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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산문 - 목격자가 도착했다
게시물ID : readers_52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리버마운틴
추천 : 7
조회수 : 391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2/12/03 02:18:07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라는 말로 최초 목격자의 증언이 시작되었다.


그는 경비업체의 젊은 직원으로, 간밤에 있었던 폭설로 인해 돌지 못한 순찰을, 눈발이 잦아들은 아침에서야 돌 수 있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가로등에 기대어 누군가를 기다리겠거니 생각했으나 옷차림이 가볍고, 묘하게 사람같지 않다는 느낌에 혹시나 해서 접근했다가 놀라 신고했다고 했다.


 감전사로 추측된다는 말은 의외였으나, 가로등의 전선을 꺼내 피복을 벗겨 손에 쥐어주고는 뒤로 묶어 청테이프로 손을 감아 빼내지 못하게 한 모습을 보고는 혀를 찰 수 밖에 없었다. 가로등에 뒤로 묶인 손을 어찌하지 못한 채, 간밤의 하얀 지옥속에서 외롭게 추위와 고통에 떨었을까. 청테이프로 막아버린 입은 더 이상 누구도 그녀를 도울 수 없게 만들었다.. 피부가 벗겨져 붉게 물들어 버린 메마른 손목에 눈이라도 쌓여져 있지 않았다면, 나는 그 것을 맨눈으로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지금으로부터 3달 전, 결혼한지 2년 만에 의사였던 남편과 이혼했다. 주변 사람들의 말로는 대개 아내만 외출하는 듯 하며, 남편을 본 사람은 몇 없었으나 그의 직업상 그려러니 하는 모양이었다. 이혼 후에는 아내마저 외출이 줄어들고, 부쩍이나 힘들어 보여 주민들 사이에서도 측은했던 모양이었다. 부모를 일찍 사고로 잃고 남동생과 단 둘이 옥탑방에서 살았다고, 남동생은 군 복무 중이며, 내년에 병장이 된다고 한다. 한달음에 벅차게 문을 열고 달려와 펑펑 울던 그 녀석이 병장이라니..


 사건의 조사가 계속되었다. 날씨 탓에 출입했던 사람도 없었을 뿐더러, CCTV조차 간혹 지나가는 불빛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간밤의 추위를 고려하여 사망시간은 오후 4시에서 6시 사이로, 아마 가로등이 켜지는 시간에 감전되도록 두었던 것이라 확인했다. 해당 시간의 CCTV에는 눈보라에 묻힌 카메라가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한 칸을 건너 뛴 가로등의 조명만을 희뿌옇게  보여줄 뿐이었다. 부검은 내일 이루어진다고 하니 기다려 봐야겠다. 오후 2시부터 폭설 경보로 바뀐 이 도시의 거리를 범행현장으로 삼은 범인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오후에 약속을 잡고 남편에게 찾아갔다. 그녀의 소식이 꽤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한동안 말도 못하고 있다가, 그나마 전화가 걸려와 더듬더듬 받았다. 오후 수술을 다른 누군가에게 넘기는 듯 했다. 물어는 보았지만 그녀의 참혹한 모습은 차마 알려줄 수 없었다. 다만 간밤에 폭설을 틈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고만 했다. 그는 알겠노라고 말하며 힘없는 배웅을 했다.


 꿈에 눈이 왔다.


오전엔 다시 현장으로 찾아갔다. ‘수사중으로 보호된 사각의 링을, 동네사람들이 기웃거리고 있었다. 엽기적인 범행현장에 언론 측에서도 사람이 몇 왔다. 내게 이것저것 묻는 화살을 수사중인 내용에 대해 발설하는 것이 금지되어있다는 방패로 툭툭 막아내며 주변을 둘러 보았다. 큰길에서 한 블록만 들어와도 이렇게나 낯설어지는 거리에서 사람이 죽었다. 밤새 새어나오는 불빛을 보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니, 생각을 할 겨를이나 있었을까..하는 생각에 전화 한 통을 놓쳤다. 다시 걸어보니 부검이란다. 감전사로 인한 심장쇼크로, 특이사항은 없었으나 임신 4개월이었다고 한다. 범인은 한번에 둘을 죽였다.


증거물은 생각보다 적었다. 테이프에 지문이 묻어있을까 싶었으나, 계획된 범죄만큼이나 깨끗했다. 많은 흔적들이 눈과 함께 묻혀졌다. 반항한 흔적이 있을 법도 한데 피해자의 상태마저 손톱은 물론, 옷까지도 깨끗했다. 치밀했다. 그만큼이나 계획적이었다는 것은, 지인의 범행일 가능성이 높았다. 남편이 가장 유력했다. 하지만 주변인들과의 어떤 관계도 놓쳐서는 안 된다. 잡고 싶었다.


남편에게 돌아가 당일의 행적을 물었다. 오전에는 전날 당직으로 인해 병원에서 잤으며, 오후에는 4시간의 수술을 집도했다. 병원기록마저 남아있으니 알리바이는 확실하다. 특별히 그의 통장에서 거액이 인출되거나 이체된 사실도 없다. 이혼 후 특별한 행적조차 없고, 그의 집도 찾아갔으나 대강의 가구만 놓여있을 뿐, 차라리 병원 개인사무실이 더 사람사는 곳 같았다.


그렇게 별 소득없이 자리를 며칠 비우고 돌아와 서류와 씨름을 하고 있을 무렵, 의외의 지시를 받았다. 수사 종결. 피해자의 남동생이 더 이상의 수사를 원하지 않는다니.. 전화도 받지 않는다. 찾아가 볼 생각이다. 다른 사건이 떨어졌다. 방화범이라.. 눈이 그치니 미친 놈들이 또 생기나보다 싶어도 이건 아니다. 더 미친놈이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지 않은가. 일단은 명령이니 어쩔 수 없다. 혼자라도 가봐야겠다. 읽던 파일을 접고 새 파일을 꺼낸 뒤, 밥을 핑계로 서를 나와 부대에 전화를 했다. 동생이 면회를 거부한다고 전해 들으며 다시 한번 혀를 찼다.


병원을 찾아가 두 시간을 기다렸다. 간신히 만난 전 남편이자 유일한 용의자에게 수사종결을 통보했다. 해야만 했다. 남편의 표정을 읽어보려고 노력했지만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일 뿐이었다. 끝까지 허탕이군. 이래서야.


결국 눈도 녹아 봄이 왔고, 그 날의 거리, 그 날의 사건도 함께 녹아 잊혀지고 있었다. 인터넷 사회면에서 알게 된 훈훈한 사연중에, 제대가 코앞인 그녀의 남동생의 딱한 사연을 알게 된 모 회사에서 직장과 숙소를 제공해준다고 한다. 또 한가지. 인터넷으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더 있는데, 모 기업의 둘째사위로 받아들인 의사가, 작년 겨울에 두 시간을 기다렸던 그 병원, 그 분야의 의사라는 사실이었다. 같은 병원의 의사라도 누구는 재벌가의 따님을 아내로, 누구는 이혼도 모자라 사망소식을 듣게 되고.. 인간사 종이 한 장 차이라니까..  하고 혀를 찼다.

 

봄이 되어도 그 거리의 그 곳에선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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