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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산문 : SIAM
게시물ID : readers_468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늘은유모와
추천 : 2
조회수 : 33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01 23:47:34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나 하나로 족해...내 아이에게는 이런 불행 물려주지 않을꺼야...'

  그녀는 지그시 눈을 감고 내리는 눈을 줄곧 맞고 서 있었다.


  현재 : 서기 2984년 12월 11일

  '춤추는 말의 0이 9개되는 때 세상의 끝'이라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불행히도 적중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유투브 조회수가 1억뷰를 넘기던 2012년 12월 어느 날, 북한에서 발사된 위성로켓이 서울 한복판에 떨어지는 바람에 촉발된 전쟁은 점점 악화되 미국, 중국등을 끌어들였다. 결국 세계대전으로 확대되어진 전쟁의 끝은 핵폭탄을 지구인들 자신 머리 위에 떨어뜨리고 난 뒤였다. 핵폭탄의 위력은 상상 이상으로 전 세계에 살아 남은 사람은 10만명 남짓이였다. 지구 자체가 받은 핵 방사능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살아 남은 이들은 그나마 방사능의 피해가 덜한 곳에서 모여 문명의 재건을 시작했다. 도저히 되살아 날 것 같지 않던 지구도 자연의 놀라운 치유력으로 차츰 원상복귀 되었다. 핵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21세기 초의 모습과 많이 비슷한 모양새가 갖추어졌다.

  하지만 현재의 인류는 약 천년전의 인류와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었으니, 예전 인류의 잣대로 빌려 말하자면 '기형아'였다. 핵폭발 당시 퍼져 나간 방사성 물질은 대지와 토양에 잔류해 지속적으로 인류의 DNA에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현재의 인류는, 모두 '샴쌍둥이'이다. 하나의 몸에 머리가 둘 달린 모습이 현재는 표준 인간의 모습인 것이다. 물론 하루 아침에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 처음엔, 핵전쟁 때 살아남은 사람들이 낳은 자식들 중에 열이면 하나둘 정도가 샴쌍둥이 였으나, 세대를 거듭해 갈수록 많아지더니 결국 모든 인류가 샴쌍둥이로 태어나는 현실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물론, 현재도 아주 적은 확률로 머리가 하나만 달린 아이가 태어 나기도 한다. 현재의 인류는 이것을 단두류 혹은 SBH(Single Brain Human)라 부른다.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강하게 살아 남을 수 있는 것이 진화의 방향이라면, 샴쌍둥이로의 진화는 인류가 선택한 적합한 방법이였다. 머리가 하나인 SBH에 비해 샴쌍둥이는 그 능력이 탁월했다. 단순히 뇌가 두 개여서 생각하는 양만 두 배가 된 것이 아니라, 그 속도 또한 두 배 이상이였다. 아직까지도 과학적으로 그 메커니즘이 다 밝혀지진 않았지만, 두 개의 두뇌가 한 몸에 이어져 있어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는 정도만 알아냈을 뿐이다.

  이렇게 더 넓게 생각하고 더 빠르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분명 인류의 재건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지만 태생적인 문제 또한 있었으니, 샴쌍둥이 각각의 뇌가 내린 판단이 다른 경우가 그것이다. 'A, B 중 하나를 고르시오'라는 질문이 있다면, 예전엔 A를 고르거나 B 이렇게 두 가지의 선택지만 있었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 샴쌍둥이 중 한쪽은 A, 한쪽은 B를 고르는 경우도 생겨난 것이다. 그리하여 먹는 음식부터 사회 전반적으로 이지선다가 아닌 삼지선다가 기본이 되었다. 예전엔 자장면과 짬뽕이 반반씩 담긴 짬짜면 정도가 그 예였다면, 현재는 식당에 가면 거의 모든 메뉴가 두개씩 짝을 이뤄 또 하나의 메뉴로 자리 잡고 있다.

