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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산문 - 욕망
게시물ID : readers_79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검은날개
추천 : 1
조회수 : 41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6/29 02:07:02

그녀의 시선이 사진 한 장에 멈췄다. 사진 속엔 세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은 검은 머리를 가진 여자였다. 그녀는 다소곳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무릎 위엔 유치원생 옷을 입은 어린아이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뒤엔 중년의 남자가 서 있었다.

미야키 사쿠라 중위. 절대 정에 휩쓸리지 마라. ‘저게갑자기 나타나서 너의 살을 파먹을지 몰라. 같은 민족? 지금은 아냐. 네 목숨이 달려있어.”

사쿠라의 뒤를 따라오던 김진호 대위가 말했다.

저도 압니다. 그들은 동족이 아니라는 것쯤은..”

당당하게 말해보려 했지만 사쿠라의 말끝에는 힘이 실리지 않았다.

김진호 대위, 사쿠라 중위 뭐하고 있나? 살고 싶으면 빨리 움직여. 우리 셋이 뭉쳐야 여길 탈출 할 수 있어. 우린 이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 해.”

밀라닌 소령의 말에 사쿠라 중위는 신속하게 몸을 움직였지만 김진호 대위는 바닥에 침을 뱉은 뒤 한국어로 욕을 하며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골목 끝에 다다른 세 사람의 눈에는 거리를 가득 메운 경찰, 군인, 소방관 그리고 민간인들이 보였다.

산 넘어 산이네. 당신은 지금 이 상황에 우리가 살아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김진호 대위가 비아냥거리며 밀라닌 소령에게 말했다.

날 믿어라. 그리고 아무리 부대가 달라도 지금은 내가 너의 상관이다.”

밀라닌 소령이 단호하게 말했다.

어쭈? 단호하네, 단호박이냐? 전작권 환수 받은 지가 언젠데 상관타령이야? 그리고 왜 너 같은 양키새끼가 내 상관이지? 내 상관을 벌써 잊어버리셨나? 3일 전 2035분 후쿠시마 현립의과대학교 2층에서 네놈이 대가리에 구멍을 뚫은 감염자 강민구 중령이 내 상관이야!!! 이 개새끼야!!”

김진호 대위가 밀라닌 소령의 멱살을 잡았다.

대위님 그만하세요. 그 분께서 선택하셨잖아요. 그리고 방금 제게 한 말 잊으셨어요? 왜 그렇게 으르렁 거리시죠? 지금은 밀라닌 소령님을 따르는 것이 우리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이라는 걸 벌써 잊어버리신 겁니까?”

사쿠라 중위가 둘의 싸움을 중재시켰다. 그러자 김진호 대위는 밀라닌 소령의 멱살을 거칠게 풀며 씩씩거렸다. 밀라닌 소령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주머니에 넣어뒀던 지도를 펼쳐보였다. 김진호 대위는 그런 그의 모습이 더 꼴도 보기 싫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를 조합해보면 바로 저 앞에 있는 큰 블록을 지나 가장 마지막, 가장 높은 건물로 올라가면 구조용 헬기가 내려올 것으로 사료된다. 다들 알겠지만 작전 해석은 도청의 위협으로 인해 부대별로 특정 단어를 주고 그것을 조합하도록 되어있다. 뿐만 아니라 핵심적인 부분이 반대로 적용되니 이를 가정하여 풀이해보면 가장 먼저 보이는 가장 낮은 건물로 가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즉 헬기가 내릴 수 있는 가장 낮은 건물은 학교운동장. 그러니 블록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바로 후쿠시마 초등학교에 구조용 헬기가 있는 것이다. 현재 시간이 2244분이다. 16분 안에 도달하려면 시간이 없으니 신속하게 움직이도록 한다.”

밀라닌 소령의 말에 김진호 대위가 또다시 딴지를 걸었다.

확실한 거요? 계속 물어봤는데 말도 안 해주다가 이제 와서 저기다.’ 라고 말하면 그렇습니까?’ 하면서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쇼?”

내가 여기 온 목적은 이 조합들을 해석하라고 온 것이다. 미군 내에서도 정보해석능력은 손가락 안에 꼽힌다. 나를 믿어라.”

