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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시대로부터 30여년 후 페르시아에 온 헤로도토스 (펌)
게시물ID : religion_1992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콜디스트윈터
추천 : 0
조회수 : 47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6/10 01:44:30
(펌)..


헬라의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와 바빌론. 이집트등을 여행하며 보고 들은 것을 해당지역과 헬라의 역사를 대조하며 쓴 그의 '히스토리아' - 후에 헤로도토스의 '역사'로 불림- 로 유명합니다.

그가 묘사하는 여러가지 것들이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유대역사와 조금씩 일치하는 것들이 있어 워치타워 협회에서도 종종 이 헤로도토스를 인용하죠.

물론 당시 헬라와 해당지역에 떠도는 풍문일 뿐 실제역사가 아닌 것들이나 엉뚱하게 전해진 연대등도 많이 제공합니다만 그의 역사여행의 기록은 인류사에 거의 최초에 속할 역사기행문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중 주목할 만한 것으로 헤로도토스는 에스더의 '관대한' 왕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그의 왕비로 아메스트리스라는 고약스런 여인을 설명합니다. 이 아메스트리스는 크세르크세스가 죽은 이후에도 왕비로서 아들의 통치에 섭정으로 군림하는 걸로 설명됩니다. 이 아메스트리스라는 이름은 아마도 다시 아베스타어로서 [후타오사]라는  여성의 이름의 헬라어 음역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성경의 에스더기의 에스더간택시기는 기원전 480년. 헤로도토스의 페르시아 여행시기는 아마도 그가 태어났을 기원전 484년으로부터 30여년 후쯤일 것입니다. 이 여행 후 그가 기원전 440년 경 히스토리아를 써내게 됩니다.


에스더의 왕비등극으로부터 30년쯤 후 페르시아에 온 그가 말하는 페르시아 왕비는 에스더가 아니라 포악했던 왕비 아메스트리스였으며 이 아메스트리스는 애초부터 크세르크세스의 조강지처. 페르시아의 군벌가문중 하나로서 크세르크세스와 결혼한 정식 왕비로서 설명됩니다.

구약성경의 에스더기에서 말하는 쫓겨났다는 와스디도 에스더도 헤로도토스의 기록엔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가 페르시아에 온 건 기원전 450년경 정도일 것입니다. 이때까지라면 에스더가 젊은 나이에 왕비가 됐다면 살아있을 시기입니다.

그러나 페르시아를 여행하며 헤로도토스는 그런 왕비에 대해선 단 한마디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실제 이전의 왕비를 내쫓고 에스더가 간택되었다면 당연히도 당대의 살아 있거나 혹은 죽었더라도 크세르크세스의 왕비로서 에스더를 설명했을 테지만 그가 기록하는 건 오로지 아메스트리스. 크세르크세스가 애초에 삼았던 조강지처 뿐입니다.

에스더기가 실제 역사가 아닌 문학적 허구라는 걸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과거 몇몇 학자들이 이 아메스트리스가 에스더를 말하는 것이란 설명을 하려 하기도 했으나. 아메스트리스가 쫓겨난 전처를 대신한 새로운 왕비가 아니란 점에서 그 점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쫓겨난 적이 있는 자가 아니란 점으로서도 와스디하고도 연결되지 않죠.


성경의 많은 부분들에 실제 역사가 아닌 당대 기자들의 상상이나 풍문등의 허구가 있습니다.


경전을 볼 때에 가장 좋지 않은 것은 경전을 기반한 종교를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맹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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