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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육성] "아내가 갑자기 욕을 하네요..이런 개떡 같은 나라"
게시물ID : sewol_405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ehfdkdhk
추천 : 10
조회수 : 49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4/08 12:11:08
단원고 故박선균 군 아버지 박형민 씨 인터뷰

[세월호 육성] "아내가 갑자기 욕을 하네요..이런 개떡 같은 나라"

음성인터뷰 https://youtu.be/B546XYd5MFA
녹취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50408050308366&RIGHT_REPLY=R4
세월호 참사 1년, 유가족들도 침몰 중
사슴 눈망울을 떠올리게 하는 그의 큰 눈은 시종일관 초점을 잃은 채였다.
물기 촉촉이 머금은 스폰지처럼, 누르면 금방이라도 짜질 것처럼 그의 눈은 우수에 젖어있었다.
그러나 말은 거침이 없었다.
질문도 굳이 필요치 않았다.
1년의 세월 동안 체득한 '개떡 같은 세상'에 대한 끝없는 저주였고 한탄이었다.
유족들에 대한 국가의 기만, 일부 비뚤어진 사람들의 밑도 끝도 없는 가족들에 대한 비방, 그런 거짓과 불순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열변을 토했다.
그에게 지난 1년의 세상은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이었다.
그는 진실이 바로 설 때까지 자신의 아들은 죽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는 "우리 애는 유학 가 있는 거다. 언젠가는 올 거다"고 절규했다.
▶ 지금 혹시 누가 더 힘들까?
▶ 얼마나 힘들어 하는가?
▶ 아직도 그날의 답답함이 생생하게 몸을 지배하고 있는 거 같다.
▶ 아까 부인 걱정이 많이 되신다고? 치료는 좀 받고 계신가?
▶ 보고 싶을 땐 어떻게 하나?
▶ 애 방도 볼 수 있나?
▶ 왜?
▶ 친구들도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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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는 주홍글씨인가? 유족 박준철 씨 인터뷰
[세월호 육성] SNS 끊고, 세월호 숨긴 채 회사 다니고…
음성인터뷰 https://youtu.be/8LmRazaXbuw
녹취 http://www.nocutnews.co.kr/news/4394584
세월호 유족 박준철(45) 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왜 세월호 가족들의 삶이 버거울 수 밖에 없는지 짐작케 된다. 
그는 딸(채연)을 잃은 뒤 다니던 회사를 관뒀다. 
사고 수습 때문이기도 했지만 옛날과 같은 모습으로 직장 동료들을 접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된 이후 안산 인근 지역에 취직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세월호 가족이라는 '주홍글씨'를 떼기 어려울 것 같았다. 
결국 아주 멀리 서울에 있는 회사를 택했다. 
출퇴근만 3~4시간이 걸리지만 그 길이 주변의 시선에서 자유를 찾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물론 지금도 세월호 가족인 사실을 숨긴 채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사고 이후 모든 종류의 SNS도 접었다. 
지인들의 위로가 모두 어줍잖게 들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관계를 끊는 것이 세월호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길이었다. 

▶ 어디 다니시나? 
▶ 굳이 뭐 알릴 필요는 없겠지만 굳이 숨겨야 할 필요는 뭔가? 
▶ 따님이 희생 됐을 때 며칠 동안 회사도 못 나갔을 텐데…
▶ 일부러 서울로 잡은 건가? 
▶ 주변사람들 얘기를 여론이라고 보면 될까? 
▶ 조금 다른 얘기인데 지금 보시면 알겠지만 우리 가족들이 스마트폰을 원래 활용했나? 밴드라던가 이런 것들…
▶ SNS도 못하게 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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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故박예슬 양 아버지 박종범 씨의 파괴된 일상
[세월호 육성] "죽은 딸이 거리를 걷고 있데요"
음성인터뷰 
https://youtu.be/J_hgnz9Cs6Y
녹취 http://www.nocutnews.co.kr/news/4394581
파괴된 사나이. 세월호 유족 박종범(49) 씨를 인터뷰하고 든 생각이다. 
큰 딸(예슬)을 세월호 참사로 잃은 뒤 그는 여전히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술 없이는 잠을 청할 수 없고, 담배 없이는 마음의 안정을 취하기 어렵다. 
아이를 보내고 다시 시내버스 운전대를 잡았지만 딸 아이가 차창 밖에 어른거려 결국 사직했다. 
그는 지금도 딸 아이의 마지막 모습을 증언해줄 사람을 찾고 있다. 
혹시 오늘은 딸의 이름이 언급될까 인터넷과 SNS를 뒤진다. 
딸이 그린 그림 한 점, 딸이 그적거린 낙서조각 한 개도 버리지 못했다. 
그 것을 그는 '그리움'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남은 세 가족은 지금도 식당에 가면 예슬이의 밥그릇을 따로 챙겨놓는다고 한다. 
아직도 딸의 부재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없어진 가족을 느껴보기 위한 가족 나름의 방식이기도 하다. 
▶ 잠은? 
▶ 직장은? 
▶ 어떤 일? 
▶ 어떤?
▶ 안산시내?
▶ 멍 때린다는 게? 
▶ 어떤?
▶ 어떤 생각? 
▶ 지금 살고 있는 데는? 
▶ 그 집 그대로? 
▶ 근데? 
▶ 어떤 점에서? 
▶ 유품이나 이런 건 없나?
▶ 집에 그대로 있나? 
▶ 단지 그 집은 딸이 보이는 거 같아서?
▶ 지금 덜하나 
▶ 사진을? 
▶ 언제 딸이 사무치나? 
▶ 시신은 봤나 
▶ 나머지 가족들도 보살필 책임도 있고 다른 가족들 걱정도 되겠다 
▶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진가? 
▶ 그렇게 삶의 의욕이 없으면 남은 딸 아이한테도…
▶ 그게 무슨 말이냐? 
▶ 왜? 
▶ 지금 경제적으로 어렵나? 
▶ 혹시 계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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