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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연재소설] - 박살! #5
게시물ID : sewol_567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괴발살!
추천 : 1
조회수 : 23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9/16 23:20:21

-말소-


두희야.

주민등록증도 말소하고 새로 하나팠다.

가지고 있던 자질구래한 물건도 처분한지 오래다.

더 이상 내 거주지가 일정치 않으니

일부러 추적하지 않는 한 나를 찾을 길은 없다.

더 이상, 가족도 전과도 없으니 나를 찾을 수 있는 구실도 없고.


하기야 나같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을 누가 추적하겠어?

이제는 그 누구의 도움도 바라지 않는다.


막상

오랜 시간동안 나를 둘러 싼 모든 것을 처분하니 되려 홀가분하다.

주민등록증.


이건 왜놈들이 처음에 독립운동가를 골라내기 위해서 만든

최초의 법적 리스트였어.

그 다음에는 불온세력과 간첩을 색출한다는 명분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구실이 자연스레 붙었지.


나중에는 나라에서 주는 코딱지만한 혜택이라도 받으려면

증거로 제출해야 하는 신분증으로 둔갑을 했다.

두희야.

예전에 너도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었겠지.

노인이니까 경로우대를 받고 다양한 혜택도 받을 수 있었겠지.

나도 이제는 법적으로는 노인이지만

더 이상 그런 혜택을 받고 싶지는 않구나.


병마가 서서히 갉아먹고 있는

얼마 살지도 못할 이런 몸뚱이로

노인행세나 하면서

죽는 그 순간까지도 계속 뭔가 해 먹겠다며

추잡하게 젊은이들을 위한 빈자리마저 낼름 빼앗는 놈들처럼 살기는 싫다.

두희야.

하기야 너처럼 노인이 되어서도

어른행세를 하고 힘 있는 사람인마냥 목에 힘을 주고 다니는

뻔뻔한 친일파나 살인자가 이 땅에는 압도적으로 많았지.


-나도 충분히 벌을 받았다고.

-죄값은 충분히 치렀다고.

아무렴

법까지 너를 지켜주고 있는데 무서울 게 없었겠지 .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 말고.


하지만 두희야.

난 너와는 완전히 처지가 다르단다.

내가 나라에서 받은 혜택은 죽은 자식을 팔아 돈벌이를 한다는

욕과 비난밖에는 없었다.

피해를 받은 건 이쪽인데도

갈수록 더 많은 피해를 입게 될 뿐이었다.


-쯔쯧, 그렇고 그런 사람이래.

-아이구. 정말 지지리 복도 없구만.

-얘들아. 저 아저씨. 그거 유가족이래.

-저리가자. 재수 옮붙겠다.

그렇다.

난 그렇고 그런 재수없는 일에 말려든 재수없는 사람이었고,

그런 재수없는 사람을 피하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도덕관이었다.


혹시라도

가뜩이나 없는 자신의 재수에 재수옮까지 붙을까봐 피하는 마음.

두희야.

고백하건데

그런 올바르지 못한 마음이 예전의 나에게도 있었다.


뜻밖의 사고를 당한 사람.

아프고 병든 사람, 처지가 딱한 사람들을 보면 잠시잠깐 동정을 할 뿐.

조금이라도

나와 내 가족에 무슨 피해라도 올까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멀리하곤 했지.


그런 과거의 자신에 대한 벌로 똑같은 경우를 당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정말 많이 했다.

그런데

막상 내가 그런 처지를 당하고 보니 기가막히더라.


자식의 죽음을 이용해 돈독이 오른

인간 쓰레기라는 말을 뒤에서 하는 사람이

설마,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내 친척,동료,친구,형과 아우들이었을 줄이야.

그런 내게 세상은 더 이상 살만한 가치도 이유도 없는 곳이었고

내 존재에 대한 법적 말소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두희야.이것만은 분명히 하고 싶다.

내가 스스로를 이 세상에서 지워버린 건 놈을 처단하기 위한 준비임을.

그리고 나로 인해서 또 다시 발생할 불행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의 하나일 뿐임을.


비록

놈들에게 잡히더라도 나만 이야기하지 않으면 모든게 끝나.

결국에 지문으로 내가 누군지를 알아낼 수 있다고 해도

나만 이야기하지 않으면 모든게 끝난다.


여하튼

후회는 없다.

가만 있어도

조금 있으면 죽을 몸이

무슨 얼어죽을 국가의 혜택이며 안정을 찾겠나.

그런 건

살인자이면서도 죽을 때까지 갖은 복을 다 누렸던

너같은 하인들의 특권이자 혜택일 뿐.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니 더더욱 내게 국가의 혜택같은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대신

내 한몸던져서 이 나라를 구한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들은 말인데?

그나저나

택배는 왜 이렇게 늦는지.

전화로 주문해서 새주민등록증 하나 만들어 달랬더니

금새 하나 만들어 보낸단다.

값이 좀 쎄지만 거사를 치루려면 필수야.


나보고 불법이니 뭐니 하진마라.

네가 나라를 구한다며 김구 선생에게 총질 한거에 비하면

주민등록증 정도는 귀여운 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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