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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 수목원
게시물ID : readers_350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ㅋㅋ루삥뽕(가입:2019-07-06 방문:212)
추천 : 2
조회수 : 307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20/10/13 05:4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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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달리는 차에서 본 억새밭은 단체로 흔드는 하얀 손수건을 연상시켰다

8월 말 다녀온 근교 산지에 있는 사립 수목원은 이미 폐업한 곳이었는데 문을 닫기 전 예전에야 종종 가봤지만

이번에 거기에 가보기로 한 데에는 휴일을 집에서만 보내기가 지루했던 탓도 있고 코로나 때문에 인파를 피해 마땅히 갈 데가 없어서였다

혼자 가볼 만한 곳을 물색하다가 어느 블로그에 폐유원지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고는

그런 시간이 멈춘 듯한 장소의 아련한 맛이랄까 마음에 들어서 아무래도 위치가 익숙한 비슷한 데로 정한 것이었다

기억난 김에 왜 망한 지 찾아본 지역신문 기사에 따르면 수익성 감소세 타개책으로 리모델링을 하여 재개장할지를 두고

운영사와 투자사 간 협의가 불발에 그친 사정이 있었다는데 좌우간

도착한 주차장에도 산림화한 조경수가 에워싸여 타이어가 묻히게 쌓인 낙엽 더미가 그동안 인적이 끊겨왔음을 여실히 반영했다

도장이 바랜 철재 뼈대의 관문엔 장미 아치가 폭염에 강하단 말이 무색하게 말라붙어

입구에서부터 지역의 흉물로 방치된 실태가 적나라하단 인상이었고

철골에 갈라지는 한 줄기 바람이 작지만 구슬픈 휘파람으로 들려 스산한 기운을 고조시켰다

안전사고에 유의해 빨간 글씨로 출입 엄금이라 경고문 붙인 입간판이 페인트통에 굳은 시멘트 덩어리와 사슬로 매여 고정돼 있었지만

그냥 무시한 채 그 경계를 넘는단 생각으로 발을 내딛자 새삼 흙먼지가 오도독 짓밟히면서 내가 내는 소리만 유난히 커지는 느낌이었다

가까운 부스가 매표소였단 걸 짐작하며 푯값은 필요하다면 유람 중에 사소한 액땜으로 치러지리라 셈 치고 원내로 들어섰다

누렇게 괴사한 잔디밭을 가로지르는 벽돌길을 따라 가에 늘어선 화단의 흔적엔 검버섯이 진 묵은 잡초가 군락을 이뤘고

자리싸움에 밀려 드문드문 생존한 서너 가지 원예종 꽃은 수분 없이 칙칙하게 빛깔을 겨우 건사한 상태였다

민속놀이를 본떠 볼거리로 심심찮게 배치된 목조각들, 방앗간서 뚝 떼온 사용흔이 묻어난 물레방아 바퀴 옆 초가지붕 정자와 장독모형 의자

그리고 나뭇등걸과 고사목을 재활용한 정형화되지 않은 매력의 벤치 등 마련된 설비는 한때 천연림과 조화를 이룬 휴양시설에 걸맞게

금속성 노출은 줄이면서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시골 마을이 그려지게 조형에 공들인 티가 역력했으나

주위엔 지난 몇 해 다녀간 태풍의 피해로 생겼을 잔해가 널브러져 이제 모든 게 헛돼 보이는 착잡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수익금 일부를 기부한단 젊은 예술가들의 공예품을 구경한 기억이 나는 야외 바자회가 열던 구간 곳곳엔 마대째 내버린 쓰레기가 산적했다

