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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3(자작-과거)
게시물ID : readers_42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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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 30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1/26 22:54:08


 알고 보면 어제 뉴스에서 보여준 집중호우로 인해 마련된 대피소에서 정부를 향한 분노로 말을 잇지 못하던 그 머리가 착 달라붙은 아줌마와 선주의 가방을 날치기해간 시티백의 남자는 모자지간이고, 또한 알고 보면 선주와 만나는 알렉스. 스위스 근처에는 가본적도 없지만 알고 보면 알렉스와 혈연관계인 우마는 지구의 정반대편 대서양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 곳도 비가 올까.

우마는 상여에 누워있고, 선주의 아이는 요람에 눕혀져야지.

아마도 색색깔 딸랑이를 들고 웃고 걷고, 엄마라고 부르고 아빠를 부를까 아니면 인도 유러피아 조어로 appa라고 할까. 나이키를 사달라고 조르겠지.

 하지만 선주의 아이는 태어나지 않는다.

선주는 이제 곧 아이와의 연결을 끊으려 한다.

엄마는 그런 것도 모르고 오늘도 된장국을 끓인다.

 “또, 된장국이야?”

 “요새 이상하게 된장국이 좋더라.”

 그건, 그건 엄마, 셋방에 들어온 남편 없는 새댁이,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된장국 끓이는 재주밖에 없다면서 부풀어 오른 배를 어루만지며 집세를 가져올 때 그 때부터였잖아.

 선주는 말하지 않기로 한다.

대신 사과를 깎는다. 사과를 잘 깎으면 잘생긴 아들을 낳는다.

사과는 아르헨티나 산이다.

 “엄마, 이거 수입사과야.”

 “아닌데, 경동시장에서 산거야.”

 엄마, 선주는 말을 잇지 못한다.

엄마, 경동시장은 한국에 있지만 거기서 일하는 아줌마는 조선족이야. 거기서 파는 것들 원산지는 중국, 원산지는 호주.

껍질만 까 봐도 알아. 껍질만 까 봐도.

 선주는 사과껍질을 깎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과연, 동생 상현이 작년 프랑스 여행 갔을 때 사왔던 빅토리아 녹스 과도가 사과의 그 지치도록 빨간 표피에서 미끄러진다. 손에 묻은 과즙에 선주의 O형 혈액이 뒤섞인다.

 -이거.

 지금은 일본에 있는 상현은 당당하게 그 칼을 내밀었었다.

 -프랑스에서 산거야. 파리 알아, 파리?

 웃고 있는 상현에게 선주는 빅토리아 녹스의 원산지에대해서 말하고 싶다. 상현도 여덟, 아홉 살 때 즈음 학교 앞의 장사꾼 아저씨의 입놀림마다 손놀림마다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던 맥가이버 칼. 비록 그것은 짝퉁이었지만,  선주의 집는 유럽동화집이 한 질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지. 상현아, 너 기억해? 너의 지나버린 욕망. 그 적나라하게 눈빛을 반짝이게 하던 그 욕망. 너의 가슴속엔 그 때부터 빅토리아녹스를 향한 강한 욕정이 자라났던 걸까? 어쩌면 나에게도.

 “어머, 너 손 벴잖니!”

엄마는 놀란다. 선주는 놀라지 않는다.

 “엄마, 그게, 그게 누구지? 사과에서 태어난 그 애 이름이 뭐지?”

 “무슨 소리하는 거야 너 지금. 너 피 사방천지 묻히지 말고 얼른 닦아. 아유, 저저, 저 피를 저거 어떡해.”

 선주는 휴지로 손을 감싼다. 휴지는 피를 머금고 스스럼없이 선주의 갈라진 상처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아프니.

 -아니.

 -아프면 말해.

 -안 아프다니까. 

 선주는 점차 기억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사과에서 태어난 아이…….아니, 과일은 과일인데……,복숭아인가. 그렇지, 복숭아. 떠내려 오는 복숭아를 할아버지가 건졌어…….아니 건지는 것은 아닌데…….

 복숭아, 복숭아…….

복숭아가 갈라지면 아이가 나왔지…….

 -아!

 선주는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생각하는 사이에 입 주변을 어루만지던 손가락은 스스럼없이 선주의 입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선주의 이빨은 부주의하게도 손가락을 물어버렸다.

 피가, 피가 다시 나기 시작한다.

 선주는 입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반바지로 떨어지는 것을 물끄러미 아무런 처치도 못하고 지켜보고만 있다. 회색 면과 나일론 혼방의 만 삼천 원 반바지에 칙칙한 붉은색 얼룩이 엷고 작게 퍼진다.

 선주는 갑자기 맹렬히 배가 고프다.

 엄마는, 엄마한테 뭐라고 할까.


