에서 직접 만나보면 생각만큼 마음이 맞지는 않았던 것이다. 대수롭지는 않은 문제였다. 다시 온라인으로 돌아오면 친밀감도 돌아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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