손님을 그늘로 맞이하기 위해 가판대별로 쳐둔 천막이 그대로 있어 하나같이 꽃가루를 얇게 펴 바른 듯한 땟자국이 덕지덕지 슬었고

지지대도 크기를 조절하는 부위가 망가지거나 대체로 조금씩 휘어서 기우는 걸 버티는 모양새라 조만간 줄줄이 쓰러질 거 같았다

이따금 바람이 나직이 스치면 허공엔 불에 탄 재의 티끌처럼 바싹 타서 부스러진 낙엽이 미세하게 일어 호흡기에 병드는 기분이었다

다채로운 자갈로 적당히 울퉁불퉁 수놓은 보행로는 곡선이 다양하게 교차한 도안으로 창의력을 발산하여

먼저 눈이 발밑에 집중되는 지압 효과를 받았다. 돌기가 있는 깔창을 밟는 거처럼 꾹꾹 눌리는 게 묘하게 걸음을 이끌었다

뭉툭하게 닳은 연필심처럼 끄트머리가 다듬어진 판자로 세운 펜스가 둘러싼 토끼풀 뒤덮인 뜰에

파라솔 딸린 접이식 탁자들로 보와 취식 서비스를 제공한 카페였지 싶은 복층 목조 별장이 들어서 있었다

통나무를 눕혀 쌓아 올린 집은 나무껍질 고유의 거칠지만 소박한 질감을 통해 주변 낙엽수림과 동화된 건축미를 살렸고

벽과 벽이 깍짓손처럼 맞물린 모서리에 드러난 나이테가

커피잔 속 크림을 저어 녹아들듯이 표현돼 아늑한 전원 카페의 정취를 한결 더했지만

짧은 감상이 지나 유리창이 대부분 박살 나 있단 흠 때문에 흉가라는 이미지로 뇌리에 굳기 충분했다

호기심을 유발하는 집 안으로 들어가자 온도 차로 갇혀있던 공기가 약간 서늘하게 살결에 쓸렸다

실내에는 부서진 진열장의 파편이 밟히며 신발 뒤축을 떼는 소리가 울렸다

침침하긴 했지만 현관문을 열어 고정해둬서 햇빛이 저변에 번지는 것으로 그럭저럭 시력이 적응해 두리번거리다가

희미한 그러나 뒤끝이 긴 곰팡내와 함께 웬 물방울이 얼굴에 뚝뚝 떨어지길래 올려다본 천장은 채광이 안 닿아 플래시를 켰고

팔을 들면서 의도치 않게 계단을 비췄더니 몇 칸 위 난간 옆에 우두커니 선 등신대의 형체가 구석진 위층으로 사라졌다

눈을 의심한 찰나 사람과 혼동시했으나 누군가 있었단 건 가능성이 없다시피 한 정황상 억지로라도 이성적으로 판단하건대

그림자는 과장돼 보이기도 하니까 정체는 야산에서 내려온 들고양이나 됐겠다고 되뇌어봤지만 어둠에 대한 무서운 상상력은 본능이었다

범위가 시원찮은 핸드폰 불빛에 걸려든 상반신으로 제한된 형상이 꼽추처럼 웅크렸던 거로밖에 머릿속에 반복 재생돼

그것과 건물 내에 있을 거라 염려되자니 덜컥 겁먹고 뒷걸음이 쳐졌다

제풀에 자빠져 찧은 무릎이 아팠는지도 모르게 허둥지둥 집을 뛰쳐나와 펜스 밖으로 거리를 벌린 후 돌아봤는데

훤한 대낮 덕분에 복도가 좀 들여다보인 창가에 비해 위층 복도 끝쪽의 한 깨진 창 너머만은 안을 전혀 알 수 없게 새카맸다

평범한 어둠과는 달리 이질적으로 검은 현상을 주시할수록 공간 자체가 문제의 창 위주로 끌어당겨지듯 집이 커 보였다

안 믿는 귀신이라도 마주친 양 주눅 들어선 맥을 못 춘 사실이 못내 한심했지만 도망가란 신호를 준 본능이 현명했을까?

폭양에 눈부시면서 살갗을 태우는 더위가 현실처럼 돌아오자 그제야 나무 아래서 주저앉으며 자조 섞인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말복이 막 지난 한창 무르익은 여름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분산되는 햇살마저 따끈한 정오 무렵이었다

