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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연재소설] - 박살! #39
게시물ID : sewol_5747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괴발살!
추천 : 1
조회수 : 20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4/15 01: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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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무시-


두희야.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놈의 주변을 배회했지만

난 놈을 가까이서 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어떻게 된 사람이

십년을 밖에 안 나오고 살 수 있는지 너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하기야 밖에 아예 안 나온 것은 아니다.


놈이 자주가는 호텔 사우나의 VIP실은 나도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

예전의 하인들과 다시모여 몰래 정계복귀에 관한 얘기를 나눈다는

소문도 나돌지만 그것도 아무런 도움이 안됐다.


놈이 밖으로 나가지 않고 놈의 하인들이 놈의 집으로 드나드니까.

놈의 하인들은 놈이 물러간 이후에

전혀 만남을 가지지 않은 것처럼 가장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놈의 하인대표가 지금은 거대 로펌의 회장직을 맡고 있고,

그 마누라가 건축업까지 겸했는데 놈이 운영하는

모든 건물과 재단의 인테리어까지 도맡아 하고 있었다.

당장에 쳐 죽여도 모자란 놈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슴을 펴고 활개를 치는 것이 영 못마땅하지만

난 단 하나!

애초부터 난 놈만 잡기로 했기에 그러려니 한다.


그런 부정이

어디 놈에게 한두번일까.

뭐가 어ᄄᅠᇂ건,

놈이 1년에 밖으로 나가는 건 고작 서너 번 밖에 없다.

지 애비,애미의 기일과 여름에 한차례 별장에서 보내는 것 빼고는

기념관 방문정도 밖에 없으니 놈을 처단할 기회는 극단적으로 적다.

나도 예전에 너처럼 놈에게 접근하기 위해

놈이 소속한 정당의 당원증도 만들어봤지만

일개 당원자격으로는 놈과의 대면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하지만

지난 십년동안 내가 해 온 모든 노력이 결실을 맺을 때가 온 것 같다.

태극기를 온몸에 새기고 전국일주도 하고

그 덕에 TV출연도 해서 나름 유명해지기도 했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놈들의 당에 입당까지했고 그 누구보다도 충성을 다했다.

놈과 놈들의 하인들이 만든 친위대며 각종 조직활동도 열심히 했다.


태극기를 두르라면 둘렀고

몽둥이를 들고 가라고 갔고

죽창을 휘두르라면 휘둘렀다.

두희야.

그 정도로 열심히 활동을 했으면

넌 내가 조직의 중간간부쯤은 될거라고 생각하겠지.


그래봐야 놈에게 난 일개 계약직 미화원에 불과했다.

놈이 볼 때 난 사람도 아닌거지.

두희야.

놈이 대단한 것은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점도 아니다.


놈이 정말 대단한 건

지 애비의 무덤이며, 기념관을 10년동안 보살피는

내 존재를 알면서도 모른 채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매년 빠지지 않고 내가 지 애비의 고향에 내려가

제사인지 뭔지도 알 수도 없는 사이비 종교의 미친 의식을 할 때,

매번 맨 앞자리에서 얼굴을 비친 나를 통 몰라본다는게 지금도 놀랍다.


과연

놈은 나를 몰라봤을까?

하지만

놀랍게도 놈은 진짜로 나를 못 알아보는 것 같았다.

모를 리가 없는 나를 보고도!

매번 나를 보면서도 몰라보는 모습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전혀 어색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놈은 정말 나를 몰라보는 걸까?

난 혼란에 빠졌다.

다른 것은 이해가 되도 이것만은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게다가

놈은 지난 10년동안 하루종일 집에만 틀어박혀 TV만 보고 있었다.

그러니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이 나라의 태극기 마스코트를 자처한 나를 놈이 모를 확률은

아마 없다고 봐도 무방할거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금새 답이 나왔다.

구중궁궐에서만 평생 살아온 놈의 인생에서

나 같은 미화원은 그저 살아서 움직이는 어떤 물체에 불과했다.

말이 좋아서 미화원이지.

적어도 놈에게 미화원이란 인간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충실한 하인들보다도 훨씬 열등한, 그저 쓰레기 치우는 도구에 불과했다.


뭐 놈의 생각이 그렇다면 못 알아보는게 당연했다.

쓰레기 치우는 청소기가 조금 꿈틀거린다 해서

주의깊게 쳐다보는 사람은 없을테니까.

간혹

오랜시간이 흘러 놈의 인생관이나 인간성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두희야.

내 생각에는 말이다.

사람이란 그렇게 쉽게 변하는 동물이 아니란다.


놈에 대한 내 분노가 바뀌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놈의 사람에 대한 무관심이 바뀌지 않았다는

증거는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놈은 전에도 그랬다.

예고없이 기념관에 훌쩍 들렀던 3년전 그 때.

난 놈을 똑똑히 봤다.

놈은 자신의 최측근임에도 사람의 얼굴을 마주 보고 말하는 법이 없었다.

그 대신 무언가 뚱한 표정으로 무표정하게 측근에게 이것저것 손짓하는 것이

멀리서나마 내가 놈을 볼 수 있었던 모습의 전부였다.


그 때 난 확신했다.

예전에 놈의 변호인이 그렇게 강조했던,

놈도 결국은 피가 통하는 인간이라는 논리는

그저 한 때의 어려움을 피하려는 거짓말에 불과했다는걸.

그렇게 놈의 거짓말을 변호해 주며 거액의 변호비를 챙긴 악덕 변호사들은

나중에 놈의 소속정당에서 국회의원 뺏지를 하나씩 달게 됐다.

국회의원유세를 돌면서 놈의 변호사들은 이런 말을 즐겨했다.


-여러분,우리가 남입니까!

몇 년 후, 재선에 실패하고 국회의원 뺏지가 떨어지자

이번에는 놈에 못지않은 악덕기업 전문변호인을 자처하고는

천문학적인 수입을 올렸지.

그 변호인들은 예전에 놈에게 뇌물을 주던 그 기업들의 고문이 됐다.


하긴

놈의 하찮은 하인들조차 이 정도로 대단한데,

지난 십 년동안 태극기를 둘러쓰고

끊임없이 주변을 맴돌던 나를 여러번 보고도

놈이 알아보지 못한게 무리는 아니다.

놈이 나를 봤을 때 난 그저 쓰레기나 치우는 기계였을테니.

놈이 보기에는 내가 평생 놈의 뒤도 못 닦아 줄 한심한 천민에 불과했을거야.


하지만

매번 그렇게 모르는 척 무시를 당해도

난 김구 선생의 한마디에 위안을 삼는다.


-나는 임시정부의 문지기였다.

-그리고 나는 놈의 애비 기념관의 미화원이다!

김구 선생님 흉내를 내려면 어떻게 해서든 경비를 할 걸 그랬나?


그런데 말이야.

내가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서 미화원 자리를 꿰찬데는 다 이유가 있다.

경비는 애초에 글렀다.

놈이 기념관을 방문할 때만은 안전상의 이유라고 해서

경비조차 경비봉을 휴대하지 못하게 하니까.


그렇다면 미화원이 훨씬 낫지 싶었다.

사람들이 경비는 무의식적으로 힐끗 쳐다봐도

미화원을 빤히 바라보는 사람은 없으니까.

두희야.

이거, 단순해 보이지만

나름 생각많이 한거다.


그리고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지난 십년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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