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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연재소설] - 박살! #16
게시물ID : sewol_573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괴발살!
추천 : 0
조회수 : 22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3/16 18: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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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고독-


두희야.

깊은 밤이다.

예전에 아이와 마누라가 죽기 전에 말이야.

새벽에 일 나가서 새벽에 들어오면 모두들 곤하게 잠이 들어있더라.

아이와 마누라가 자고 있는 방을 살짝 열어보면

내가 온 것도 모르고 잠만 자더라.

아이와 두런두런 대화를 하던 게 언제였던가 기억도 나지 않아.


마누라라도 평안한 얼굴로 자면 좋겠는데

무슨 험한 꿈이라도 꾸는지 이리뒤척 저리뒤척.

두희야.

그 때 나는 말이다.

일년 365일 일만 했기에 아빠노릇, 남편노릇 한번 못하는게 슬펐다.

무슨 시간이 나야 말이지.


그저 치약 한움큼 묻혀서 이닦고 눈을 붙여보려고 애를 썼지.

몸은 피곤해서 이부자리에 녹아들어갈 지경인데도

정신만은 시간이 갈수록 초롱해지니 죽을 맛이었다.

서너 시간 자고나면 또 후다닥 일어나 근무하러나가야 하는데

잠은 안오고.

그런게 고독이었을까.


마누라가 미치기 전에,

그나마 살아 있을 때 내 마음 속을

훌훌 털어놓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놈을 죽여버리고야 말겠어!


고향친구에게도 직장동료에게도 그 어느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는

이 심정을 너는 알까.

내 결심을.

두희야.

나는 놈을 죽여야만 속이 편하겠다고

미쳐 죽어가던 마누라에게도 말하지 못했던게 너무 아쉽다.


너처럼 사람 하나 죽이는데

많은 사람과 조직의 도움을 받는 것도 아니고 말야.

그것도 권총으로 김구 선생을 네 방이나 쐈잖아.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암살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지금 혼자다.


조직도 없고 사람도 없지,

너처럼 사람을 죽여서 평생을 먹고 살 돈이 쥐어지지도 않는데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놈을 죽이고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감옥가는 길 밖에 남지 않았다.

그것도 살인자의 이름을 지고 평생을 살아야 하지.


너는 내게 이렇게 말할까? 살인자에게도 급수가 있다고.

너는 나보다 훨씬 급이 낮지 않냐고.

맞아.

나는 너보다 훨씬 급이 낮지. 부정하지 않아.

너처럼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이 되어있고,

누군가를 죽이려는 조직적 도움과 지시 아래서 행해지는

계획적인 살인이 1급이라더라.


상황이 이러니 내가 기껏 놈을 죽여봐야

어느 정신나간 미화원의 우발적인 범행으로 치부될테니

확실히 나보다는 네가 급수가 높다는걸 인정할 수 밖에.

아마 너는 이렇게 생각할 거야.

어디 배우지도 못한 고아출신 일자무식쟁이의

우발적인 단순범행하고

엘리트 군인출신인 나, 안두희를 어디서 감히 비교하냐고.

살인도 살인나름이라고.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난 김구선생님의 백범일지를 다시 읽으며 마음을 다잡아 본다.

상해의 임시정부.

어디가서도 외면받고 무시당했지.

당시의 외국인들의 눈에는 이렇게 비췄지.

-저기 봐라.

일본에게 나라까지 뺏긴 한심한 족속들이 모여있는 피난민촌이 있다.

저런것도 임시정부란다. 쯔쯧.

이런 멸시를 받는게 고작이었지.


그런데도 김구 선생은 절대로 환경 탓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있으면 있는데로 없으면 또 없는데로 말야.

저 서양열강들조차 무서워서 함부로 하지 못 못하는

일본하고 제대로 한 판 붙어보자는 생각을

죽을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았어.

이렇게 나라사랑에 미친 사람이

이 나라에 몇이나 있을까.


그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

강철처럼 담금질된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백범일지를 볼 때마다 새삼 머리가 숙여진다.

두희야.

나도 김구 선생님처럼 나머지 인생은 민족을 위해 살아갈 생각이다.


세상사람 모두가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

네 이름 석자를 잊는다 하더라도, 나만은 너를 잊지 않을거야.

하기야

누굴 탓할 일도 아니야.


네 이름 석자 모른다고

무슨 죄가 되는 것도 아니고,

이제와서

네가 천하의 죽일놈이라고 떠들어본들 다들 아침이 오면

평소처럼 이닦고 세수하고 출근하느라 바쁘겠지.

모두들 바쁘잖아. 누굴 탓할 수만도 없어.


어찌됐건

고독이니 뭐니해서 괜히 쓸데없는 말이 많아졌다.

반세기도 더 지난 너의 살인에 목매고 있는

나같은 바보같은 사람들이나 잠을 못자고 있겠지.

근데

너는 오늘 지옥에서 무얼 하고 있으려나.

여기까지 쓰다보니 나도 슬슬 잠이온다.


다행인 것은

김구 선생님의 암살로 네가 맞아 죽었듯이

놈이 평생 누리던 부귀영화의 시간도

그리 많이 남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럼, 부디 다음 소식까지 지옥에서 잘 지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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