멍이 집히는 무릎이 불편하면서 천천히 일어서는데 오만상이 지어지게 관자놀이가 지끈 쑤시더니

수초 간 지속한 차량 경적 같은 이명이 귓가에 어찌나 쟁쟁하던지 균형을 못 잡고 어지러운 와중에

몇 발짝 떨어진 전신주의 음향 장치가 공교롭게도 눈에 들어와 진짜 사이렌이 울렸는가 한 착각이 들었다

고철이나 다름없는 앰프에서 노이즈가 맴돌았다고 상식과 동떨어진 실감이 든 데 대해서는 이내 침착히 신경을 껐으나

한편으론 통나무집 현관에 부착된 하필 날 향해있는 CCTV 카메라를 의식해서

작동 중일 리 없다고 당연한 걸 곱씹는 게 황당키도 하면서도 괜히 초조해져 서둘러 자릴 벗어나야 좋을 성싶었다

멀리서부터 수풀에 스친 바람이 뱀이 위협하는 소리를 흉내 내며 등 뒤를 덮쳤다

바짓단 속으로 풍부하게 휘감기며 식은땀을 훑는 일련의 자극에서

아주 예민해져 있던 탓이었는지 촉각이 제 기능을 넘어서 기분 나쁘게 마치 다리에 뱀이 기어올랐다고 느껴

정말로 발이 묶인 거처럼 잠깐 안 떼어졌다. 스트레칭을 하고 자리를 떴다

북한강 줄기를 이어받은 습지 둘레에 정렬한 메타세쿼이아가 회랑처럼 일정 간격으로 태양을 숨기는 흙길을 얼마큼 지나자

수면에 차려진 개구리밥과 수련이 점묘화같이 한데 어울린, 젖은 풀 향 물씬 풍기는 잔잔한 경치가 펼쳐졌다

윤슬처럼 은은하게 반짝인 비취색의 실잠자리 떼가 수련 잎에 착지하는 순간을 줌을 당겨 사진에 담았던 일이 떠오르면서

이맘때면 저마다 시원한 차림을 한 휴양객이 서행으로 왕래하던 평화로운 모습이 삐걱거리는 가교 위에 아른거렸다

가만히 서 있으면 홀연히 소름이 들 정도로 고요한 텅 빈 가교에서 무심코 내려다본 물그림자에 혼자라는 고립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모공이 오돌토돌 돋은 팔등을 쓸어내리며 어쩜 뭔가를 눈치채야 하나 싶어져 찝찝하게 침 맛을 삼키다 생각해보니

산에 더구나 습지라면 온갖 벌레가 번식하기 최적이고 그중 다는 몰라도 모기가 극성부릴 시기인데 꼬여 들지 않아 이상하던 차에

문득 이곳에 온 처음부터 느낀 허전함의 이유로 일대에서 운동 능력이 있는 생물이 내 감지 영역엔 단 한 번도 안 나타난 것이 수상쩍었다

손날로 챙을 만들어 산세를 유심히 둘러봐도 날짐승은커녕 먼 나무 꼭대기에 걸려 있을 법한 까치둥지 하나 없었고

범람하는 초록의 기세는 원시를 답습하는 거 같이 울창했으나

어째선지 생태계의 먹이 사슬이 멸실된 거처럼 동적인 것의 부재가 불길하게 확인됐다

시야가 미치는 하늘 여백과 대등하게 부풀어 퍼진 뭉게구름의 느리지만 분명한 변화가 유일한 움직임으로 보일 만큼

그 아래 펼쳐진 식물의 세계는 더불어 사는 생물의 기척이 안 느껴지는 정지 화면이었다

산들바람이 불 때만 사방에서 소곤대듯 풀잎끼리의 가벼운 마찰음이 수면을 타고 증폭되어 들려올 뿐

헤엄치는 부류의 자취 역시 감춘 호수는 행여 빠지면 불가항력에 의해 가라앉을 것만 같은 숨 막히게 깊은 색감의 물빛을 반사했다

잡념이 꼬리를 무는 새 반대편 기슭에 닿아 길폭이 사차선쯤 벌려지더니 바닥에 흰 페인트로 그린 자전거를 흐릿하게나마 알아볼 수 있었다

자라서 키만 해진 관목과 그늘진 교목이 매치된 폭 넓은 가로수에는 각양각색의 바람개비가 줄에 주렁주렁 달려 공중 높이

나무에서 나무로 갈지자로 이어져 축제의 한 장면 같았다

이정표상 다음 목적지인 분수대까지 시멘트로 포장된 자전거전용도로 우측으로는 인도를 구분 짓게끔 산울타리가 쭉 쳐 있었는데

자연에선 볼 수 없는 밀도로 좁게 줄지어 식재한 관목들이 관리가 안 되니까 미어터지듯 엉키며 뻗은 가지는 길을 침범하고 미관을 해쳤다

등나무 덩굴이 캐노피에 옮아앉은 정거장에는 남겨진 자전거가 종류별로 거치대에 맞게 질서 정연했다

연인이나 부부가 타면 좋을 2인승 자전거와 아이가 탈 만한 세발자전거도 나란히 놓여 물건이지만 꼭 한 가족처럼 눈에 그려졌다

뜨개실이 면적을 조직하듯이 자전거를 곧 뒤덮이게 야생초 줄기가 비비 꼬여 오른 걸 보자니

물관이 도는 짙푸른 피부가 녹슨 쇠붙이에 이식 중인 재생의 과정을 포착한 것만 같았다

다시는 빗자루로 쓸지 않는 낙엽이 오롯이 거름으로 회귀하며 원내의 숲은 인공적인 느낌이 조금씩 옅어져 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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