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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음한 다윗왕과 간음한 목사들의 차이 1
게시물ID : religion_1955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름다운비젼
추천 : 0
조회수 : 2004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6/10/19 00: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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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어떤 목사가 교회 불임 여성도에게 자신의 자식을 낳게 한 것이 최근에 알려져 사회적으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피해를 당하신 남편분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다윗의 범죄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은 다윗에게 추상같은 보응을 내리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의 죄악을 대하시는 성품이 달라지신 것일까요?
물론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한데 자라고 있어도 그 즉시 가라지를 뽑아내지 않으시고 심판날까지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신약의 말씀 구절은 기독교인이라도 구약의 징벌과는 비교도 않되는 매우 엄격한 말씀이 선포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성경에 구구절절 옳고 좋은 말들만 써 있는 것으로 아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경악스러운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록이 성경이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보석 같은 말씀이 빛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 속에는 아담과 하와의 원죄로 인해 죄의 영향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의 죄악된 품성이
드러내는 실제의 추악한 모습들이 생생하게 드러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소년 목동 다윗이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는 결코 녹녹치 않은 과정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성경에서 예수님 다음으로 많은 분량이 할애되어 기록되었고 신약 성경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인물입니다.
음악가였고 시인이었고 장군이었으며 신실하고 성실하며 지혜로왔지만 또한 간악한 죄를 지은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영웅이 된 목동 다윗
 
목동 다윗이 키가 3m 나 되는 거구의 골리앗을 물맷돌로 쳐죽인 것은 유명합니다.
아브라함의 14대 손으로 8째 막둥이였던 다윗이 아버지 이새의 심부름으로 형들에게 먹을 것을 전해주기 위해
전쟁터였던 엘라골짜기로 갔을 때였습니다.
" ㅆㅂㅈㄷ$#$@ㅈ$$ㅅ#ㅎ#$!!! 이래도 안 싸울거냐? 나하고 싸우자. 날 죽이면 우리가 사울왕의 종이 되고
내가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 종이 되는 걸로 하잔말이다!!"
골리앗이 계곡이 떠나가라 아침 저녁으로 쩌렁 쩌렁 외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구에다 완벽한 갑옷, 베틀같은 창자루 험상궂은 외모까지 갖춘 골리앗을 당해낼 장사가 사울 진영에는 없었습니다.
군인들은 서로 떨며 다른 사람 눈치나 살피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기를 무려 40일이나 대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위기가 영웅을 낳는 법,
목동 다윗은 드디어 형들이 참가한 전쟁터 진영 앞에 버티고 있던 무시무시한 거구의 블레셋(팔레스타인) 싸움꾼 골리앗이
가볍게 입을 열어 하나님을 능멸하는 것을 보고 맙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능멸당하는 것을 다윗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다윗의 물맷돌은 골리앗의 이마를 정통으로 맞히고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들어 쓰시기 전에 반드시 준비시키고 연단을 하는 과정을 겪게 하십니다.
양을 치던 목동 다윗은 사자나 곰을 만났을 때 이미 그들을 쳐죽인 내공이 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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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선지자 사무엘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후 하나님의 영이 그와 함께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아. 헬라어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원형이고 다윗왕이 모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실 메시야의 조상으로서 유대인들이 다윗의 자손을 따지는 이유입니다.
다윗이 그렇게 전쟁터에서 큰 공을 세웠지만 백성들이 다윗을 사울왕보다 더 높이 추켜세우자
그 때부터 사울왕은 다윗을 보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시기하게 됩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왕을 피해 10여년 가까이 도망자 신세가 되어 어려운 시기를 겪습니다.
때로는 침을 흘려 미친사람처럼 보여, 그것도 블레셋 사람들에게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때도 겪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도 먹여 살려야 했기에 부자였던 나발에게 도움을 요청하다 거절당하기도 했고
사울왕의 집요한 추격을 피해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여러차례였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시기를 10 여년 겪고 나서야 사울의 죽음으로 헤브론에서 왕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7년 후 사울의 사촌 아브넬의 반역으로 다윗은 예루살렘 성을 차지하여 유다와 전 이스라엘을 통일왕국의 2대 왕이 됩니다.
고난 받던 시절의 다윗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어떤 결과를 드러내는 보여주는 삶의 모범이었습니다.
수많은 주옥같은 시편이 이 시기에 쓰여졌습니다.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시고 이스라엘이 날로 강성해지고 융성하자
그의 무게 중심도 높아만 가서 마침내 넘어지는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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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밧세바 간음사건
 
