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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산문 - 네가 사준 참치회는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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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夢想像
추천 : 4
조회수 : 40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02 20: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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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와 고백하건대, 네가 사준 참치회는 맛있었다

 

夢想像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두꺼운 까만색 롱코트에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가지런히 묶은 머리에는 큼지막한 헤드폰을 쓴 채였다. 인적이 드문 주택가 밤거리. 나보다 잘나가는 친구의 거들먹거림을 들어주는 대가로 7만 원 어치의 술을 얻어먹고 도망치듯 나와 도착한 버스정류장에, 그녀는 도도하게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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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피하다, 얼떨결에 퇴근해서 집 앞이라고 대답을 한 내가 병신이었다. 그 녀석은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내 앞에서 어서와, 사회생활은 처음이지?’라는 야릇한 우월감을 느끼기 바빴다.

고급. 그 놈에 비해 나는 언제나 고급이었다. 어려서부터 성적으로나 외모로나 내가 더 나았다. 자꾸만 비교되었던 내 친구가 내게 강한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알고 있었다. 난 그걸 즐겼다. 더욱 그 녀석 옆에서 내가 빛나길 바랬다. 지방대에 턱걸이로 들어간 그 놈보다 인서울에 당당히 합격한 내가 자랑스러웠다. 이것이 나의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그 새끼가 졸업하자마자 선배의 뒷배경으로 먼저 취업할 줄은 내 계산에 없었다. 그것도 A 사라니……. 변변찮은 자격증도 없이 그저 멍하니 대학 4년과 군휴학 2년을 보내고 사회에 내던져진 내게 뿌듯한 목소리로 소식을 전한 친구의 전화는, 조롱으로 가득 찬 것처럼 느껴졌다. 짜증과 초조함, 그리고 막연한 절망. 언젠가는 꼭 이겨보겠다는 오기도 생기지 않았다. 이 현실에 극도의 혐오감을 느낄 뿐이었다.

의욕의 부재는 내게 진정한 백수의 생활이 뭔지 알려줬다. 오래가지 않아 주변 친구들은 점점 회사 일로 바쁘다며 만나주지 않았고, 용돈벌이 알바도 좀체 구해지지 않았다. 아무 말씀이 없으신 부모님을 마주하는 것도 힘들어 PC방에 도망쳐 구직사이트를 뒤지는 것도 한 때 뿐이었다. 게임 폐인의 길로 들어선 3개월 만에 서버 네임드가 되며 또 다른 세계에서 정복자로 군림하는 나의 진짜 모습은 SPCVVIP,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정친 차리고 가을에 반짝 입사지원서를 뿌려 겨울에야 겨우 작은 사무실 귀퉁이를 차지해 백수 신세를 벗어났지만, 담배 한 갑조차 아까워하며 사야 하는 신세는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매주 월요일 저녁이면 로또 명당을 찾아 거리를 헤매는, 취미 아닌 취미를 끊지 못했다. 무작위 번호가 찍힌 일주일짜리 설렘 여섯 장을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가는 잉여의 삶은 여전했다.

 

b.

이렇게 눈보라 치는 금요일,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의 차이도 뭔지 몰랐던 녀석이 갑자기 K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을 때 이미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먼지 하나 묻지 않은 빤딱빤딱한 갈색구두 위에 요새 한창 샐러리맨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는 더블 브레스티드 하프코트를 입은 그 녀석의 몰골까지는 그럭저럭 참을 만했다. 5분 쯤 늦은 나를 보고 잘 있었냐?”라며 지 나름대로는 쿨가이의 미소까지도 봐줬다. 하지만 때마침 요란스레 울리는 진동벨을 건네줄 때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손끝이 떨렸다. 예전처럼 시발 넌 손발이 없는 짐승이냐?”라고 받아치기엔 뭔가 꺼림칙하다. 뭐라고 맞받아쳐야 하나. 찰나의 계산들은 결과값이 나오기도 전에 멈췄다. 얼떨결에 반사적으로 진동벨을 받았으니 커피를 받으러 가는 게 가장 자연스러웠기에, 일단은 그렇게 움직여줬다. 결코 내가 이 녀석의 당당함에 눌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길었다. 이 녀석은 내게 보여줄 것이 많았나보다. 비싸 보이는 장갑과 최신형 스마트폰은 끊임없이 만지작거리고 서류가방을 뒤적이는 척 하더니 이번에는 넥타이를 계속 매만진다. ‘저게 다 새것인가 보군하고 아무 생각 없이 보면 좋으련만, 난 아직 그런 대인배는 되지 못한 것 같다. 옷차림새 자랑을 하는 건지 소개팅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안부를 묻는 건지 아무튼 그 자식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타이밍 맞춰 , 나야 뭐. 뭐 그렇지. 그래? 그렇구나.”의 랜덤 스피치를 반복할 뿐이었다. 내 앞에서 거들먹거리는 저 남자가 정말 내게 열등감을 느끼던 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정말 신나보였던 것은 나만의 착각은 아닐 것이다.

