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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연재소설] - 박살! #10
게시물ID : sewol_568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괴발살!
추천 : 0
조회수 : 17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0/13 23: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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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문신 - 


두희야.

문신을 하러갔다.

너는 비난할지 모른다.

조금 있으면 죽어버릴 몸뚱이에 무슨 짓을 하냐고.


하지만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꼭 문신을 해보고 싶었다.

마음의 상처는 절대로 지워지지 않지만

이 몸뚱이가 없어지면 마음의 상처도 같이

먼지처럼 사라져 없어지지 않을까.

다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그렇게 하면 이 지독한 한이 조금이라도 없어지지 않을까.

그래.

난 태극기 아저씨로 유명하니까

이왕이면 큼지막한 태극기가 좋겠지.

유명한 문신집을 찾았다.

나이는 한 서른 남짓 됐을까,

노란머리에 빨간 수염을 한 젊은사람이다.


첫눈에 불량끼가 줄줄 넘쳤는데

상담을 해 봤더니 전혀 그렇지도 않더라.

이쪽에서는 꽤 유명한 직업인이라던가.

뭐 연예인 비슷한 거겠지. 그 바닥에서.

-태극기? 어디에?

-온 몸에.

-많이 힘들텐데.

-추가로 태극기 안에 이름도 새겨 줘.

그 이름으로 태극기 모양을 만들어 달란 말이야.

-무슨 이름...?

-여기 명단에 있는 이름 모두.

-...

난 305개의 이름이 적힌 명단을 넘겼다.


그러자 문신청년은 아무런 말이 없었어.

대신 나를 빤히 쳐다봤지.

분명히 성형한 나를 알아볼 수가 없을텐데도

마치 나를 알고 있는 것만 같았지.

-혹시라도 위험한 생각을 하신다면 타투 못해드립니다.

-돈은 넉넉히 줄테니까.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잠시 후 문신청년은 내게 말하더군.

이 이름 속에 자기 여동생이 있다고.

-저도 오랫동안 복수를 꿈꿔 왔습니다.

하지만 복수만으로는 먹고 살 수가 없더군요.

어쩌다 이 길로 들어와서 문신으로 먹고 살게 됐지요.

참 웃기는 일이죠?

하지만 이제 복수는 그만 접었습니다.

아저씨도 이제 그만...


그제서야 난 떠올릴 수 있었다.

그는 합동장례식장에서 오열하던 유가족 중 한명이었지.

두희야.

가족이 박살났다고 하면

그건 차라리 아름다운 표현일거야.

내 가족과 마찬가지로 그의 가족도...

...개박살이 났지.


그의 어머니는

내 마누라처럼 미쳐서

하루종일 동네를 돌아다니다 트럭에 치어 죽고,

그의 아버지는 갖은 소송빚에 자살을 했다.

그나마 살아남은 자식은 도중에 대학을 그만두고

어찌어찌 세월이 흐르고... 유명한 문신방의 주인이 되고.

우연히 나를 만나고...

두희야.

대체 그와 나의 인생은 어디까지 망가진걸까.

문신청년을 보니 갑자기 의지가 약해진다.


청년의 눈은 청명했다.

오래된 독을 완전히 뺀 것처럼 시원한 눈을 했다.

그는 늙고 병들고 힘없는 나를 선한 눈으로 바라봤다.

-이제 그만 내려놔요.

나도 힘겹게 용서를 했으니

아저씨도 이제는 마음이라도 편하게 지내기 바래요.


맑은 눈빛.

어떻게 하면 내가 그의 눈빛을 닮을 수 있을까.

십년이 지나자


폭탄을 들고!

칼을 들고!

망치를 들고!

놈을 갈갈이 찢어 죽여도 속이 시원치 않은 사람들이

서서히 용서를 하고 있다.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성스럽게 만들었을까.

-그냥... 부탁대로 해 줘.

-...


엄청난 고통이 따랐지만

그동안의 고통에 비하면

참을만했다.

비로서

305개의 이름이 내 혈관을 타고 핏물을 흘리며

등판에 아로새겨졌다.

305개의 이름이 하나의 모습을 이룬

태극기의 모습은 놈들이 더럽힌 태극기와는 달리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이 문신이야말로

내 인생 마지막의 유일한 도전이며

나를 지켜줄 방패며 창이 되리라.

문신이 끝나고

약속한 돈을 지불하려하자

문신청년은 받지 않았다.


-아저씨.

복수를 해도 원한은 없어지지 않을겁니다.

-...

두희야.

하긴 내가 그에게 무슨 대꾸를 하겠어.

성공할 확률이라고는 코딱지 만큼도 없는

복수를 과연 복수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내겐 저 청년처럼 모든 것을 용서하고

꿋꿋하게 살아갈 용기가 없었다.

-어림도 없는 소리!


내겐

더 이상 그런 용서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내가

놈을 용서한다고 해서 놈이 반성하는 일은

영원히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지난 십년의 세월이

모든 것을 증명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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