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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우리가 점점 늘어가고 있는 중.
게시물ID : sisa_10806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내일다시
추천 : 123
조회수 : 2437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8/06/25 00:12:52
 
김반장의 극딜을 들어 봤다. 나는 그와 같으면서도 조금 다른 느낌도 있다.
(오유 유저 한 개인으로서 과거의 경험을 나열하는게 서로에게 약간의 팁을 제공할 듯도 해서 써 봄.)
 
나는 노대통령이 대선 후보였던 시절에 노후보에게 빠졌었다.
그 때가 2002년이었고, 처음에는 노무현 홈페이지인 노하우에 상시 접속했다. 그 후 많은 수의 눈팅이 서프로 갔다. 
(이 게시판에서 어떤 유저가 서프에 대해서 비난을 하는데, 서프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나름 시대적 역할을 수행했다. 물론 문제점도 있고 나중에는 다수의 문제점이 쌓이고 노통이 서거하시는 바람에 완전히 망가졌다. -> 내 생각임, 이 글에서 서프 이야기를 하려는게 아님.)    
 
나는 그 때에도 완전한 눈팅이었고 오프라인 활동은 전혀 안 했다. 다수는 그랬다.
김반장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는 활발하게 오프라인 정당 활동을 했던 사람이다. 
 
그 때 다수의 노통 지지자들(주로 온라인 지지자들)은 친노사이트에 모여서 온라인 논쟁을 하거나 의견 교환, 후원금 내기, 웹에서 글쓰기 활동 등을 했다. 처음에 이름 없는 온라인 지지자들은 이름난 운동권 세력도 아니고, 정치와는 무관한 생업을 가진 사람들이었기에 대체적으로 정치활동 및 정당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이름 난 논객이나 노사모 활동가 들의 글에 동의하거나 박수 치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온라인 활동을 하는데, 조금씩 조금씩 각자 정치적 지식이 쌓여갔다.
노무현 대통령은 매우 특별한 인물이었는데, 이 분이 다수의 온라인 눈팅들을 각성시켰다는 것이다.
나 역시 학교 교육을 넘어서는 정치적, 시민적 각성을 노대통령으로부터 얻기 시작했다.
그것이 대통령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인간적 매력과 정치적 혁신성, 일관된 과거, 비주류에 대한 이해와 연민이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는 가끔 유시민 작가의 워딩에 감탄하는데, 그의 말대로 노대통령은 정말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ㅜ.ㅜ (씨바, 명 바 기 개쉐이...)
 
노대통령 시기에 나름 평범한 소시민 노빠들이 헌법을 공부하고 정당 정치를 공부하고, 에혀 심지어 세금 관련 법률, 벼라별 것들을 다 공부했다. 물론 전문가 수준은 아니더라도 대강의 내용이라도 알려면, 그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노대통령은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냈고, 지지자들 역시 그걸 이해는 해야지 말빨을 세울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소위 엘리트 평론가, 신문 기자, 국회의원, 대학교수들에게 가르침이나 훈계를 당해야 했다. 생각해 보면, 일반 시민이 이런 강력한 지식 카르텔과 싸우려고 했으니, 온갖 욕을 다 먹은 거다. 그 때 이미 노빠들은 한겨레나 경향과는 반 원수가 되기 일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소수가 과점하고 있던, 정치 지식 시장(?)에 평범 노빠들이 갑자기 들이닥친 것이다. 내 생각에 이 때도 노빠는 소위 한국형 진보가 아니었다. 노빠는 개인주의자였고, 일반적 상식과 도덕 감정을 가진 수정주의자였다. 그러므로 다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큰 세력이었다. 나는 이점이 진보엘리트나 수구엘리트 모두가 노빠를 혐오한 이유였다고 본다.   
 
이 시간에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이 정당민주주의와 정당 개혁의 문제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노무현과 유시민이 있었다.
당비를 내는 기간당원이 당의 중추가 되고, 당원의 권리를 존중하는 민주적인 정당! 그게 꿈이었다. 나는 단지 눈팅이었지만, 그 꿈이 태어나고 자라서 결국에는 수포로 돌아가는 과정을 옆에서 보았다. 기간당원제도가 다 좋은 것도 아니고, 그것만이 최선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는 당 내부의 구테와 부도덕, 부조리, 불합리를 깬다는 명백한 가치가 있었고, 당 내부의 혁신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당원의 견제를 받는 선출직 정치인을 배출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지자체든 국회의원이든.
그러니 당 내부에서 국회의원 사이에서만 이뤄지는 권력의 분점과 밥그릇 경쟁을 공개하자는 것이다. 그러니 쉽게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열린우리당계 정치인들 사이에서 유시민은 거의 조리돌림 수준이었다. 게다가 노대통령의 지지율이 형편 없어지자, 너나 할 것 없이 반노였고 비노였고 탈노였다.  노대통령 후반기는 바야흐로 반노와 비노의 전성기였다. 생각해 보면, 정치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했으니 뭐라고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치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타인, 그것도 자신들의 지도자였던 분을 비판할 때는 금도가 있어야 한다. 노무현이 개XX라는 말 빼고는 정말 온갖 말을 다했다. 지난 기사 찾아 보면, 다 나온다. 현재 3선, 4선인 민주당 정치인 중에서는 저 당시에 친노였던 사람은 거의 없다. 아마도 이해찬 의원 정도일 거다. 유시민을 비롯해서 참정연(참여정치연구회) 계열 국회의원들이 그나마 친노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분들이 제일 마지막까지 열린우리당에 남아 있었다.  
 
김용민이 친노들이 진노 경쟁을 했다는 것은 완전히 잘못 말한 거다. 아무리 과거의 기억이 선택적이라지만 이건 아니라고 본다.
 
지금 우리 문파들을 보면, 과거 친노 지지자들보다 훨씬 기동성이 있고 스마트하다. 그리고 정실에 덜 얽메이고, 그 수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친노지지자들보다 문파가 더 전략적으로 사고한다. 도덕적인 잣대 역시 지켜야 할 테두리 안에서 유연하게 사용한다.  그러므로 기회주의자들에 대해서는 필요에 따라 지지하고 또 필요에 따라서 가차없이 비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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