밧세바는 헷사람(힛타이트 사람)인 충성스런 우리야의 아내였습니다.
다윗왕이 간음 사건을 저지른 때는 우기인 겨울이 지나고 돌아온 새 봄의 때였습니다.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후 새 봄에 다시 오늘날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 있던 랍바성을 공격하던 때였습니다.
암몬 자손은 동성애로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에서 살아 남은 롯이 두 딸과 낳은 자손, 모압과 암몬 중 하나였습니다.
그때 마땅히 다윗왕도 함께 출정해야 했지만 다 이긴 전쟁이라 여겼는지 다윗왕은 성에 남고
부하 장수들만 군사들을 이끌고 출정하여 랍바 성을 포위한 상태였습니다.

저녁이 될 때 낮잠에서 깬 다윗왕은 일어나 성벽을 거닐며 주위를 살피며 배회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 아래에서 미끈한 몸매의 한 여인이 석양 빛을 받으며 목욕 하는 것을 다윗왕이 내려다 보게 된 것입니다.
그녀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성경에는 잘 쓰이지 않는 표현,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고 했습니다.
여인의 아름다움에 넋을 빼앗기고만 다윗은 사자를 보내 그녀가 누군지 알아보게 했습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밧새바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는 그날밤 그녀와 동침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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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그날 밧새바는 바깥에 나와 목욕을 했던 것일까요?
그날 밧세바가 목욕 했던 것은 정결예식이었음을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유대의 율법에 여인이 피가 나오는 유출이 시작되면 그날부터 10일 동안 부정하게 됩니다.
또한 생리 유출이 그친 그날로부터 칠일을 센 후에야 정결해지게 됩니다.
밧세바의 경우는 바로 여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몸을 씻어야 하는 율법에 따라 목욕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위의 여성 생리 주기표를 참고하면 아시겠지만 여성이 생리가 끝난 7일 후면 자연스럽게 가임기간이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은 당연히 율법을 지켰는데 아내가 생리 유출이 끝나고 난 후 7일까지는
부부관계를 엄격하게 삼가해야 했습니다. 정결해 지는 때가 되어서야 부부관계가 가능했는데
그 때는 곧바로 아기를 가질 수 있는 가임기간이어서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이 복의 상징이었던 자녀들을 다산 할 수 있도록
창조주 하나님의 섬세한 배려에 의한 필연적인 이유였는지 모릅니다.
그날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했기 때문에 밧세바는 자연스럽게 잉태하는 것이지만
또 다른 죄악의 잉태를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다윗왕이 밧세바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되자 그가 취한 행동은 위장의 음모였습니다.
전장에 나가 싸우던 우리아를 예루살렘으로 불러들였던 것입니다.
명목상으로는 전장의 소식을 우리아를 통해 알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윗왕은 남편 우리아가 밧새바와 동침하면 자연스럽게 우리아의 아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아가 도착하자 다윗왕은 그에게 군장 요압과 군사의 안부를 묻고 싸움터에 대한 것을 물었습니다.

"그래 고생 많았소. 이만 그대의 집으로 내려가서 씻고 쉬도록 하오"
왕이 보낸 사람들이 왕궁의 술과 고기, 음식을 들고 우리아를 따라갔습니다.
하지만 우리아는 아내가 있는 집으로 내려 가지 않았습니다.
왕궁 문에서 함께 온 동료들과 그날 밤을 지냈던 것입니다.
깜짝 놀란 다윗왕은 다음날 우리아를 불러 그에게 묻습니다.
"네가 먼 길 갔다가 돌아온 것이 아니냐.
어찌하여 네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느냐?"
 
