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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인권유린사건 '형제복지원' 법무부 과거사위원회가 진상 규명에 나서
게시물ID : sisa_10414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lean-korea
추천 : 22
조회수 : 527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04/11 23:12:19
한 검사가 의문을 가지고 수사하던 형제복지원 사건 하지만 바로 여러곳의 압박으로 재대로 수사를 하지 못하고 끝나버린사건
형제복지원’ 재조사 나선다…“대법에 비상상고도 검토”

1970년대 중반 부산에 수용시설이 하나 들어섰습니다.

거리를 떠돌던 부랑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형제복지원입니다.

하지만 그 곳 실상은 이름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무자비한 폭행과 불법 감금, 성폭력까지 만연했습니다.

12년 동안 숨진 수용자가 513명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나라 최악의 인권 참사인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놀랍게도 아직까지 그 진상이 다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검찰 수사가 외압에 좌초됐기 때문입니다.

검찰권 남용을 밝히고자 출범한 법무부 과거사위원회가 진상 규명에 나섰습니다.

본격적인 조사를 맡은 대검 진상조사단은 특단의 조치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유호윤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연관기사] [뉴스9] “복지원 아닌 생지옥이었다”…30년 전 악몽 여전

[리포트]

검찰 진상조사단은 판결문부터 바로잡기로 했습니다.

1989년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에 대해 대법원이 내린 판결이 대상입니다.

당시 법원은 박 원장이 수용인을 불법으로 감금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정부 훈령에 따른 정당행위라는 것이었습니다.

진상조사단은 그러나 이 훈령이 위헌이 분명한 만큼 무죄 판결도 잘못이라고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최상급심인 대법원이 판단을 내리고 원장 박 씨도 이미 죽은 상황, 진상조사단은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에게 비상상고 방안을 보고했습니다.

확정 판결의 오류를 바로잡아달라고 대법원에 직접 요청하는 제도입니다.

판결에 대한 강력한 견제장치이다보니 검찰총장만 가능합니다.

조사단은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정부 차원에선 처음으로 피해조사를 벌이기로 했습니다.

31년 전 사건 당시 검찰이 제대로만 수사했다면 드러났을 피해 사실입니다.

조사 대상은 수용자와 숨진 수용자의 유가족입니다.

이들 한 명 한 명을 직접 찾아가는 '출장 조사'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습니다.

관련 기록물 확보에도 나섭니다.

우선 부산시청과 부산 사상구청, 그리고 국가기록원에서 관련 자료를 확보할 예정입니다.

부산 시설공단을 통한 사망자 확인도 병행합니다.

[최정학/형제복지원 대책위/방통대 교수 : "국가범죄니까 국가가 국민들에게 미치는 엄청난 피해 대해서 당연히 진실 밝히고 피해 배상해야 하는 거죠."]

최악의 인권 유린 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형제복지원 사건,

뒤늦게 반성에 나선 검찰이 어떤 진상규명안을 내놓을 지 주목됩니다.

KBS 뉴스 유호윤입니다.
 
 ‘형제복지원 다시 1년, 검은 배후는 누구인가’편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당시 부산지검장이었던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한 인터뷰 내용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형제복지원은 지난 1975년 제정된 내무부 훈령 410호에 근거해 부산에서 운영돼 온 복지시설인데 시설이 폐쇄된 1987년까지 30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강제노역을 당했고 513명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1987년 당시 수사검사는 “부산시장에게 형제복지원 박모 원장을 석방해 달라는 전화가 왔고 부산지검이 난리가 났다며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청와대에 보고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전두환 전 대통령 일정이 담겨 있는 울산지청장이 자필로 쓴 메모도 공개됐다.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시 형제복지원에서 자행된 성폭행, 감금, 폭행, 사망, 의문사에 대한 수사는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

당시 울산지청장도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부분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당시 울산지청의 상부기관은 부산지검이었고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당시 부산지검 검사장이었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이날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형제복지원에 대해 “기억이 날둥말둥 한다”면서도 당시 수사 검사 이름을 단번에 기억해냈다.

박희태 전 의장은 “잘 기억도 없는데 그게 왜 지금 문제가 됩니까?라며 ”잘 기억이 안 난다. 내가 국회에 들어와서 참 많은 풍파를 겪었는데 정치적인 상황 같으면 기억이 날 건데 (그게 아니라서) 전혀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6&aid=0010565070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 터진 지 31년이 지났지만,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 누구도 이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는데요,

김수영 기자가 피해자들을 만나봤습니다.

[연관기사] [단독/앵커&리포트] ‘형제복지원’ 재조사 나선다…“대법에 비상상고도 검토”

[리포트]

진상규명을 촉구한 지도 오늘(11일)로 155일째, 어둠이 내리면 36년 전 악몽은 더 선명합니다.

하굣길에 이유 없이 경찰에 붙잡힌 14살 최승우 씨는 복지원으로 끌려갔습니다.

가방에 넣어둔 빵이 화근이었습니다.

[최승우/형제복지원 피해자 : "학교에서 주더라, 준 건데 왜 그러세요? 이러니까, 어디서 훔쳤어 이 새끼야. 바로 말해. 그러면서 파출소 순경이 머리를 때리더라고요."]

올림픽을 앞두고 시행된 길거리 환경 정화….

그 방법은 부랑인을 가두는 것이었습니다.

최 씨 같은 만들어진 부랑인에게 복지원은 생지옥이었습니다.

[최승우/형제복지원 피해자 : "남자들한테 윤간을 당했고요. 수년 동안. 그니까 그만큼 제가 힘들었죠. 죽을 만큼 힘들었던 시절을 보낸 거죠."]

부산진역에서 오빠를 기다리다 붙잡힌 박순이 씨도 그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박순이/형제복지원 피해자 : "다섯 시간 동안 거꾸로 매달렸어요. 그래서 거기서 떨어지면 이불로 덮어서 밟아버리고…."]

이 생지옥에서 숨진 수용자만 5백 명이 넘습니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복지원을 벗어난 사람들에게 남은 건 편견이었습니다.

[최승우/형제복지원 피해자 : "아무것도 없이 그냥 사회에 교육조차도 안 시키고 내보내 줬으니까 내가 할 줄 아는 게 전혀 없잖아요."]

그때 상처보다 더 아픈 건 잊혀지는 겁니다.

[박순이/형제복지원 피해자 : "지금 살아서 발버둥 치고 있는데 어떻게 그게 공소시효가 있어요? 나한텐 공소시효가 없는데…."]

1975년부터 형제복지원을 거쳐 간 사람은 모두 2만여 명.

누가 얼마만큼 인권 유린을 당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은 그래서 필요합니다.



출처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56&aid=0010565068&date=20180411&type=2&rankingSeq=7&rankingSectionId=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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