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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편 소설 하나 올려 봅니다 ^^ 감상, 비평, 피드백 모두 환영 ^^
게시물ID : readers_353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글조타
추천 : 2
조회수 : 36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21/01/22 05: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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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묘묘 

 

하늘에 뜬 해. 해가 포근한 봄 햇살을 땅에 내린다.

“휴우-“

내려다보는 아파트 경비원. 그는 이마에 난 땀을 닦는다. 그가 보는 광경: 흙밭. 현재 그는 아파트 화단에 쪼그려 앉아 꽃을 심는 중이다.

    그에게는 꽃밭을 가꾸는 취미가 있다. 자신이 꾸민 꽃밭을 누군가 즐길 때, 그는 어마어마한 행복을 느낀다. 아파트 주민들이 꽃밭 앞에 멈춰 서 구경할 때면, 사진을 찍을 때면, 남몰래 미소 짓는 경비원.

    다시 화단으로 돌아오자. 장시간 쭈그려 앉아 있었더니 경비원은 허리가 아팠다. 경비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양손으로 허리를 집고(오른손에 호미를 들고 있다) 허리를 쭈욱 뒤로 젖힌다.

“에구구구구..”

경비원은 아주 시원한 표정이다. 스트레칭을 마친 후, 경비원은 다시 무릎을 굽혀 앉으려는데, 경비원의 눈에 띈 풍경: 보라색, 분홍색, 흰색, 하늘색, 노란색 등이 어우러진 꽃밭이 멀리에 보인다. 202동 앞 꽃밭이다.

지난 겨울, 경비원이 봄을 기다리며 저 202동 앞 화단에 봄꽃 씨앗을 심었다. 여러 봄꽃이 만발한 꽃밭은... 아름답다. 클림트의 ‘아기’ 속 아기를 덮은 화려한 담요를 연상시킨다. 여러 화단에 같은 시기에 같은 양의 봄꽃 씨앗을 뿌렸는데, 202동 앞 화단이 제일 먼저 꽃을 틔웠고, 가장 풍성하게 꽃이 폈다. 특별히 빛이 잘 드는 화단도 아니고, 다른 화단과 물도 똑같이 줬는데.. 신기한 노릇이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202동 앞 꽃밭을 보고 빙그레 웃는 경비원. 그때. 깔끔한 영상 속에 옥의 티로 자그마한 노이즈가 생긴 것처럼 202동 앞 꽃밭 일부만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람에 꽃줄기가 하늘거리는 것이 아니다. 꽃들 사이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다. 202동 앞 꽃밭으로 뛰어오는 경비원(오른손에 든 호미로 위협하며). 그는 다급한 얼굴이다.

“예끼! 저리 꺼져!”

그리고 꽃밭에서 웬 황색 길고양이가 튀어나오더니, 잽싸게 달아났다. 경비원은 202동 앞 꽃밭 앞에 멈춰 섰고, 도망가는 황색 고양이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황색 고양이의 뒷모습은 주차된 파란 트럭 밑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 고양이가 사라진 쪽을 노려보는 경비원. 어떻게 만든 꽃밭인데! 한낱 고양이가 꽃밭을 망치려 들다니! 그것도 으뜸으로 만개한 202동 앞 꽃밭을! 못마땅한 표정의 경비원.

    이번 주에만 벌써 세 번째다. 고양이들은 유독 202동 앞 꽃밭만 드나든다. 202동 앞 꽃밭에 캣닙처럼 고양이를 매혹하는 식물이라도 있는 걸까? 고양이가 202동 앞 꽃밭을 좋아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이제 경비원은 고양이가 헤집고 간 202동 앞 꽃밭을 본다. 그런데 의외로 꽃밭은 멀쩡하다. 까까머리에 난 작은 땜빵처럼 딱 한 군데만 꽃들이 쓰러져 있다. 그중 땅에서 뽑혀 뿌리가 드러난 채 누운 꽃도 몇 있다. 꽃들이 땅에서 빠진 자리는 마치 쟁기질을 마친 밭 같다. 흙이 어지러이 흐트러져 있다. 고양이가 꽃밭을 뒹굴면서 꽃 가지고 장난치면서 꽃이 뽑히고 그랬나 보다. 한숨 쉬는 경비원.

