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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왕과 다윗왕(3)
게시물ID : religion_1993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임모탄김
추천 : 0
조회수 : 41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9/20 15:22:26


-사울왕의 죽음을 다윗이 듣다.요나단과 같이 슬퍼하다.(삼하1)

-다윗이 왕위에 오르고 내전이 시작된다.(삼하2)

-사울왕의 편이였던 아브넬이 다윗왕휘하에 들어가다.(삼하3:1-21)

-다윗의 심복 요압이 아브넬을 살해하다.(삼하3:22-4)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살해당하다.(삼하4)

-다윗이 왕이 되다.(삼하5:1-16)

-블레셋과 전쟁을 하다.(삼하5:16-25)

-다윗이 주변국과 전쟁을 벌이다.(삼하8)

-사울의 아들 므비보셋을 거두다.(삼하9)

-암몬과 아람과 전쟁을 하다.(삼하10)

-밧세바를 부당하게 취한 사건(삼하11-12:25)

-랍바 성을 점령하다.(삼하12:26-31)

-다윗의 아들 암논이 누이 다말을 겁탈했는대,이미 다말은 오라비 압살롬과 연예하는 사이였다.

 이에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고 도망하다.(삼하13:1-14:20)

-도망갔던 압살롬이 돌아오다.(삼하14:21-33)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다.(삼하15)

-므비보셋의 시종 시바가 예루살렘으로 도망한 다윗에게 먹을것(지원)을 주며 후일에 므비보셋의 재산을 달라함(삼하16:1-4)

-사울파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다윗에게 악담하다.(삼하16:5-14)

-압살롬이 다윗의 후궁들과 동침 하고 권력를 과시함(삼하16:15-23)

-압살롬에게 책사 아히도벨과후새가 참언하다.아히도벨은 다윗일파를 급습하여 다윗만죽이면 다윗일파가 무너질거라 했고, 후새는 압살롬이 직접 전장터에 나가서 친정해야 한다고 했다.(삼하17:1-14)

-후새가 다윗파벌과 내통하다. 후새가 다윗이 요단강가에 진을 치지 말고, 강을 건너가라 라고 해서 위기를 모면하다.(17:15-29)

-압살롬이 전쟁에서 패하고,다윗의 심복 요압에게 죽임을 당하다.(삼하18,19)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반란을 일으키고, 실해서 반란이 평정되었다.(삼하20)

-사울왕의 후손들을 처형하다.(삼하21:1-14)

-블레셋이 다시 침략하다.(삼하21:15-22)

-다윗의정치가 비로소 진정되다.(삼하22)

-인구조사와 재앙(삼하24)

 

   다윗의 기록된 생애는 위와 같다.기록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타임머신이 나와 봐야 알수 있을것이다.

사무엘상,하 의 서술은 어떤의도로 기술됬으며,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쓰여진 그대로 읽자면 사울왕은 신이 보기에 부정적으로 다윗왕은 신에게 그나마 긍정적으로 쓰여 있다.

저자의 주관적 관점을 넘어 최대한 역사적 사실과 정치역학적인 관점에서 보고자 한다.

 

   다윗은 사울왕이 전사하고 나서 온전히 권력을 양도받을수 없었다. 사울왕은 후계를 지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교계의 지지를 얻는 다윗은 11지파의 온전한 지지를 얻은것도 아니였다. 여전히 사울왕 치세에 기득권을 차지한 사람들이 기득권을 놓고 싶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후,다윗은 왕위에 정식으로 올라 정치를 시작했고 여러 주변국과의 영토분쟁은 여전히 문제였다. 여전히 사울의 후손과 추종자도 있었다.

그러기에 사울이 죽었을때 옷을 찢고 울었던것은 사울을 따르는 파벌들을 통합하기 위해서 였다.(측근이나 부하중에서도 여전히 여타파벌의 첩자나 대세를 가늠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런 모습은 통합과 관용의 의도로 해석될여지도 있다.)

밧세바 사건은 압살롬의 반란과 연관지어 다윗의 도덕성의 흠결이 압살롬의 반란으로 이어졌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이 기술은 '후술'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압살롬의 반란에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다.다만 맥락상 압살롬은 머리가 좋고, 리더쉽이 뛰어난 인물이기에 반란이 쉽게 일으킬수 있었을 것이다.결국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고, 압살롬은 죽임을 당한다. 다윗은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지만, 압살롬과 함께 반란에 가담한 사람들을 어떻게 처분했는 지는 기록되어있지 않다.

  이번엔 '세바'가 반란을 일으킨다. 

 세바는 적극적인 공세가 아니라 몇몇성과 지지자들을 결속해서 농성하고 독립적인 정권을 세우려하지만 배신당해 죽임을 당한다. 그후 사울의 직계 후손들이 이 사건에 엮여서  다 처형한다. 이전에는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 대놓고 죽일수 없었지만 다윗의 파벌과 정치가 공고해져 가니 더이상 눈치볼것 없이 처형해 버린것일 가능성이 높다. 

   다윗의 일대기는 몇몇 중대한 사건을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다. 다윗이 잘한 일도 있고 못한일도 있다.

다윗이 집권초창기에 국론이 분열되어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모든 지파와 파벌을 감싸안는 정치적 행적을 보인다. 

 

다만 인구조사와 전염병에대한 상관관계는 아직도 의문이 많다. 인구조사는 세금과 군대징집에 관련이있어서, 인구조사에 국론이 분열된것과 전염병이 우연히 겹첬을 가능성이 있다. 

  

끝으로, 다윗왕은 유대교나 카톨릭이나 개신교에서 까이지 않는 몇몇인물들중에 하나다. 

유대인들은 다윗왕의 치세를 그리워하고, 카톨릭이나 개신교는 믿음시 신실한 다윗왕을 자주 설교에 등장시키기도 한다. 

다윗왕은 그 치세에 믿음이 아니라 정치적인 안배와 배제를 가감없이 보여준 인물이다. 정치적 행위나 쇼맨쉽을 서슴없이 일삼았고, 필요없어지만 가감없이 배제했다. 다윗왕은 정치적 술수가 뛰어난 사람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음,솔로몬왕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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