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국정농단 연재소설] - 박살! #13
게시물ID : sewol_569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괴발살!
추천 : 1
조회수 : 17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1/17 13:35:54
옵션
  • 창작글

- 태극기-


두희야.

여기저기 다니느라 좀 정신이 없었다.


사실은 태극기를 두르고 전국을 누볐다.

내 나름의 국토순례라고나 할까.

처음에는 사람들의 반응이 이랬다.

-여기 태극기에 환장한 정신병자 하나 추가요.


하나 고백할게 있다.

닌 아이가 죽고, 마누라가 미친 이후로

일부러 일 년 내내 태극기를 두르고 다녔다.

일이 있거나 없거나 할 것 없이

자나 깨나 태극기를 두르고 돌아다녔지.

그랬더니

애국 뭐시기라는 단체에서 갑자기 인터뷰까지 부탁하더라.

얼마후에 뉴스를 보니 내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와 있었지.

정말 기분 묘했지.


-간절히 바라니까 진짜 되는구나!

내친김에 국토순례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놈의 후원조직에서 어ᄄᅠᇂ게 알았는지 바로 연락까지 주더군.

직장은 그만두기 어려우니 우리가 힘써서

꼭 유급으로 장기 휴직처리 되도록 해 주겠다.

내 평생에 이런 기막힌 제안은 또 처음본다.


-이런 도움은 받지 않아도 되는데... 그저 좋아서 하는건데...

-뭘요. 선생님같은 애국지사야말로 저희들이 마땅히 도와야 할 영웅이 아닙니까!

졸지에 영웅까지 된거야.

내친김에 제주도까지 한바퀴 돌았어.

그랬더니 이번에는 언론이 난리도 아니더라.

정말 세상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야.

나는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서 태극기를 두르고 살았을 뿐인데.

놈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서일 뿐인데.


그 후로는

여전히 나라를 말아먹고 있는 놈들이

줄을 서서 나를 좆아다니기까지 하면서

선생님, 선생님이라 부르더군.

놈들이 나를 찾아오는 곳에는 항상 카메라가 있었다.

난 놈들이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면 사진도 찍어주고

포즈를 취해달라고 하면 포즈도 취해줬다.

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그 보다 훨씬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지.

내가 태극기 하나로 직장까지 구했다는거야!

아. 깜박잊고 말을 안했다.

내가 놈 애비 기념관의 미화원으로 채용된 과정.

매일 같이 기념관에 출석도장을 찍는 나를 지켜본 경비가

나를 알아본거지. 그가 나를 계약직 미화원으로 관리실에 소개한 것 같아.

마침 그때 미화원이 지병으로 더 이상 출근이 불가능 했다고 했지.


-정말 투철한 애국심이십니다.

요새 좀 생활이 힘드신 것 같은데

이왕이면 저희 기념관에서 일을 하시는 것도...

-아. 이러려고 하는게 아닌데... 뜻이 그러시다면 멸사봉공하겠습니다.

-멸사봉공. 정말 들어본지 오래된 말입니다. 이런 애국자와 함께 일하니 저희야말로 영광입니다.

물론... 그런 말은 관장은커녕 박물관 직원들과 한번도 나눈 적이 없었다.


대화를 나누기는커녕

처음에 관리실에서는 할 일이 없어서 입장무료인 기념관에서 죽치며

하루를 보내는 한심한 무직자자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지.

-어이. 이봐. 관장님실로 가는 계단이 좀 더러운데?

-예. 알겠습니다. 바로 치우겠습니다.


그럼 경비가 겸연쩍은 듯이 내게 슬쩍 귀뜸을 하지.

-어이. 관장님이 워낙에 깔끔하셔서 좀 조심 해야겠어.

-아이쿠. 죄송합니다.


놈 애비의 기념관에서 관장은 하늘이었고

하늘인 관장이 섬기는 신은 바로 놈의 애비였지.

관장은 하늘.하늘인 관장이 섬기는 신은 놈의 애비.

그럼 놈은 애비의 제사를 치루는 제사장?


하지만

그런 사소한 일은 아무래도 좋다.

난 그저 묵묵히 내게 맡겨진 청소를 할 뿐.

여튼

어디가서 독립만세를 외칠 때 외치더라도

일단 일 할 곳은 있어야 할거 아닌가.


뭐 놈들의 심장부는 아니더라도 상징적인 곳은 맞으니

몸 사리고 숨 죽이면서 기회를 노려야지.

그런데

툭하면 나를보고

어이 . 내 차 어디? 하던

인상고약한 관장놈이 나를 보고 꾸벅 인사를 해?

-선생님. 그간 선생님을 몰라뵀습니다.

이렇게 애국하시는 줄도 모르고, 그동안 죄송했습니다.

아주 뼛속까지 썩은 낙하산인줄만 알았는데

어느 방송에 나와서 인터뷰하던 나를 TV에선 본거지.

언젠가는 음료수 한박스에 과일 한바구니까지 두고 가더라고.


여하튼 방송의 힘이 정말 무섭다.

돌이켜보건데 이렇게 하기까지 결코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무리 목표가 있다지만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은 자괴감도 들었지.

하지만

놈들에게 조용히 파고 들으려면 어ᄄᅠᇂ게든 사람들의 눈에 띄는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놈에게 접근하려면 우선 놈의 눈에 띄어야만 했거든.


맨 처음에

시내 도매상에 가서 가장 큰 태극기를 달라고 했어.

아무리 작은 태극기를 흔들어봐야 수많은 군중들 속에서 보이지도 않을 테니까.

그 정도로는 한참 부족했지.

나중에는 아예 카메라를 보고 몸을 흔들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했어.

놈이 한번이라도 더 나를 주목하도록 했어야 했다.


그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한결같이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경찰이니 각종 단체에서 뭔지도 모를 감투를 하나씩 주겠다고

작심하고 찾아오는데 아주 생난리지 뭐냐.


하하하.

이런건 유명세라고 해야하나.

그건 그렇고

애국지사를 가장한 친일매국노 후손놈들과 한편이 되니 마음이 한결 편하다.


이제는

놈들이 나를 완전히 같은 편으로 여기는 것 같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