  선거에서는 샴쌍둥이 한 사람에게 두 개의 투표권이 주어진다. 그에 비해 SBH는 한 개의 투표권만 행사할 수 있다. 머리가 하나인 외형뿐만 아니라, 권리마저도 차별받는 세상인 것이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가 되면 SBH의 인권신장에 대해 공약들을 발표하고 일부러 찾아가서 악수하고 사진을 찍는 등 쇼를 할 뿐, 당선 된 이후에는 나몰라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치인 자신도 SBH가 아닌 샴쌍둥이이기에, 투표권이 하나뿐인 소외된 계층인 SBH보다 일반시민들에게 더 신경을 쏟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유전적으로 돌연변이 형질이 후대에 이어져서 샴쌍둥이 인류가 된 것이기 때문에, SBH는 아이를 낳을 경우 또 SBH를 낳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SBH로 태어난 아이는 대부분 어려서부터 다른 아이들과 다른 외형때문에 놀림을 당하고, 학창 시절에는 따돌림과 빵셔틀이라는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도 그럴것이, 보통의 학교 수업이라는 것이 동시에 두가지 과목을 수업받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SBH로는 감당 할 수 없었다. 한쪽 뇌는 영어시간에 다른 한쪽은 일어를 공부하는 방법, 그래서 각각의 두뇌는 각각의 언어만 집중해도 두가지 언어를 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교육방법이 일상화 된 것이다. 이렇다보니 대부분의 SBH는 샴쌍둥이에 비해 능력도 떨어지고, 일상적인 생활을 하려면 두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샴쌍둥이끼리의 결혼도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결혼과 출산, 동거에서 다양한 형태들이 나타났다. 남녀 양쪽 두뇌 모두 합의하는 경우에만 결혼이 성립되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대부분 필요할 때만 동거를 하고 출산을 하는 것이다. 머리가 A,B인 남자가 머리가 C,D인 여자를 만나는 데 A가 C를 좋아한다고 했을 때, B나 D는 A와 C를 위해서 둘이 만나고 사랑할 수 있도록 잠시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여 주지 않는 희생을 보여주는 형태인 것이다.


  자신의 어머니도 자신도 SBH인 그녀는, 기형아라고 놀림당하며 커 왔지만 언제나 밝은 모습은 잃지 않았다. 어디에 가든 당당하려고 했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어렵고 힘들었지만 남들과 같아지려고 열심히 살아왔다. 정상인 남자를 만나 양쪽 머리 모두에게서 사랑을 받게 되었을 때는 자신이 행운아라 생각했다. 머리가 두 개였지만 그녀에게는 한 사람처럼 둘 모두에게 진심을 다해 사랑했다. 하지만 어느 날 두 머리가 같은 생각이라며 남자로부터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으로 어머니가 미웠다. 배속에 생긴 아이가 SBH일까 두려워, 그런 아이는 키울 자신이 없다는 것이 떠나는 남자의 마지막 말이였다. 그녀는 그 동안 자신이 받아왔던 차별과 억압이 가슴 속에 한꺼번에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내가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잖아. 내가 부모를 선택한 게 아니잖아.'

  끊임 없이 흐르는 눈물에 빠져 며칠을 보낸 후, 그녀는 결심했다. SBH는 모계쪽 유전형질에 따른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 이대로라면 태어날 아이는 95% 이상 SBH일 것이다. 어떻게든 배속의 아이는 SBH가 아닌 '정상인'으로 태어나게 해 주고 싶었다. 임신 초기, 배속의 아이는 아직 샴쌍둥이가 될 지 SBH가 될 지 결정되기도 전 인 상태인지라 지금이라면 가느다란 희망이 있었다. 그 방법은 바로 강력한 방사능 물질에 일부러 노출을 시켜 배아에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방법이였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방법은 아니었지만 SBH들 사이에서는 소문으로 알려진 내용이였다. 부작용이라고 한다면 워낙 그만큼 강력한 방사능에 노출되면 본인의 몸 또한 변형이 일어나, 잘못하면 3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고라도, 태어날 아이에게는 밝은 미래를 안겨 주고 싶었다. 자신이 아이를 낳다가 죽을지도 모르고, 혹은 살아도 3년 정도밖에 있지 못하니 태어나는 아이를 잘 키워달라는 편지를 몰래 어머니에게 남긴 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엄청난 방사능 물질이 밀집해 있어 핵전쟁 이후로도 계속 일반인 접근금지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한 번에 바로 가는 비행기는 없어서, 기차와 버스등을 여러번 갈아 타며 어렵게 도착할 수 있었다. 검문소 같은 곳은 숨어 있다가 밤이 되어 몰래 통과하기도 했다.

  마침내, 그녀가 목표했던 곳에 도착했을 때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눈을 맞으며, 이 눈에 포함된 방사능이 자신의 아이를 바꿔 주길 희망했다. SBH가 아닌 '정상인'으로 태어나 달라고 기도했다. 그녀 앞에는 오래되어 희미하지만 그 곳이 어디인지를 알려주는 작은 간판이 조용히 그녀의 기도를 들어 주고 있었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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