우리아는 지극히 충성스런 태도로 왕에게 고합니다.
"언약궤와 함께 이스라엘과 유다가 영채 가운데 유하며
제 상관과 왕의 신복들 또한 바깥 들에 펼쳐진 진에 머물고 있는데
어찌 제가 집에 들어가 먹고 마시며 처와 함께 편안히 자리이까.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나이다"
이것은 우리아가 가지고 있던 의리였으며 감각적인 쾌락을 극기할 수 있는 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다윗왕은 다음날 다시 우리아를 불러 그가 이성을 잃어버리도록 잔뜩 취하게도 해보았지만
그는 여전히 성문에서 자고 그의 집으로는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칭찬 받아 마땅한 우리아의 군인 정신이었지만 죄가 잉태되어 복중에서 자라고 있는 다윗의 심경은 두렵기만 했습니다.
만약 밧세바가 낳은 아기가 자신의 아기임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남의 아내를 간음한자는 반드시 간부와 함께 죽여야 하는 법을 시행해야 할 왕권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될 뿐만 아니라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반역을 꾀할지도 몰랐습니다.
다윗왕은 편지를 써서 우리아 본인의 손에 들려 군장 요압에게  보냅니다.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장 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저로 맞아 죽게 하라"
우리아는 다윗 자신이 나가 싸웠어야 할 전장을 지키며 다윗 왕국의 명예와 승리를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로 싸운 많은 군사들 중의 한사람이었습니다. 특히 그는 충신 중의 충신이었습니다.
그런 충직한 우리아를 다윗왕 자신이 저지는 죄를 감추기 위해 죽이기로 한 것입니다.
 
결국 우리아는 전쟁터에서 무모한 공격의 선봉에 섰고 랍바성 싸움에서 화살에 맞아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밧새바가 남편의 상을 치르자 다윗은 밧새바를 왕궁으로 불러 처를 삼았고 밧새바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다윗은 이 일이 쥐도 새도 모르게 한 완전범죄인줄 알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이 보고 계셨음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 다윗왕 자신이 자신을 재판하도록 비유를 베풉니다.
 
"다윗 왕이시여.
성 중에 해괴한 일이 발생했사온데 판결하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말해 보오"
"한 성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자고 한 사람은 가난하나이다.
그 부자는 양과 소가 심히 많았사옵니다.
가난한 자는 아무것도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하나뿐이었습니다.
그 암양 새끼를 저는 저의 자식과 함께 먹고 품에 안아 자며 저에게는 딸처럼 되었나이다.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찾아왔나이다.
부자는 자기 양과 소가 심히 많았지만 그것을 아끼기 위하여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그 중에서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 그것을 자기를 찾아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이 자는 어떻게 판결해야겠나이까? "
 
다윗왕이 그 말을 듣자 크게 노했습니다.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자라.
저가 불쌍히 여기지 않고 이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4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나단이 다윗왕을 향해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 사람입니다.
남의 암양을 빼앗은 것이 사형이라면 남의 아내 빼앗은 당신 역시 죽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다윗왕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하며 두려움에 부들 부들 떨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처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그런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어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 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성경 속의 인물들은 죄를 적발할 때 두 가지 반응 중 한가지를 보입니다.
"내가 어찌할 꼬" 하고 괴로와하며 죄를 뉘우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저놈을 어찌할꼬" 하며 오히려 죄를 드러낸 사람을 죽이려 듭니다.
 
다윗왕은 즉시 나단 선지자를 향해 무릎을 꿇어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나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놓치지 않을 사람도 오랫동안 매우 큰 고난을 당할 수 있는 법입니다.
그 힘든 고통의 시간을 보내며 살의 과정의 길을 가면서 이 같은 심판이 내리는 까닭은
'네가 나를 업신여겼기 때문이다.'라는 것을 생생하게 되씹게 합니다.
아무리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도 하나님을 업신여길 정도로 죄를 짝하는
타락을 끝까지 두고 보시지는 않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죄악의 욕구는 처음 행인처럼 찾아오지만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면 손님이 되고
결국 죄악된 정욕은 주인 행세를 하게 됩니다.
 
그 때 다윗이 만약 나단 선지자를 선포를 무시했더라면 그는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율법에 따르면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함께 반드시 죽여야 했습니다. 레위기 20장 10절
하지만 다윗이 죄를 뉘우치는 바람에 죽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뿌린 죄의 보응을 넘치도록 거두게 됩니다.
자신과 밧세바와 사이에 간음으로 잉태되어 태어난 아이는 죽게 됩니다.
죄를 범한 부모는 살고 죄없는 아기가 죽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범한 죄로 인해 하나님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다윗을 사랑하셨더라도 다윗의 죄는 미워하시는 분임을 알려줍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의 죄악 중에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죄는
하나님과 신앙의 원수들에게 비난거리와 모독거리를 제공하는 큰 악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롬 2:24
 
그럼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다윗왕이 범한 죄를 짓는 경우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예수님을 믿고 이미 새로운 삶을 누리던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
그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십자가가 더 이상 없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이라는 말씀이 바로 여기에서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히6:4~6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 4:7


(계속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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