 엄마는 말한다.

 “드라마 시작 했어. 빨리 와.”


 선주가 생각하던 아이는 라푼첼이었다.


+++++++++++++++++++++++++++


“아니,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충전만 하고 간다니까.”

 그것은 규정에 어긋난다. 뭐 아니라도 어차피 CCTV로 찍히는 알바들에게 선택은 없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그게 아니다, ‘그’는. 

 노숙자는 냄새가 난다.

 이 아저씨는 냄새가 난다.

 그러므로 이 아저씨는 노숙자이다.

 정말 쉬운 삼단논법이 아닐 수 없다.

 분명 이 알바년의 머릿속에는 그런 생각이 성립되고 있을 것이다.

논리적이군.

그 논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그저 핸드폰 충전이다, 충전기도 있겠다, 그냥 플러그에 꽂는 것을 묵과하기만 하면 된다.

 -다시 말하지만 그게 규정에 어긋나거든요.

 옘병 요즘 알바는 전기도 관리하냐, 그럼.

 -그럼, 뭐 먹을 거나 좀 줘봐.

 김밥을 먹는다.

유통기한이 지난 김밥을 먹는다.

차갑게 식은 유통기한이 지난 김밥을 먹는다.

 한사장, 그 개새끼한테 그 돈만 받으면 된다.


 분명 지금쯤 저녁시간이니까 집에 돌아왔을 테고, 전화를 하면 지금일 텐데. 한사장, 지는 해를 보고 마누라가 차려놓은 밥상에 앉기 전에 그 새끼의 머릿속에도 일말의 양심이 꿈지락 거릴 것이다. 밥상머리에 앉아, 지 자식새끼의 얼굴을 바라볼 때, 약간의 심장고동이 움찔거릴지도 모른다. 아니, 벌써 지 자식들에게 한 마디도 못하고 있을 수도 있지. 아마도 밥상을 무르고는 테레비를 보면서 머릿속과 심장 속을 비우든지, 아니면 그 소음으로 채워 넣고 있을 것이다. 새벽까지.

 

 전화를 충전해야 할 텐데.

 -아, 시벌넘아, 저쪽으로 가라고.

 오늘도 박씨는 지랄을 해댄다.

뭐 어차피 지하철 공기는 몸에 좋지도 않아.

하지만 시월의 밤공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구두를 벗어서 머리에 벤다. 좋은 가죽이라 머리에 잘 맞는다. 양말을 좀 사야 할 텐데. 냄새가 말도 아니다. 아까 편의점 알바생 생각이 난다. 거 기껏 해봐야 정석이보다 한 두어 살 많을까. 학생일까. 자꾸만 자꾸만 그 아가씨가 생각이 난다. 내일도 가 볼까. 몇 시쯤에 일하나. 거 젊은 기지배가 야간 알바를 하고 참 대단하네.

 머릿속에선 그 '알바년' 혹은 '젊은 기지배'는 수없이 벗겨진다.

 춥다. 잠이 안 온다. 쐬주 한잔 딱하면 잠이 올 것도 같은데. 김씨도 없는 오늘은 그냥 자야 한다. 

 구두 앞이 다 까졌다. 뒷 굽이 형체도 없이 닿았다. 구두 솔기가 모조리 벌어졌다. 뒤꿈치가 터졌다.

조만간 구두방에 가서 한번 수선 좀 해야지. 아니, 그냥 버리자. 하나 또 사면된다.

 한사장 그 새끼한테 돈 받으면 제일 먼저 신던 구두를 버리고 하나 새로 사자.

 춥다, 뜨듯한 국물 한 그릇만 마시면 배가 확 풀릴 것 같다. 몸이 옛날 같지가 않아서 요즘은 국물을 거르면 몸이 영 부대끼는 게 죽겠다. 내일 아침이나 먹자. 내일 아침이다.

한사장한테 돈 받으면 제일먼저 공릉동 샤부샤부집에 가자. 아니 그전에 잠실 도가니탕 먼저 먹을까. 사실은 쪽 팔리지만 제일 먹고 싶은 건 염천교 뒷골목 고등어조림백반이다. 5천원.

 전화가 올지도 모른다. 한사장은 술 먹고 전화하는 버릇이 있다.

한사장은 지입으로 항상 좋은 안주를 찾아내는 귀신같은 재능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안주는 항상 아가씨였다.

한사장은 꼭 아가씨랑 같이 있었다. 그 때만 전화를 했다.

 핸드폰을 충전해야 할 텐데.

 -아, 시벌넘아. 저쪽으로 꺼져. 확 찌저 죽이기 전에.

 우리 마누라는 다림질을 정말 잘해.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것만 잘하지.

 오늘 점심은 고등어조림을 먹자.

