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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의 저녁식사.
게시물ID : sisa_10678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름다운비행
추천 : 176
조회수 : 3397회
댓글수 : 14개
등록시간 : 2018/06/04 14: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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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어제 무척 오랜만에 아버지가 저희 집에 오셨습니다.

아버지는 분당에 거주하시고 저는 강남에 사는데, 한 달에 한두 번 저희가 아버지 댁에 가는 일은 있지만 아버지가 오시는 일은 거의 없거든요.

 

암튼 여차저차 일이 생겨서 오시게 되었고, 집사람은 열심히 저녁을 준비했습니다.

식탁에 앉아서 TV를 보는데 마침 뉴스 시간.

 

? MBN이네?’

하며 저는 채널을 돌렸습니다.

순간 앞에 앉은 아내의 얼굴에 긴장하는 기색이 떠올랐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저는 근 20년간 정치관에 있어 늘 대립해 왔고, 특히 식탁에서 TV를 보다 언쟁을 하는 일이 많았으니까요. 아내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몇 달 전, 아버지와의 마지막 식탁 언쟁이 조금 크게 벌어졌던 기억이 있어서 저도 가급적이면 식사하며 일일이 대꾸하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먹은 참이었고, 아버지도 별 반응이 없으셨습니다. 채널을 돌린 건 진심 무의식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렇게 다른 채널 뉴스를 보는데, 지방선거 얘기가 나오더군요.

이번에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여쭤봤어요.

 

이번 선거는 누구 찍으세요?’

아내의 얼굴이 더 심각 해 집니다.

 

아무도 안 찍어.’

역시나 퉁명스러운 대답.

 

자한당 안 찍어요?’

찍을 놈이 없어.’

남경필 있잖아요. 그전에 잘 못했나?’

. 또 민주당 찍으라고?’

아뇨. 그런 건 아니구요.’

민주당 후보가 누군데?’

이재명이요.’

 

그 순간 아버지의 언성이 높아지십니다.

그 놈은 진짜 나쁜 놈이야.”

그쵸! 진짜 나쁜 놈인 거 같아요.”

 

이제껏 태어나 처음으로 아버지와 정치적 공감대를 이룬 순간이었습니다.

화색이 돌아온 아내가 한 마디 하더군요.

 

두 분이 맞장구치는 거는 처음 봤네요.”

 

아버지랑 저는 한번 웃고, 공감대를 이어갔습니다.

 

욕설 파일 들으신거죠?”

. 그게 아무리 그래도 가족한테 할 행동이 아니지.”

그건 새발의 피에요.”

조금 망설이다가 덧붙여 말했습니다.

 

그냥 남경필 찍으세요. 아들 문제가 있어도 이재명 보다는 나아요.”

자한당이 들어서면 문재인한테 나쁜 거 아니냐?”

여기서 저는 조금 놀랐습니다.

대선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한테 문재인은 빨갱이었는데요.

 

문재인 걱정을 다 하시네?”

지금 한참 잘하고 있는데, 경기지사면 정권 입장에서도 중요한 자리잖어.”

그러니까 이재명은 더 안되는거죠. 내부에 적이 될 수 있으니까.”

그도 그렇네

 

더 하면 분위기 깨질까봐 대화는 여기서 끝났습니다만,

서로의 내심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의 말투에는 네가 오죽하면 자한당 찍으라는 말까지 할까라는 의중이 묻어있었고, 저는 아버지까지 문 대통령을 인정해 주신다니 정말 기쁩니다라는 감정을 너무 티냈거든요.

 

아버지께서 투표를 하실지, 하셔도 누굴 찍으실지는 몰라도, 우리 가족이 이재명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 한 것만으로도 의문의 1승이라는 기분이 들어 좋았습니다.

 

거기다 문대통령에 대한 아버지의 인식변화도 알게 되었으니 더 바랄 게 없는 대화였죠.

이제 팔순에 625때 피난 내려와 공직자 생활을 오래 하신 아버지의 마음까지 돌려놓다니.... 문대통령은 참 대단하시네요.ㅋㅋㅋㅋ

이재명 얘기 하려했는데, 기승전문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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