 

c.

커피 잔을 대강 비울쯤에 얼굴 봤으니 집에 가겠다는 날 붙잡은 그 녀석은, 뭐가 그리 좋은지 내가 말릴 새도 없이 오늘은 자기가 쏜다며 호기롭게 Y 참치집을 들어 가버렸다. 상상만큼 비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곳이다. 무리하지 말라는 내 말은 깔끔하게 무시당했다. 친구한테 사는 술은 하나도 안아깝다 했다. 물론 나는, 지금의 너한테는 절대로 뭘 사주고 싶지 않다.

녹는 듯 씹히는 참치 맛은 썼다. 참치에 술과 친구의 자랑질이 버무려진 탓이다. 연봉이 이렇고 퇴직금은 저렇고, 보험에 세금에 자동차 할부에 온갖 돈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이제는 결혼하기 전에 집장만해야 하는데 큰일이라며 예의 그 썩소를 날렸다.

빌어먹을, 난 들어줄 수밖에 없는 한심한 존재였나 싶었다. 도무지 절대 공감 안 되는 말만 골라서 했다. 결혼, 자동차, 대기업 연봉, 이게 다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술김에 그만 쳐 씨부리라고 박차고 나오고 싶었다. 하지만 먼저 자리를 나서면 왠지 지는 기분도 들었고, 무엇보다 호기롭게 이 술값을 다 내고 가버려야 멋진데 그럴 돈도, 여유도 없었다. 그저 제발 그 입 좀 그만 놀리라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결국, 시간이 내 구세주였다. 버스 막차 끊긴다고 어서 가봐야 한다며 보채는 날 못이긴 체 일어서 준 그 자식은 왠지 목표한 것을 이뤄냈다는 만족감이 한껏 서린 얼굴로 술값을 치렀다. 다음에는 강남 좋은 델 데려가주겠다는 별 인사에, 나도 어쩔 수 없이 힘껏 씩 웃어줬다. 그래, 끝까지 날 철저하게 짓밟고 가는구나. 지갑 속의 로또를 만지작거리며, 로또에만 당첨되면 저 새끼의 부러운 눈길을 받아내고야 말리라는 결심을 하며 눈길을 얼기설기 헤치며 걸었다. 일단 이 분함은 버스를 타고 하자. 곧 막차가 올 거야. 택시비 아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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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류장 앞에 서 있던 그녀 옆에, 나도 나란히 서본다. 흘낏 곁눈질로 얼굴을 보니 하얀 얼굴과 오똑한 코에 눈도 반달형인, 전형적인 미녀의 얼굴. 술김에 말이라도 걸어볼까 싶었지만, 역시 그건 힘들다. 예쁘다고 너무 헤헤거리며 바라본 것이 부담스러운지, 나를 한 번 재빠르게 훑어보고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한 발 멀어진다. 이년이나 저놈이나 하여간 죄다 날 무시한다는 생각에 문득 울컥한다.

서둘러 타는 그녀를 따라 버스에 오르니 앉을 곳이 널려있다. 그녀 옆이나 뒤에 앉고 싶었지만 내 자존심도 있고 괜히 더 불쾌한 마음만 들까 관뒀다. 가장 반대편인 맨 앞에 앉아 운전기사 아저씨의 비듬 섞인 뒤통수를 보며, 내일 로또 발표는 기필코 TV 앞에 앉아 확인하리라는 다짐을 한다. , 집 앞 편의점에서 몇 장 더 사볼까? 당첨되면 어떡하지?

 

일단 그 새끼부터 돈으로 조져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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