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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1 (자작단편)
게시물ID : readers_41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벌레잡는아이
추천 : 0
조회수 : 474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2/11/23 12:16:32

  떡밥을 물에 개어 뭉치는 일은 민물낚시꾼의 기본소양이지만 그의 실력을 알 수 있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물에 어떤 놈이 사는지, 이곳의 고기들은 어떤 입맛에 길들여졌는지 등을 정확히 알고 그에 맞는 떡밥을 만드는 것이 고기를 잡는 것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떡밥낚시로 잡을 수 있는 고기가 한정되어있지만, ‘잡는 것’ 을 목표로 하는 나에게는 아무래도 괜찮다. 붕어를 잡든 베스를 잡든 뭐를 잡든, 잘 잡히기만 한다면야 떡밥만 쓴들 뭔 상관이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떡밥은 나에게 최고의 미끼인 것이다.

  글의 요소요소를 적절히 배치하듯, 여러 재료를 섞어 최적의 떡밥을 만드는 일은 일종의 예술같이 느껴진다. 고기의 반응을 예상하고 적절한 재료를 넣어 많은 입질을 기대한다. 떡밥을 만드는 순간마다 글을 써내려가는 환상에 사로잡혀 자아도취에 빠진다. 이때만큼은 진정한 작가가 되는 것이다.

‘이런 쓰레기도 글이라고 쓴 겁니까? 나 원 참. 어이가 없어서. 당신은 도저히 가망이 안보여’

아무도 없는 호숫가건만, 나를 매몰차게 몰아내던 이 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와 목을 움츠린다. 주먹이 꽉 움켜지며 떡밥이 으스러지는 게 느껴진다.

  젠장. 작가가 될 수 있었는데 빌어먹을 이 선생 같으니라고.

  붕어를 닮은 그의 입술을 떡밥으로 낚아 바늘로 꿸 수 있다면야.

  속으로 욕지거리를 하며 으스러진 떡밥을 다시 뭉쳐 바늘에 꿴다. 아까의 도취감은 온데간데없고 비참한 절망이 몸을 휘감아 무력하게 만든다.

  제기랄.

  날카로운 바늘은 손가락에 생채기를 내 피가 송글송글 맺히게 한다. 손가락에서 시작된 미약한 고통은 온몸으로 퍼져 열병처럼 끓는다. 손가락을 눌러 짜 억지로 피를 빼내며 무력함에 대해 자학한다.

  피가 멈추고 나서야 낚시에 다시 집중할 수 있었다. 낚싯바늘이 떡밥을 매달고 허공을 가르며 나아간다. 잔잔했던 호수에 동심원이 퍼지며 물결치고, 곧 그 원의 중심에 찌가 떠오른다.

  물에 위태하게 떠있는 찌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낚시꾼의 기본소양 중 또 다른 것이 있다면 인내심을 꼽을 수 있다. 입질이 좋다는 곳에가 온종일 죽치고 앉아있어도 피라미새끼 한 마리 못 건질 때가 다반사이기에 인내가 필수인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고기를 부르는 일이란 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다. 그 점은 나에게 낚시를 알려준 김 군이 자주하던 말이었으니. 하지만 자극적인 것만을 쫓던 내게 입질을 기다리며 인내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불편한 낚시의자에 앉아 찌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일은 상당한 고역이다. 온몸이 벌레에 물린 양 가려워오고 바람이 불때마다 일어나는 물결에 초점이 흐릿해진다. 정신을 차려 찌를 다시 바라보아도 그때마다 흐려지기 일쑤니, 찌를 계속 바라보다보면 정신력이 상당히 소모된다.

  어느 정도 앉아있으니 몸이 가려워와 신경질적으로 긁으며 손목시계를 본다.

  한 시간이 지났지만 입질은 전혀 없었다. 초조한 상태로는 낚시를 즐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나도 모르게 손톱을 깨물고 있다.

  안 되겠어. 미끼가 먹힌 것 같아.

  떡밥의 상태는 양호했다. 다시 찌를 물에 띄우고는 고민에 빠졌다.

  떡밥의 배합이 문제인건가. 포인트의 선정이 문제인건가. 날씨가 문제인건가.

  고민하던 내게 인내가 답이라고 말하던 김 군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온다.

  그래. 결국 낚시에 왕도란 없는 것이다. 인내에 인내를 거듭해 입질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마음을 다시 굳히고는 찌에 집중하려는데 어디선가 날벌레 한 마리가 날아와 신경을 분산시킨다. 팔을 휘저어 쫓아보아도 끈덕지게 달라붙어 귓가에서 앵앵거린다.

  오라는 입질은 안 오고 하찮은 벌레자식이나 오다니. 저리 썩 꺼지지 못해!

  소리라도 치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고기들이 놀라 도망간다. 벌레쫓는약을 가지고 다니던 김 군을 비웃었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그런 것쯤이야 없어도 괜찮다고 호언장담했던 일이 엊그제의 일처럼 떠오른다.

  김 군이 했던 조언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려는 찰나 찌가 가볍게 움직이는 게 보인다.

  물속에는 어떤 멍청한 고기가 떡밥을 건드리고 있을 것이 분명할 터다. 묘한 희열감이 가슴한구석에서부터 퍼져나가 온몸을 터질듯이 채운다. 희열감에 온몸을 맞긴채 전율한다.

  그래. 나는 오직 이 한순간만을 위해 낚시를 하는 것이다.

  낚싯대를 조용히 잡아 금방이라도 낚아채 올린 준비를 한다. 짜릿한 감각이 마약처럼 신경을 마비시킨다.

  좋아. 좀 더 깊게 물어라. 찌를 깊숙이 끌고 가! 너의 아가리에 바늘이 깊숙이 박히도록!

  찌가 물속으로 깊게 잠겨든다.

  -휙!

“젠장, 염병할!”

  기대하는 고기는 커녕 떡밥조차 없다. 텅 빈 낚싯바늘이 긴 줄에 매달려 약 올리듯 흔들린다. 희열감은 분노가 되어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하게 만든다.

  빌어먹을 물고기.

  녀석은 괘씸하게도 떡밥만 잽싸게 먹고 도망친 것이다. 그런 녀석을 이를 갈며 증오한다.

  도둑놈 같은 새끼. 비열한 놈. 아는 온갖 욕을 동원해도 모자라다.

  그러나 곧 진정해 낚싯대를 땅에 누이고 떡밥을 다시 꿰며 복수를 다짐한다. 그러다 문득 다친 손가락에 시선이 간다. 너무도 작아 딱지조차 지지 않는 상처. 그 상처가 한없이 커다란 구멍이 되어 다가온다. 구멍 속에서 나와 닮은 그러나 나의 것은 아닌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째서 이런 죄 없는 고기에게 복수를 다짐해야하는가. 이 선생이야말로 복수의 마땅한 대상이 아닌가?

  아니야. 그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고개를 세차게 휘저으며 낚싯대를 휘둘러 찌를 물에 띄운다. 인내가 보상해줄 것이라 굳게 믿으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그렇게 시간은 자꾸 흘러갔다. 앞으로든, 뒤로든.

 

고3때 잠깐 썼던 단편인데 마무리 지어보려고합니다. 2년만에 글을 다시 쓰려니 필력이 많이 후달리네요.

고쳐야 될 부분 차근차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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