갑자기 고등어가 먹고 싶군.

 혜선은 놀린다.

 아니 웬 고등어조림이래?

 글쎄, 정말로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고등어를 오늘 막 다린 양복에 흘린다. 아, 이거 마누라한테 한 소리 들을 텐데.

 혜선은 그 소리가 싫다고 야단이다.

 점점 얼룩이 생기는 양복이 더 걱정이다. 그런데도 계속 흘린다. 아니, 이건 어찌 할 수가 없다. 무슨 운명 같구만.

 고등어를 새로 다린 양복에 흘리는 운명이 다 있나봐?

 혜선은 웃지만 ‘그’로서는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고등어를 자꾸만 자꾸만 흘린다.

그럴지도.

구두가 점점 생선기름을 먹고 까맣게 색깔이 죽어간다.

그럴지도.

 전화기 충전해야 하는데.

 과거를 꿈꾸고 일어난 아침은 언제나 가장 춥고, 가장 피곤한 시간. 누가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했지. 여기.

하지만 아침의 '순례'를 거르면 뜨듯한 국물은 없다. 아마도 없다. 콧물이 난다.

그리고 오늘은 꼭 성당에서 핸드폰을 충전해야 한다.

 오늘은 왠지 전화가 올 것 같다.

 한사장 이 개새끼. 넌 정말 나쁜 놈이야, 정말 나쁜 새끼야.

 갑자기 사타구니가 아파온다.

병일까.

 전에도 사타구니가 아팠던 적이 있다.

벌써 수십 년도 지난, 군대에 있을 때다.

머리도 박박 깎고, 거시기 털도 빡빡 깎고 나니 글쎄, 해탈한 스님 같아 보였다. 성병으로 얻게 된 ‘도’라. 그리고 지금에 와서 다시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그곳’

 하지만 벌써 이년도 더 되게 잊고 살았던 가운데가 지금에 와서 말썽을 부릴 리가 없다.

 혜선일까, 마누라일까. 하지만 성진은 알고 있다. 전에 지퍼가 터져서 어거지로 찝어놓았던 옷핀에 찔렸던 것 그것뿐이다. 그것뿐이다.

 

 정석이도 군대를 갈 때가 얼추 돼가겠군.

어디 훈련소로 갈까.

 어디서 기차를 탈까.

 양복의 생명은 다림질에 있다.

군대에 있을 때는 다리미가 없는 상황에서도 동전 두 개로 앞줄을 잡곤 했다.

 한사장에게서 오늘쯤 전화가 올 것 같다.

주머니 안쪽으로 핸드폰을 움켜쥐어본다.

 이씨가 껌정 비니루를 들고 온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면서 씨익 웃고 비니루에서 쏘주병을 끄집어내길 기다리는 시간이 지난 이년만큼 길다.

 아, 그래서 씨발로 시작한 이야기는 염천교 뒷골목 고등어를 훑고, 이년의 나날을 지나 편의점 알바생의 유니폼 가슴 위에 머무른다.

 -그래도 내가, 그 한사장, 그 개새끼 돈만 받으면……

 이씨는 갑자기 응응 웃고 있다가 얼굴을 들이댄다.

 -아직도 전화기 갖고 있어? 전화는, 왔고?

 할 말이 없다.

 -아, 글쎄 전화도 안 오는 거 뭐더러 가지고 있어.

 또 그 이야기 시작이다. 이씨는 ‘어쩌다 생긴’ 핸드폰과 주민등록증을 산다. 

 내일쯤은 연락이 올 거다.

 벌써 네 병째의 소주다. 오늘은 잠이 잘 올 것 같다.

오늘 같은 날은 김씨는 없다. 없는 거다.

입이 걸걸한 박씨라도 붙들고 앉아서 마시는 소주 맛이 나쁘지 않다.

 -아, 그래서 씨발……아, 그래서 씨발……

 주머니 속으로 아직 얼마정도 남은 지폐를 만지는 기분이 쏠쏠하다. 내일은 고등어를 먹어볼까. 꼭두새벽부터 안 일어나도 된다.

 손은 아까부터 안감을 뜯어 만든 이제는 더이상 필요 없게 된 핸드폰 전용 주머니를 만지작거린다.

 어차피 그 동안 벨이 울릴 리도 없던 전화다.


 근데, 어라?

 아, 온다, 전화가 온다. 진동이 느껴진다. 진동이.

 자다가 맞이하는 아침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눈이 그런 건지 세상이 그런 건지 영 어슴푸레해서.

 오줌이 마렵다.

 -씨발.

 앞줄 없는 양복바지는 천천히 색깔이 진해지고, 오줌은 바지를 지나 길로 흘러나온다.

 -씨발.

 정석의 입영열차는 서울역에서 출발하지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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