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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선 넘었다... 친일경찰 노덕술과 뭐가 다르냐"
게시물ID : sisa_11283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blueridge
추천 : 12
조회수 : 1946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9/03/16 16:41:44
[스팟인터뷰] 반민특위 위원장 김상덕 선생 기념사업회 정희철 회장[기사본문중]1948년 9월 7일 당시 제헌국회는 국민의 성원을 등에 업고 찬성 103명, 반대 6명의 압도적인 수치로 '반민법'을 통과시켰다. 특히 반민특위는 산하에 특별재판부와 특별검찰부를 둬 수사권과 기소권, 재판권을 바로 행사할 수 있게 했다. 말 그대로 유례없는 친일청산의 확실한 기구였다.

이후의 과정은 단 한 번도 순탄치 않았다.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형성된 강고한 친일세력의 저항이 곳곳에 가득했다. 1948년 10월 예비조사를 시작으로 1949년 1월 5일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으나 불과 8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이승만 정권의 비호를 받은 노덕술 등 친일파가 암살자를 고용해 반민특위 위원들을 살해하려고 했다. 암살 기도가 실패로 끝나자 이번에는 사상범의 굴레를 덧씌웠다. 바로 '국회 프락치 사건'이다.

당시 국회 부의장이던 김약수를 비롯해 반민특위 특별검찰부 소속이던 노일환 등 진보적 소장파 의원들이 "남로당 공작원과 접촉, 정국을 혼란시키려 했다"라는 혐의로 하루 아침에 체포당했다.

친일파의 지원을 받은 시민들은 매일같이 반민특위 사무실에 몰려와 "반민특위 내 공산당을 숙청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문을 부수는 등 위협을 가했다.
[중략]정희철 회장은 "나경원 대표의 발언은 당시 친일파들의 주장과 같다"라면서 "사실을 왜곡한 것만 보고 알고 싶은 것만 알려고 하는 무지에서 비롯된 행태"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광복 70년이 넘었는데 우리는 친일파를 언급하면 '국론분열'이라는 이상한 말을 한다"라면서 "그때 제대로 역사의 걸음을 밟아나갔다면 (나 대표가) 이런 발언을 할 수 있었겠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정 회장은 "지금 나경원 대표의 발언을 보면 해방 후 잠시 숨죽였던 친일파가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을 거치며 다시 득세한 것과 다르지 않다"라면서 "독립운동의 1세대가 사라지고 이제 2세대도 얼마 남지 않았다. 역사를 간접적으로 체험한 3세대의 시대가 오고 있는데 과연 친일청산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19706&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top1&CMPT_CD=E0026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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