밀라닌 소령은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으며 말을 건넸다. 그리고는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그들은 어둠 속에 몸을 숨기며 조심스럽게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멍청한 그들은 다행스럽게도 셋의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후쿠시마 초등학교 담을 넘어 지정된 장소에 도착했다. 예정 시간까지는 약 5분 정도가 남아있었다. 밀라닌 소령, 김진호 대위, 그리고 미야키 사쿠라 중위는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 때였다. 굉음이 울리면서 거대한 서치라이트가 셋이 있는 곳을 비췄다.

쥐새끼들. 어딜 가려고? 우리가 흘린 거짓 정보에 또 한 무리가 속아 넘어갔군. 안 되지. 안 돼. 너희가 살아 돌아가면 대일본제국에 피해가 생기게 돼.”

학교에 설치된 음향시설을 통해 목소리가 학교 곳곳에 울려퍼졌다.

미야키, 당신이 그러고도 사람이야? 얼마나 대단한 것을 얻으려고 자국민까지 이용하는 거야!?”

사쿠라 중위가 소리치며 말했다.

사쿠라 중위. 대장에게 말이 짧군. 역시 조국의 배신자다워. 우리가 자국민을 이용했다고? 웃기는 소리. 후쿠시마 원전으로 죽기 일보직전인 사람들의 생명줄을 잡아준 게 누군데? 우리가 강요했나? 그들이 원한거야. 물론 약에는 부작용이 존재했지. 그건 인정해. 하지만 부작용 없는 약이 어딧는가? 그리고 그 부작용이 헤모글로빈 수치로 인해 일어나는 것 아니었나? 시중에 헤모글로빈 수치를 높여주는 약이 얼마나 많아? 약 부족 현상으로 약값이 뛰어오른 게 우리의 잘못이라 말하고 싶은가? 가진 자가 약을 많이 가지고 없는 자가 약을 가지지 못해 피를 빨아먹는 게 우리의 탓이라 말하고 싶은 건가? 언제나 가진 자는 항상 윤택했어. 그 현상은 우리의 잘못이 아냐. 이게 자본주의고 자유시장경제체제 아닌가? 내 말에 틀린 부분이 조금이라 있다면 한 번 말해 봐.”

미야키 대장이 말했다.

그건 국가가 시장경제를 제대로 잡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닌가? 보이지 않는 손? F00k You!! 그리고 정신과 육체가 따로 노는 사람들을 협박해서 종으로 부리는 게 잘 된 일인가?”

밀라닌 소령이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이 원한 건 생명연장이야. 무엇이든 한다고 한 건 국민이야. 그리고 우리는 연구를 계속 했어. 그 결과 피 한 방울에 담긴 헤모글로빈으로 1분 간 인간다운 삶을 영유할 수 있는 백신을 만들고 싼 값에 배포했어. 물론 갈증이 다가오는 시간이 두 배 이상 빨라졌지만 말이야. 현대 과학이 그정도니 어쩔 수 없지. 이제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어 하는 것들이 몰려들겠군. 어떻게 보면 이건 그들의 욕망이야. 타인을 위해 자신이 희생할 수 있지만 그들은 그걸 하지 않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자유를 빼앗기기 싫어해. 그렇기 때문에 그 자유를 놓치지 않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거야. 그리고 나는 이러한 국민과 대일본제국의 국익을 위해 그대들을 재물로 바치는 것이고. 그러니 그대들도 선택해.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희생할 것인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그대들의 자유를 찾기 위해 꿈틀댈 건지. 훈시는 끝났네. 우리 국민들을 잘 살펴 주길 바라네.”

미야키 대장의 방송이 끝나자 사람들이 운동장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음식을 바닥에 흘리기 싫어서인지 모두 하나 같이 맨 몸으로 무장군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작고 검은 그림자가 하나가 그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잠시 후, 서치라이트에 의해 어둠이 사라지면서 마침내 선봉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를 본 사쿠라가 총구를 내리며 소리치며 울었다. 그들에게 가장 먼저 덤벼든 사람은 바로 사진 속 유치원생이었다. 수백 명이 사람들은 그 아이를 자신들의 방패로 선택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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