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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연재소설] - 박살! #3
게시물ID : sewol_567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괴발살!
추천 : 2
조회수 : 30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9/14 22:53:44

-성형-


두희야.

아이 엄마를 묻고 와서 곧바로 성형수술을 했다.

얼굴 전체를 성형했는데 거울을 봐도 내 얼굴인지 알아보지 못할 정도다.

전체적으로 아주 만족스럽다.


엄청난 고통이 따랐지만 아이가 죽은 것에 비하면 이런 고통쯤이야.

두희.

네가 살아 있을 때 성형기술이 이만큼 발달했다면

너도 박살나서 죽지 않고 편하게 살았을지도 모를 텐데.


한가지 재미있는 건 내가 나인 걸 알지만

다른 사람이 나라는 존재를 알 수 없다거지.

시험 삼아 예전에 같이 지내던 동료가 있는 곳을 어슬렁 거려봤다.

거의 한 시간 이상이나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는데도 전혀 알아보지 못하더라고.

정말 놀랍다.

하는 김에 목소리까지 바꿨다.

얼굴은 얼마든지 다른 사람으로 바꿀 수 있지만,

목소리는 금세 눈치 챌 수 있으니 수술을 할 수 밖에.


두희야.

네가 원래부터 나를 알고 지냈던 사람이라면 얼마나 놀라워 할지.

나도 처음부터 이럴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가 죽은 다음부터 난 많은 사람들과 힘을 모아야만 했다.

많은 사진을 찍고 또 찍혔기 때문에 이제는 부득이 얼굴을 감추고

목소리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마저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건

엄청난 슬픔이다.

어제는 여동생이 하는 작은 밥집에 들렸다.

주문을 하고 구석에서 혼자 먹었지.

친형제는 아니다. 고아원서부터 쭈욱 알고 지냈지.

오빠, 동생하면서 가족처럼 지낸 사이.


대체로 오래된 가게들이 그렇듯 카운터 쪽 벽면에는 가족사진들이 붙어있더구나.

그 중에 오빠인 내 사진도 있었고

내 아이와 같은 또래의 조카들과 내 딸과 여동생이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지.

내 딸. 여동생에게는 조카지.

지금은 없지만.


근데

그렇게 평생을 알고 지냈는데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더라.

그저 내가 가족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으니 흥미를 보였어.

-가게가 좀 그렇죠? 워낙에 오래된 가게라...

-아. 아니요...

-가게 자주 좀 들러주시고요... 이건 서비슨데 함 드셔보세요.

-근데...저건 가족사진인가보네요?

-네... 뭐 오래된 가게가 다 그렇죠.


어딘지 겸연쩍어 하는 동생을 보니

아주 오랜만에 내집이라도 찾아온 듯 편안하다.

그렇게

가끔씩 밥을 먹으러 동생네 가게를 찾곤 한다.

그곳에는 사람이 있었다. 사람의 따듯함이 있었다.

그리고 가족이 있었다.


나도

오래전에는 저런 생활을 했었지.

나도 어디가서 남보란 듯 잘 산다는 이야기는

한번도 못 들었지만.


그때는 내게도 여우같은 마누라가 있었고 토끼같은 새끼가 있었지.

두희야.

여동생가게를 찾을 때마다

가끔 내게 가족이 있었던 시절이 생각난다.


내 여동생이

쓸데없는 비품을 뭐하러 샀냐며 동서에게 잔소리하는 소리.

이제는 다 큰 조카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가게일을 돕고있는 모습.

다들 분주하고 손님들은 먹고 마시고 떠들고.

방금 전 주문이 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정신없고 뼈 빠지는 가게일.


그래도

얼굴에 그늘하나지지 않은 내 여동생과 그 가족들.

부러웠다.


-그래

동생아.

이 오빠는 지금껏  단 한번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가 부모도 없이 배고프고 가난한 시절을 보냈기는 했지만

그 배고픔과 가난은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누군가에게 졌다고 여겨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랬다.


하지만

너의 행복한 가족을 보니 나에게 닥쳤던 불행이 마치 패배처럼 느껴진다.

이젠 네 가족이나마 그저 행복하게 살아다오.

두희야.

난 여동생에게 그런 말을 해 주고 싶었지만

너를 박살낸 사람이 그랬듯이 놈을 박살내는 그 순간까지 입을 열 수가 없다.


누군가는 내가 생각하는 일을 미친짓에 불과하다고 여길지도 모르지.

그래도 난 가련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계획한 이 길을,

홀로 가련다.

그래야만 저 세상에 있는 내 아이와 마누라가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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