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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연재소설] - 박살! #17
게시물ID : sewol_573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괴발살!
추천 : 0
조회수 : 21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3/18 16:2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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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과자통 속 설탕가루-


두희야. 동 틀 무렵이다.


매일 똑같은 일상.

이른 새벽에 버스를 타고 현충원에 들렸다가

다시 직장에 나가려면 전쟁터가 따로 없다.

항상 무슨 일이 터지지.


누군가 갑자기 횡단보도 너머 버스쪽으로 뛰어드는건 일도 아니야.

사람들이 버스 안에서 치고 받을 때는 정말 답이 없어.

이젠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아무런 감각이나 감정이 들지 않아.


이렇게

그저 살아 있기만 하다가

남들과 다름없는 뻔한 일상 속에서

서서히 늙고 병든 채 죽어가는 건가?

예전엔 나도 그렇게 살았지.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살아있는 채로 죽어가는거야.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한 채,

먹고 싸고 자고 깨면 일을 나가야 하니까.


다들 생각을 멈추고

뒤돌아보면 예전에 꿈꿨던 자신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어.

그런데 말이야.

사람들은 비좁은 버스 안에서 왜들 그렇게 싸울까.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두희야.

나는 말이다.

별 것도 아닌 일로 악다구니치고 밀고 치받는 다른 승객들을 보고 있을 때,

버스 옆으로 스쳐가는 너와 놈의 모습을 종종 보곤한다.


광택이 넘치다 못해

당장에라도 어딘가로 미끌어져 버릴 것만 같은 검은색 고급 외제차.

너와 놈이 자동차의 뒷자리에서 여유롭게 앉아

소곤소곤 무슨 말인가 나누고 있어.


-쳇.

무슨 도로 상태가 이 모양이야.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이놈의 나라가 뭐 그렇지 . 뭐 제대로 된 게 있어야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일본을 한번 보라고.

얼마나 깨끗하던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저 너절한 버스 좀 치우면 자동차 다니기에 한결 쾌적해 질텐데.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버스나 타는 지지리 못난 것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평생 버스나 타고 다녀라. 한심한 것들 같으니.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말이야.

저 꼴같지 않은 김구는 왜 아직도 살아있어?

-지당하신 말씀...

아니 곧 분부대로 시행하겠습니다.


그냥 옆에 지나가는 차일 뿐인데

놈과 밀담을 나누며

이 나라 한복판을 힘차게 가로지르는

두희. 너의 모습이 떠올려지는 건 왜일까.

그것도 반세기도 훌쩍 지난 예전의 네 모습이 보인다니.


두희야.

드디어 내가 미친 걸까?

틈만나면

너를 나쁜 놈으로만 만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내 마음이 비뚤어진걸까?

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들 싸우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통로를 지나가는데 툭 건드렸다나.

노인이 앉는 자리에 새파랗게 어린놈이 모른 채 하며 앉아있었다나.


아아.정말이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버스 안은

엄청나게 거대한 빈 과자통같다.


아무리 깡통을 흔들어봐도 설탕부스러기 하나 나오지 않는데

사람들은 뭔가 조금이라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서로 때리고 발길질을 멈추지 않아.

아무 의미도 없이 반복되는 무의미한 일상.

생각 할 여유도 없이 짜증만 나는 세상.

그 사이에 손쉽게 너희들이 꾸미고 있던 나쁜 일을

쓱싹 해 치울 수 있는 이 편리한 세상.


아마도 그게

두희, 너와 놈이 바라던 꿈의 세상이 아닐까.

그런데

커다란 과자통에 가득했던

맛난 과자는 다 어디로 갔을까.


버스 옆을 달리고 있는 검고 매끄러운 고급 외제차가

우리들이 먹어야 할 맛난 과자를 연료삼아 신나게 달리고 있지 않을까.

나잇살이나 먹고 무슨 동화 속 주인공이 개뼉따귀 뜯는 소리냐고?


버스가 반환점을 돌 시간인데

아직도 싸움은 멈추지 않는다.

근데

이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이 사람들의 목적지는 어딜까?

너희들이 꿈꾼 정신없이 바쁜 세상으로 가고 있는걸까?


바쁘고 정신이 없어야 생각 할 틈이 없고,

생각 할 틈이 없어야 너와 놈의 목적대로

이리저리 흔들릴테니.

그래야만

너와 놈이 행한 살인조차 금세 잊혀질테니.

그리고

네가 남긴 거대한 빈 깡통 속에

그나마 남아있는 설탕가루라도 핥으려면,

아귀처럼 지옥의 불 속에서라도 서로 살아남겠다고 치고 받겠지.

그러다 보면 어느틈엔가 하루가 훌쩍 가버릴테니까.


그래야만 너와 놈의 죄가 금세 잊혀질테니까.

두희야.

내 말이 틀렸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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