“에휴- 고양이 짜식들..”

경비원은 꽃을 다시 세워서 뿌리를 묻었다.

    원상태로 돌아온 꽃밭. 흐뭇하게 웃는 경비원.

...

    다음날 낮. 어제와 마찬가지로 햇볕이 따스한 봄 날씨다.

    햇빛을 받으며 경비원이 아파트 단지 안을 순찰하는데, 그때 경비원의 눈에 들어온 광경: 어제와 같이 202동 앞 꽃밭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또 고양이 녀석이 저 멋진 꽃밭에 난입해 난리를 피우고 있나 보다. 부리나케 달려오는 경비원. ‘이런 망할 고양이!’ 경비원이 202동 앞 꽃밭에 근접하자, 아니나 다를까 갈색 길고양이 하나가 꽃밭에서 불쑥 나와서, 후다닥 꽁지가 빠져라 도망간다. 고양이의 뒷모습은 어두컴컴한 지하 주차장 입구 속으로 사라졌다. 꽃밭 앞에 멈춰 서서 지하 주차장 입구를 보는 경비원. 짜증 섞인 얼굴의 경비원. ‘내가 어떻게 만든 꽃밭인데! 꽃밭 중에서도 제일 잘 나온 꽃밭인데! 어디서 고양이 따위가..’ 경비원은 시선을 돌려 202동 앞 꽃밭을 본다. 어제처럼 꽃밭에 작은 구멍이 났다. 구멍 속엔 땅에서 빠진 꽃들이 뿌리를 노출한 채 널브러졌고, 흙 표면이 고르지 않고 울퉁불퉁하고, 흙 위로 무언가 세모난 것이 솟아 있다. 세모난 것? 저게 뭐지? 저 세모난 건... 고양이 귀다! 고양이 귀 한쪽이 새싹처럼 땅에서 돋아난 것이다! 두 눈이 동그래진 경비원. 그는 허리춤에 찬 호미를 꺼내서, 땅에서 돌출된 고양이 귀 주변 흙을 호미가 살살살 걷어 낸다. 흙이 점점 사라지면서 고양이의 윤곽이 차츰 나타난다. 애기 고양이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고, 몸이 딱딱하고, 모습이 온전한 것으로 보아 죽은지 얼마 안 된 아기 고양이다. 옆으로 누운 아기 고양이 시체가 완전히 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아기 고양이 시체 옆에 이번에는 다른 고양이의 꼬리 끝이 보인다. 경비원이 쥔 호미가 또 흙을 살살 덜어내니(봄꽃 몇 개가 호미질 때문에 쓰러졌다), 또 다른 아기 고양이 시체가 나왔다. 살이 썩고 있는 것으로 보아 죽은지 며칠은 돼 보인다. 반쯤 부패한 고양이 시체 옆에 이번에는 또 다른 고양이의 백골 일부가 보인다. 뼈 모양을 보아하니 고양이 발인 듯하다. 또다시 호미가 움직여 흙과 봄꽃을 치웠고, 등장한 아기 고양이의 하얀 뼈대. 아기 고양이의 하얀 골격 옆에 딴 고양이의 분홍색 코가 보였다. 하지만 경비원은 더이상 화단을 파헤치지 않았다. 경비원은 호미질했던 땅을 도로 덮고, 다시 꽃뿌리를 묻어 꽃을 세웠다. 꽃밭이 복구됐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리고 경비원은 202동 앞 화단에서 나왔다.

    202동 앞 꽃밭을 보는 경비원. 봄바람에 봄꽃 무리가 하늘하늘 흔들린다. 갑자기 경비원의 눈에 꽃잎이 고양이 귀로 보였다. 202동 앞 꽃밭을 바라보는 경비원.

    202동 앞 화단은 유난히 꽃이 잘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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