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입법부 '지휘봉' 잡은 '여의도 포청천' 문희상
게시물ID : sisa_108459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lean-korea
추천 : 11
조회수 : 129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07/13 11:23:56
 
(서울=연합뉴스) 고상민 기자 =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된 더불어민주당 문희상 의원은 '여의도 포청천'(중국 송나라 시절의 강직하고 청렴한 판관)으로 불린다.

2014년 9월 민주당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비공개 석상에서 여러 차례 "개작두로 칠 것"이라고 엄포를 놓으며 당내 계파 이기주의의 분출을 억눌렀던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범친노(친노무현)계 인사로 분류되지만, 여야 여러 인사와 두루 친밀해 대표적인 통합형 정치인으로도 꼽힌다. 여소야대 지형에서 국회 협치를 이끌 적임자라는 평가도 있다.

민주당 내 현역 국회의원 중 최고령(73세)이기도 하다.

1980년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 김 전 대통령의 외곽 청년 조직인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연청) 중앙회장을 3차례 역임했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와 처음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고, 15대 총선에서 한 차례 고배를 마신 뒤 16대부터 20대까지 내리 당선돼 어느덧 6선 의원이 됐다.

16대 국회에 재입성하기 전에는 김대중정부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후 노무현정부 첫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면서 당시 민정수석이던 문재인 대통령과 호흡을 맞춘 인연도 있다.

비서실장을 마친 뒤에는 열린우리당으로 복귀, 2005년 4월 당의장으로 선출돼 여당을 이끌었다. 하지만 같은 해 10·26 재보선 참패로 취임 6개월여 만에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이후에도 당이 위기에 처할 때면 언제든 구원투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2013년 1월 대선 패배로 당(민주통합당)이 진로를 잃고 길을 헤매자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넉 달여 당을 이끌었다. 이듬해 9월 또 한 번 당(새정치민주연합)을 재정비해야 할 때도 선뜻 비대위원장의 중책을 맡았다.

조화와 포용의 리더십에 특유의 친화력을 갖췄다는 평가 속에 2008년 당내 다수파의 지지를 받으며 18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겉은 장비, 속은 조조'라는 별명도 있다. 기자들과 격의 없이 '봉숭아 학당' 식의 사랑방 정국 토론을 즐기기도 한다. 배우 이하늬 씨의 외삼촌인 것도 이젠 빼놓을 수 없는 프로필이다. 부인 김양수 씨와 1남.

▲ 경기 의정부(73) ▲ 경복고 ▲ 서울대 법학과 ▲ 평민당 창당발기인 ▲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 ▲ 국회 정보위원장 ▲ 한·일 의원연맹 회장 ▲ 열린우리당 의장 ▲ 국회부의장 ▲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 ▲ 14·16∼20대 국회의원 ▲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 문재인 대통령 일본 특사
 
국민을 위해 힘써 주세여
출처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08&aid=0004077869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