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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노란 봄
게시물ID : sewol_563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내방구향기로와
추천 : 3
조회수 : 27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6/11 2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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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일 것이다.
 그 날 이후 일주일 이주일 동안 인터넷과 뉴스에는 우리보다 딱 1살 많은 언니 오빠들의 이름이 가득했다. 학교, 가정, 거리 모두 우울했다.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왜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것인지. 왜 기울어진 배의 사진이 반이 넘게 잠긴 사진으로 바뀔 때 까지 아무도 나오지 못했는지. 왜 팽목항으로 가는 길목인 우리 동네 도로가 서울에서 온 검은 차 때문에 통제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늘어날 때마다 나라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1년이 지나 2015년 봄. 나는 1년 동안 목포에서 광화문으로 왕복 8시간의 거리를 몇 번이고 드나들었다. 
교복을 입은 어린 우리까지 나서면 뭔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달라진 건 내 생각밖에 없었다. 
내가 본 건 개돼지 소리를 듣고 폭식투쟁을 봐야하고 정치적, 사회적 이미지 때문에 이용되는 사람들의 진심이었다. 허탈했고 회의감이 들었다. 
1년 전 일에 큰 관심이 없거나 슬픔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은 전혀 원망스럽지 않았다. 같은 감정을 느끼도록 강요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건 악질적인 장난이나 농담, 비난, ‘지겹다’는 시선이니 세상이 미쳤다는 생각만 들었다.

또 1년이 지나 2016년이 되었다. 2016년엔 슬프고 화나는 일이 더했다. 나라는 국민을 물대포로 마주봤고 민중이 아닌 소수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다.
변화를 위해 거리로 뛰쳐나온 수많은 촛불과 눈물이 있었기에 추운 겨울, 여러 갈래로 나뉘어 싸우던 사람들이 드디어 하나의 불꽃이 되었다. 
그 거리에선 모두가 여자든 남자든, 어리든 그렇지 않든, 어떤 정치관을 가졌든 하나였다. 그리고 그 불꽃엔 노란 리본이 함께 했다. 노란 물결은 사람들에게 물러서지 않을 용기를 주었고 원동력이 되었다.

여러 아픔과 충격을 딛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는 2017년,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팽목항이 다시 울었다. 
좋은 일이라고 해야 할테지만 3년 만에 돌아온 그들의 모습은 참혹했다. 또다시 슬픔이 가득했다. 
눈물과 대조적으로 아직도 유가족과 추모객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이 존재한다. 
추모는 싸우자는 시비가 아니고 가족을 잃은 슬픔은 결코 돈을 위한 시체팔이로 치부되어선 안 될 일이다.

사고라는 것을 안다. 여러 태만과 욕심이 겹쳐져서 일어난 재앙이다. 바다에 살면서 수도 없이 해상 사고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300여명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 떠났다. 우리나라에선 300여명의 목숨보다 한 여성으로서 국가 원수의 사생활이 중요했고 각자의 잘못을 덮는 게 중요했고 윗사람들의 명령과 절차가 중요했다. 
그 대처는 절대 사고가 아니다. 우리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바꿀 수 있다. 우리는 끓고 금세 식어버리는 냄비와 다르다. 식지 않고 꿋꿋하고 깐깐하게 불타야한다. 
출처 올해 봄. 장미대선 전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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