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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연재소설] - 박살! #11
게시물ID : sewol_568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괴발살!
추천 : 0
조회수 : 15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0/24 22: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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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신 - 


두희야.

나는 지금 놈 애비의 고향에 와 있다.

호랑이를 때려 잡으려면

호랑이 동굴에 가야 한다는 옛말이 있던가.


택시를 탔다.

한 칠십대 중반쯤 될까.

놈과 비슷한 또래의 기사다.

가만보니

백미러 밑에 뭔가 붙어 있어.

대개는 예수님이나 부처님.

그도 아니면 교통안전 기원을 위한 부적이려나 싶었지.


그런데 자세히 보니 떡하니 놈의 애비 초상화가 붙어 있더라.

이건 왜 붙인 거냐고

모르는 척 하면서 물어봤더니

어이없는 표정으로 되묻더군.


-이 어르신은 신이라카이.

-신?

-살아서는 우리를 무꼬살게 해 주시고

죽어서도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 앙캅니꺼.

나를 째려보는 그 눈빛이 정말 무서웠다.


조금만 더 말을 시키면 눈에서 레이저도 쏘겠더라.

이런 광신자들은 그저 상대하지 않는게 최고지.

잠자코 있었더니 오히려 운전사가 불이 붙은 것 같아.

놈의 애비에 대해서 떠들기 시작하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어차피

물어본 건 나니 내 잘못이기도 해.

그냥 여기서요, 내리기로 한다.

대충 다 온 것 같기도 하니까.

마침 멀찌감치 커다란 황금빛 동상이 보인다.

짐작은 했지만 역시나 놈의 애비 동상이야.


몇몇 어르신인지 봉사단체인지 모르겠지만,

죄다 예전에 많이 본 나뭇잎 마크의 모자를 쓰고 있었어.

열심히 동상부근을 쓸고 닦고,

갖은 정성을 다 하더군.

본적이 없는 외지사람을 경계하는 것 같았지만

별 다른 말을 걸지는 않아. 다행이지.


그 중에 한 호기심 많은 어르신이 내게 묻는다.

-아. 참배 오신교? 어데서?

-참배? 아, 경기도...

-하이고마. 그리 먼 곳에서 이리 찾아주시고...


참배라...

만약 내가 이미 죽은 당신들의 교주의 고향을 찾아

거사 전에 탐사를 왔다고 했다면, 그 사람들이 뭐라고 했을까.

-찢어쥐길까삐다.


이랬을까?

애먼 감상은 잠시 놓아두기로 하자.

놈의 애비 생가로 들어가면 커다란 영정이 놓여있어.

마치 무슨 사이비 교주의 재단을 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어.

꽃이 그 재단 주위를 빠짐없이 둘러싸고 있고 향내가 진동을 한다.


난 잠시 그 자리에서 서서 눈을 감고

예전에 거사를 치뤘던 몇 사람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그 누구도 감히 상상하지도 못할 거사를 치룬 사람들은

그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어느 영화에서 나왔듯이 우와아왘 소리를 지르며

민족을 위한 야수의 심정으로 쐈을까.

두희야.

삶은 정말 어이가 없다.

놈의 애비가 죽은 지 반 세기가 다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놈의 애비는 성인,성자로 부활해서

고향에서 신으로까지 추앙받고 있다니.


살아서는 악마였지만, 이제는 영원히 살아서

이 나라를 보호하는 수호신으로 다시 태어난 거야.

그리고

영원히 존경해야 할 구국의 영웅으로 둔갑을 했지.


그리고

그 자식이 다시 이 땅을 무참히 농락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자신을 추앙하는 광신자들에게 웃는 얼굴로 손까지 흔들어대는

너희들만의 천국.

잠깐 눈을 감고 있었더니 순진한 마을 사람들이

멀리 외지에서 와준 내가 고맙다며 차니 과일을 내준다.

미안하다며 여러번 사양을 했지만, 굳이 먹고 가란다.


-그라믄 찬찬히 둘러보이소.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눈물이 핑돈다.

정말 마음이 따듯한 사람들이다.


생전 본 적도 없는 외지사람에게 먹을 것을 권하고

아무런 의심도 없이 천천히 둘러보라는 옛 시골인심.

언제 느껴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우리네 시골풍경 그대로다.

이런 사람 향기 가득한 아름다운 고장에서

어쩌다 저런 괴물딱지가 나왔을까.

울컥한다.


두희야.

그런데 나는 말이다.

저들이 나를 위해 지극정성으로 내 놓은

과일과 차가 도저히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는다.

괴물딱지를 신으로 모시는 제단에서

나는 이를 악물며 눈물을 참는다.


누가

이 순진한 사람들을,

괴물딱지를 무작정 추앙하는 광신도로 만들었을까.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그런 생각을 곱씹어 본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 자주 들려서 마을사람들하고 안면을 틀까 싶다.


그러려면

때때로 기부도 하고 봉사도 많이 해야겠지.

상황이 허락하는 더 많이 얼굴을 많이 비칠 생각이다.

거사를 위해서.


두희야.

가면 갈수록 할 일이 태산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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