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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악마 (하루3)
게시물ID : readers_356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낮에나온달
추천 : 1
조회수 : 20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4/15 22: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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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손님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소리치는 상인들로
시장은 변함없이 시끄러웠다.

피로감을 지울 수 없었던 후안은 목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어제 일찍 잤어야 했는데 멍청했군"

속으로 자신을 자조하던 후안은 
다른 곳은 어제 구경했으므로 바로 볼일이 있는 과일가게로 향했다.

"여어 후안 오랜만이군"

후안은 실소를 지었다.
분명 자신의 기억 속엔 어제 본 기억이 있는데 
과일 상인은 어제랑 똑같은 인사를 하며 자신을 맞이했다.
후안은 마주 인사를 하며 물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혹시 오늘이 며칠인지 알 수 있을까요?"

"오늘? 1일일세"

후안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던 상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실브 말대로 또 1일이잖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던 후안의 입에 웃음이 걸렸다.
상인은 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고 후안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돌려 어제 그 자리 그 바구니 그대로 놓여 있는 오렌지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후안이 관심을 보이자 신이 난 상인이 입을 열었다.

"이 과일은 말이지"

"오렌지죠? 남부 지방의 특산품"

자신이 할 말을 미리 선수치자 머쓱해진 상인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어... 맞네 하하하 자네 아주 잘 알고 있구먼"

이리저리 오렌지를 살펴보던 후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나당 2실렌은 어떤가요? 그렇게 해주시면 전부다 살게요"

상인이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에이 말도 안 돼 이게 얼마나 귀한 과일인데 
원래 하나당 3실렌 짜리라고... 내 2.8실렌에 해줌세"

후안은 조심스레 바구니에서 밑에 깔려있는 오렌지 2개를 들어 올렸다. 
확실히 어제처럼 밑에 부분이 물러있는 상태였다.

"이렇게 물러있는데 2.8실렌이라니... 2.3실렌에 해주세요"

후안이 들고 있는 오렌지를 받아든 과일 상인은 
이리저리 살펴보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게 언제 이리 물렀지... 에이 내 특별히 2.5실렌에 해줌세"

어제랑 똑같은 가격까지 깎아낸 후안은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더 깎으려던 후안은 갑자기 어제 일이 떠올라 고개를 돌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꾀죄죄한 소년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좋아요 2.5실렌에 전부 살게요 대신 사과 하나만 덤으로 주신다면요"

사과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상인이 입맛을 다셨다.

"쩝... 좋네 그렇게 하지"

돈을 지불한 후안은 오렌지 바구니와 사과 한 개를 집어 들고 과일 가게를 나섰다.
그리고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꾀죄죄한 소년에게 다가가 사과를 내밀었다.

"자 받거라 배고파 보이는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후안을 쳐다보던 소년은 
이내 인사를 꾸뻑하며 양손으로 사과를 받아들였다.

"감사합니다."

"그래 착하게 살아야 한다."

소년에게 미소를 지어준 후안은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어제 겪었던 일로 봤을 때 이제 시장에 더 볼일은 없었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쓸지는 자유였다.

그러나 후안에게 생긴 하루의 가치는 거기까지였다. 
피로감은 후안의 모든 실행력에 제동을 걸어버렸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후안은 침대에 누워버렸다.

결국 후안이 5글렌에 산 1일은 그렇게 지나가버렸고
2일의 아침이 밝았다.
눈을 뜬 후안은 허탈감을 느끼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5글렌이나 투자한 하루였는데 참으로 허무하군"

여운을 이기지 못한 후안은 한참이나 침대에 누워있다 
뒤늦게야 다시 일상을 시작하였다.

그렇게 평범한 나날들이 지나가고 
문제는 다시 시장에 가야 하는 8일에 터졌다. 

"끙"

현관 문고리를 잡은 채 후안은 그대로 허물어졌다.
갑자기 배가 미친 듯이 아파왔다. 
장이 구렁이로 변했는지 미친 듯이 요동치는 바람에 
조금이라도 움직이기가 힘이 들었다.

후안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웅크리고 끙끙거리는 것이었다.

