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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연재소설] - 박살! #6
게시물ID : sewol_567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괴발살!
추천 : 3
조회수 : 20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9/17 22:30:56

(금일 연재에 앞서 소천하신 이애숙 어머님과 따님 고해인 님의 명복을 빕니다) 


-현충원-


두희야.

어수선한 시절에 너는 아주 쉽게 암살에 성공했다.

무장해제도 없이 그대로 들어가서

김구 선생에게 권총으로 네발이나 박았지.


아직도 숨이 남아있었지만 급소를 맞은 탓에

김구 선생은 얼마되지 않아 숨을 거두셨어.

정말 안타깝지만 난 너처럼 그럴 수가 없다.


경호원에게 첩첩이 둘러쌓인 놈에게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게 아니라 아예 불가능해.

그래서 난 처음에

놈을 처단할 장소로 현충원을 선택했었다.

아무리 악하고 독하다고 해도

놈은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는

한시라도 살아갈 수가 없는 자였으니까.


아무리 밖에 나가는 걸 삼가하더라도

매년 지 애비의 기일에는 반드시 무덤을 찾았지.

기자까지 잔뜩 대동하고는 보란 듯이 사진도 찍었다.

지 애비의 무덤에서 뭐 그리 할 말이 많은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지 애비 때 누렸던 절대권력이 그리웠을 수도 있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새로운 신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자신의 옛영광을 곱씹는지도 모르지.

하늘이 도움인지 지금의 현충원은

국가와 군대가 호국영령을 지키는 곳이 아니었다.


경영합리화라는 이름으로

민간 용역회사가 최소한의 경비를 설 뿐,

출입에는 그 어떤 제한도 제재도 가해지지 않지.

그 덕분에 난 매일같이 놈의 애비의 무덤을 찾을 수 있었지.


하루도 빠짐없이 10년을 그렇게 보냈다.

처음에는 경비들도 이상한 사람 취급을 했지만

어느틈엔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대접해 주기 시작했어.


나도 모든 정성을 다했다.

계약직인 경비들에게 때만 되면 갖은 음식과 음료를 제공했다.

커다란 태극기를 망토처럼 두르고

매일같이 놈의 애비의 무덤을 찾아가는

나를 보고 놈의 광신도들은 감동하기 시작했다.


어떤날은

놈을 지켜주고 있는 각종 어용매체에서 나를 찾아오기도 했다.

-10년가까이 매일같이 참배를 하신다면서요?

-존경하는 분이 이렇게 추운 곳에 누워계십니다. 저라도 잘 모셔야...

-참 대단하십니다. 그분의 어떤 점을 존경하십니까.

-우리를 먹고 살게 해 주셨으니까요. 가난에서 저희를 구해주셨고.

-정말 나라사랑이 대단하시군요!


거짓말이었다.

내가 여지껏 먹고 살은건 순전히 내 자신의 노력때문이었다.

누구하나 기댈사람도 없었고 기대봐야 도움 줄 사람자체가 없었다.

내 가난을 놈의 애비가 구해줬다는 생각은커녕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도 삶은 더 나빠지기만 할까 하는

소박한 의문으로 평생을 허덕였다.


그리고

내 아이가 가라앉는 배 안에서 울부짖으며 죽어간 이후로

그런 생각은 더더욱 강해질 뿐이었다.

하지만

놈은 그런 건 아랑곳 하지 않았다.

내 아이가 죽은 다음에도 때만 되면 출처를 알 수 없는 거액의 돈을 뿌리며

지 애비를 추모한답시고 엄청난 굿판까지 벌였다.


나도 그 굿판을 놈의 후원회원 자격으로 몇 번이나 본 적이 있었다.

놈은 예전에도 말했듯

정말 뭔가를 간절히 기원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놈이 눈을 감고 치성을 드리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고 있자면

이 나라가 당장이라도 세계 최고의 일등국가로 도약해서

모든 국민이 아무런 걱정없이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태평성대라도 올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때로는 그 굿판을 지켜 보면서

놈의 간절한 모습에 나도 모를 감동을 받곤 했다.


-놈이 저 정도로 미쳤다면 난 더 노력해야 해!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때로는 나 조차도 놈에 대한 신념이 무뎌져서

아무래도 좋다는 자포자기적인 심정이 들때도 있었다.


-강철같은 의지...

말은 쉽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매일 놈을 처단할 생각을 하고 있더라도

사람은 늘 먹고 싸고 자야만 하고, 당장 하루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1차적 존재임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하지만

놈의 치성드리는 모습은 확실히 나보다도 훨씬 간절하고 치열했다.

놈은

지 애비를 추모하는 굿판을 벌리면서

대체 무슨 기도를 할까.

-아버지 딱 한번만 더 아버지의 영광을 되찾게 해 주세요.

-아버지가 이룬 것보다 더 많은 부를, 더 많이 공짜로 얻게 해 주세요.

-아버지 제발 도와주세요. 제가 더 편하게 잘 살 수 있도록

-아버지 딱 한번만 더 정치를 해 보고 싶어요.


이럴까?

놈의 처절한 기도모습을 보고난 후부터,

나도 현충원 방문에 더욱 정성을 들였다.

누가 묻지 않아도 놈의 아비의 무덤에 쌓인 낙엽을

자진해서 쓸었고,잡초가 자라면 보는 족족 뽑았다.

처음에 관리인들은 참배객이 그런 일을 하면 안된다며

내게 조심스래 경고를 했지만,오랜시간이 지나자 그들은 오히려 나를 고마워했다.


-저거 규정상 위반 아니에요?

-그냥 냅둬. 우리 일 줄잖아.

당연하지.

자신들이 돈 받고 해야하는 허드렛일까지

내가 공짜로 도맡아 해 주고 있으니.


-아이구. 이렇게 하시지 않아도 되는데. 정성이 대단하시네요.

-아뇨. 이게 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그것보다 음료수들 좀 드세요.

참 미안한 일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거짓말을 해야하는게 진심으로 미안하다.


두희야.

이런 구차하고 뻔한 짓거리까지 해서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나를 너는 비웃겠지.

호쾌하게 총으로 쏴서

타겟을 단번에 쏴 죽일 수 있었던 네가 보면

정말 한심하게 생각하리라는 걸

난 마음으로 안다.


하지만

네가 너의 방법으로 김구 선생님을 살해했듯이

난 나만의 방법으로 놈을 처단할거다.

여하튼 신뢰는 참 좋은거야.

암살을 하는데도 여러모로 도움이 되니까 말이다.

요새는

태극기 활동에, 놈 애비의 묘소참배까지 합쳐서

점점 내 얼굴이 더 많이 인터넷에 알려지고 있다.


놈은 기특하다고 여기겠지.

두희야.

난 가끔씩.

어두운 방구석에서 가짜 애국충정에 불타는

내 모습을 지켜보며 흐믓해 하는 놈의 모습을 떠 올린다.


놈은 그렇게 빙긋이 웃지.

자신이 죽을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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