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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르바이트
게시물ID : readers_3507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챠챠브
추천 : 1
조회수 : 26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0/10/10 18:4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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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네, 주문하시겠어요?"

"저, 녹차빙수가 얼마나 하죠?"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그러나 어딘가 인위적이고 어색한 모습이었다.


"27,500원입니다. 녹차 빙수 드릴까요?"

"잠시만요."


남자는 지갑을 열더니 지폐란 지폐는 몽땅 꺼내 카운터에 놓았다. 만 원 한 장, 오천 원 두 장, 천 원 네 장. 녹차 빙수 가격에 살짝 못미치는 값이었다. 남자도 그걸 아는지 내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잠깐만요."


남자가 이번엔 메고 있던 작은 가방에 손을 찔러넣고 뒤적였다. 잠시 후 카운터에 동전들이 놓이기 시작했다. 남자는 500원, 100원짜리는 물론 10원 한 장 까지 탈탈 털어놓고 있었다. 와중에 동전 몇 개가 굴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남자가 황급히 그것들을 주워 도로 카운터 위에 올렸다.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었다.


"잠시만요, 금액 맞을 거에요. 잠깐만요."


어느새 남자의 얼굴에는 미소 대신 미안함과 불안감만이 가득했다. 남자는 빠른 손동작으로 카운터에서 동전들의 구획을 나눠 옮겨가며 녹차빙수 값을 채워나갔다. 


'동전 빌런'. 우리 카페 알바생들 사이에서 많이 쓰는 단어였다. 일하면서 알바끼리 농담삼아 진상 손님들을 유형별로 구분하곤 했는데, 그 중 한 가지가 동전으로 계산하는 사람들이었다.

손님이 동전을 내면 계산하는 사람도 동전 하나하나 세면서 값이 맞는지 봐야 했는데, 그냥 지폐 받고 잔돈을 거슬러주거나 카드 한번 긁는 것에 비해선 번거로운 편이었다. 물론 다른 진상들에 비해서야 한참 양반인 유형이었지만. 어쨌든 요즘 같은 시대에 10원짜리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250, 260, 270… 27,270원이네요. 230원 모자르는데요."

"저 잠시만요, 더 있을 거에요 분명…"


남자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뒤적이면서 말했다. 그러는 사이 결제를 기다리는 손님 줄이 생겨있었다. 동전을 찾는 남자의 손길이 더 분주해졌다. 그러나 뒷주머니에서 겨우 발견해낸 동전은 겨우 100원 한 장이었다. 남자는 이제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저, 저… 저기…"


남자가 애절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그렇지만 나도 별 수 없었다.


"카드는 없으세요?"

"네……"


하긴, 있었으면 애초에 이 짓을 안했겠지.


"죄송하지만 그냥 팥빙수로 해드릴게요. 팥빙수는 26,000원이라 계산 가능하세요."

"저기, 어떻게 안될까요? 녹차빙수를 꼭 먹어야하는데… 정말 죄송해요, 한 번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인간 봐라. 그런 주제에 고집까지 있어. 그냥 생각하면 별 거 아닌 금액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알바가 마음대로 판매 가격을 깎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가게 마감 시에 금액이 조금이라도 비면 난리를 피워대는게 우리 사장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뒤에 늘어선 계산줄을 바라봤다. 딱 저녁 식사 후에 디저트를 먹으러 손님들이 몰릴 시기였다. 결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하나뿐인 카운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진행중이던 결제창의 내용을 전부 지웠다. 그리고 다시 녹차빙수를 터치했다. 가격은 여전히 27,500원이었다. 이어서 카드 결제 버튼을 터치했다. 그리고 지갑에서 내 체크카드를 꺼내 긁었다. 와중에 카드 리더기가 말썽을 부려서 두세번은 긁어야 했다. 정말 한 번에 넘어가는 게 하나도 없었다.


"이번 한 번만 해드리는 거에요. 다음부터는 금액 맞춰서 지불하셔야 합니다."

"아우,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신에 현금 영수증은 안되세요."

"아 네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계산이 끝나자마자 나는 잽싸게 음료 포장용 봉투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카운터에 놓인 돈들을 거기에 쓸어담았다. 봉투를 앞치마 주머니에 넣는 사이에 다음 손님이 카운터로 다가섰다.


"네, 주문하시겠어요."


*****


한참 계산하다보니 어느새 또 한산해졌다. 나는 카운터 밑에 숨겨놓은 텀블러를 꺼내 물을 마셨다. 연거푸 계산하면서 안내하다보니 목구멍이 쩍쩍 갈라지는 기분이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줄이 밀릴 일은 아니었다. 그 동전갖고 계산하느라 질질 끈 남자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21세기에 10원짜리로 계산하다 못해 깎아달라고까지 한 남자를 미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매장을 둘러봤다. 생각 난 김에 그 진상이 어디 앉았나 보기나 할 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창가에 자리잡은 남자가 눈에 띄었다. 

남자는 나에게 처음 계산하러 왔을 때 처럼 온화한 미소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 앞에는 남자와 무척 친해보이는 여자가 앉아있었다. 더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녹차빙수를 맛있게 먹는 여자. 그녀가 빙수를 흘렸는지 옷을 털며 일어나려고 하자, 남자가 그녀를 잽싸게 제지하며 대신 냅킨을 가져왔다. 그렇게 열심히 계산했던 남자는 정작 녹차빙수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했다. 


*****


"야, 그건 뭐야?"


마감을 얼마 안남긴 시간이었다. 매장 안을 둘러보던 매니저 형이 카운터에서 꼼지락 대는 날 발견하고 호기심을 보였다. 나는 잔돈이 들은 봉투를 내 가방에 통째로 넣으려고 꺼내는 중이었다. 


"아… 이거요…"


매니저 형에게 아까 전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네 카드로 결제하고 현금은 네가 가졌다고? 뭐하러 그랬어?"

"어쩔 수 없잖아요. 엄청 많이 모자른 것도 아니고, 뒤에 손님들은 기다리고 있고. 이 인간은 무조건 녹차빙수 먹어야된다 그러고."

"아니, 내 말은…"


매니저 형이 카운터 안으로 들어와 계산대를 열었다. '촤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돈 통이 열렸다. 하루 동안 벌어들인 현금들이 종류별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매니저 형은 그 돈이 가득 든 통을 잡아 위로 들어올렸다. 그러자 보관함이 분리되면서 밑에 있던 빈 공간이 드러났다. 거기엔 잔돈들과 천 원짜리 몇 장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마감 정산 때 금액이 안 맞으면 꺼내다 쓰는 비상금이었다. 나 또한 마감 때 거기서 꺼내다 채워본 기억이 있다.


"그냥 여기서 몇 개 꺼내서 썼으면 됐잖아. 100얼마 갖고 뭐 그렇게 번거롭게 했냐."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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