'뭐 뭐가 무 문제지'

통증이 자꾸 생각 중간중간을 끊어먹었다.
긴 시간을 투자해서 생각해봤지만 도통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의원을 찾아가고 싶었지만 통증 때문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가 힘들었다.
어찌어찌 몸을 움직인다 해도 도시 주변에 있는 의원까지는 너무나 먼 거리였다.

결국 어찌할 바를 모른 채 후안은 그 자리에 누워 끙끙대기 시작했다.
새삼 고즈넉한 집안의 공기가 무섭고 서럽게 느껴졌다.

병은 순식간에 후안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후안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끙끙 앓다가 잠이 드는 일뿐이었고
시간은 계속 흘러갔지만 이 망할 놈의 배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죽는 건가"

후안은 통증도 잊은 채 슬픔에 휩쌓였다.
옆으로 누운 채 눈물을 뚝뚝 흘리던 후안은 지쳐서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구원은 후안이 2일이나 꼬박 앓아누운 다음에야 나타났다.

"혹시 계신가요?"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후안은 잠에서 깨어났다. 
대답을 하려 했지만 끙끙 앓기만 했던 후안이 말할 기운이 있을 리가 없었다.

"드 드... 들어"

필사적으로 노력한 끝에 소곤거리는 작은 목소리가 
후안의 입에서 나왔지만 그마저도 중간에 끊겨버렸다.
대답이 없자 노크는 계속되었고 잠시 후에 현관문이 빼꼼히 열렸다.

"계신가요?"

조금 열린 틈으로 얼굴을 내민 사람은 주변에 사는 농부의 딸 제니였다.
사실 누구라도 반가웠겠지만 후안은 정말 반가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집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조심스레 들어왔다. 

"아무도 안 계신가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집안을 살피던 제니의 발에 후안이 걸렸다.

"에구머니나"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고 그제서야 안색이 창백한 후안을 발견했다.

"후안씨 어디 아프신가요?"

후안은 말 대신 신음으로 답했고 제니는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조금만 기다려요 의사를 모셔 올테니"

천근같은 시간이 흐르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제니와 나이 든 의사가 후안의 집으로 들어왔다.
나이 든 의사는 힘에 부치는지 진료 통을 내려놓고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헉헉... 뭐 해요... 사람이... 헉헉... 아픈데..."

제니의 재촉에 그녀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쳐다본 의사가 후안에게 다가왔다.
그는 후안의 몸 상태를 이리저리 진찰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열었다.

"어쩌다... 헉헉... 어휴"

의사는 진저리를 치며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의사의 반응을 보며 심각한 게 아니라 생각한 제니도 안도의 한숨을 쉬며 숨을 골랐다.

시간이 좀 지난 뒤 진정이 된 의사가 진료 통을 열어 약을 내밀었다.

"장이 단단히 놀란 모양이야
약을 지어 줄 테니 오늘은 이 약만 먹게나 
내일부턴 죽을 먹어도 되지만 장이 진정될 때까진 
죽이랑 약만 먹으며 푹 쉬게"

진료를 마친 의사는 약을 지어주고는 가버렸고
후안은 제니의 도움을 받아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약을 먹었다. 

그제야 구렁이처럼 날뛰던 장도 좀 진정이 되었다.

"정말 고마워요 내가 이 도움은..."

고통이 한결 가시자 탈진 상태였던 후안은 
말도 끝마치지 못한 채 기절해버렸다.

후안이 눈을 뜬 건 다음날이었다.
장이 어느 정도 진정되고 나니 며칠 동안 굶었던 배가 꼬르륵거렸다.
그러나 시장을 못 갔기에 식량은 다 떨어진 상태였고
후안은 죽 밖에 먹을 수 없는 몸이었다.

그 순간 현관 쪽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도 될까요?"

제니의 목소리에 후안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네 들어오세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제니는 보따리 하나를 후안의 앞에 내려놓았다.

"죽을 좀 쒀왔어요 약이랑 꼭 챙겨드세요"

"저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게요"

"그럼 몸조리 잘하세요"

제니가 나가자 후안은 순식간에 죽을 먹어치운 다음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웠다. 
장이 진정된 건 좋았지만 몸을 움직일 기력이 남아있질 않았다.

그렇게 매일 제니가 가져다준 죽을 먹으며 몸조리를 한 후안은 
3일이 지나서야 겨우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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