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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6) 엑스트라들의 말하기
게시물ID : readers_354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윤인석
추천 : 4
조회수 : 317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21/02/25 22:02:48

  보조 출연 알바를 하면서 본 인상 깊은 화법.

  이것이 인싸인가!!!!

  기억할 겸 적어 봅니다.

  글쓰기에도 적용할 수 있을 듯하네요.



상황 1)

  반장님이 지쳐서 졸고 있는 보조 출연자에게 다가온다.

  "야! 휠체어 없냐? 휠체어? 아~~. 필요한데."

  상가 손님 역할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휠체어?

  우리는 어리둥절해 하며 주변을 둘러본다.

  휠체어가 있을 턱이 없다.

  "아. 애 좀 봐라 졸려서 쓰러질라 그러잖아. 휠체어에 좀 앉혀야겠어."

  반장님이 출연자들과 같이 졸고 있던 부반장님을 가르키며 너스레를 떤다.

  "자아~. 지금부터 말이지~."

  반장님이 씩 웃고서는 전달 사항을 말하기 시작한다.


  이걸 보면서 대단하다 싶었다.

  내가 말을 하거나 이 상황을 글로 썼다면


  "자자! 주목. 거기 졸지 말고 잘 좀 들어!"


  이렇게 시작했을 것 같다.

  혹은 유머를 좀 섞는다고 해도


  "아이구. 졸려 쓰러지려고 하네. 누가 휠체어 좀 가져다줘야 겠다."


  이렇게 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그냥 언성만 높이는 일이고,

  두 번째 유머를 섞는 방식도 썰렁한 아재 개그라 졸음 섞인 지루한 시선만 돌아올 것 같다.

 

  반장님이 말하는 방법은,

  간단하게 앞뒤 내용을 바꾼 것뿐이지만 호기심을 일어나고 주목도가 올라간다.


상황 2)

  보조 출연자 중에 눈에 띄게 아름다운 아가씨가 있었다.

  다음 촬영지로 이동하던 중, 그 아가씨가 내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보조 출연은 대기 시간이 길다 보니 여기저기 아무 데나 앉게 되는 일이 잦은데,

  그래서인지 그 아가씨의 코트 아랫단이 온통 먼지투성이었다.

  그걸 보고 다가섰다.

  "저기요. 코트 아래쪽에 먼지가 많이 묻었어요."

  "에? 어디요?"

  "저기 뒤편에요."

  "아.... 감사합니다."

  대화가 끝났다.

  아가씨는 대충 코트를 털다가 그냥 걷기 시작했다.

  이동 중이라 일단 도착하고 나서 털겠거니 하고 나도 갈 길을 가는데,

  다른 곳에 있다가 합류한 남자 한 명이 그 아가씨와 코트를 발견했다.

  "와우! 대체 어딜 뒹굴다 오신 거에요?"

  남자가 웃으며 말을 걸었다.

  "아, 그런 거 아닌데!"

  그 뒤로 둘의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나는 정보 전달을 했지만, 남자는 대화를 시작했다.

  

  그 남자분이 잘생겼다는 소소한 문제가 있지만,

  모든 걸 타고난 재능 탓으로 돌리면 삶의 발전이 없지 않은가?


상황 3)

  몹시 추운 날이었다.

  하지만 드라마의 계절은 가을이라 옷을 두껍게 입지 못하고 모두 떨고 있었다.

  대기 시간이 길어져 모두 덜덜 떠는데, 유독 한 여성분이 몸을 많이 떨었다.

  한 남자분이 말을 걸었다.

  "괜찮아요? 안 되겠다 이거라도 입어요."

  외투 하나를 주섬주섬 벗는데 여자분이 좀 날카롭게 말했다.

  "아뇨. 괜찮아요! 진짜로!"

  추위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는지 언성도 크고 소리도 높았다.

  당연히 거절할 수도 있는 문제지만, 흔한 말로 급발진한 상황.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아...."

  여자분도 생각보다 거칠게 난 목소리에 당황한 눈치였다.

  "아이. 그러지 마시고, 정성인데 입어요."

  남자분이 얼굴색도 바꾸지 않고 말했다.

  "아니...."

  여자분이 뭐라 말하려는데 남자분이 옷을 벗는 듯하다가 안경을 착 내밀었다.

  "자. 입어요."

  "풋."

  여자분이 어이없어 하면 웃고, 살짝 긴장했던 주위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

  남자분은 이 좋은 걸 왜 안 입지? 하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안경을 썼다.


  거절 받는 순간, 화를 내지도, 용서하지도, 모른 체 넘어가서 미묘한 앙금을 남기지도 않았다.

  유머는 강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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