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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떨어진 교권, 떠오르는 학생 인권..같이 갈 길은 없나요
게시물ID : sisa_11311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iidyn
추천 : 0
조회수 : 66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9/05/15 13:28:57
땅에 떨어진 교권, 떠오르는 학생 인권..같이 갈 길은 없나요
https://news.v.daum.net/v/20190515060111725?d=y


세상에는 없어져야 할 쓰레기같은 학교선생도 일부 있겠지만
대부분의 학교선생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믿고있다.
그런데도 예전보다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면 그것은
지금의 학교선생은 지금의 학생들에게 더이상 절실하게 필요한 존재가 아님을 뜻한다.
만약 학생에게 학교선생이 절실한 존재였다면 
학생은 학교선생을 존경하며 본받으려고 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학교선생을 아쉬워 하며 고맙고 귀하게는 생각했을 것이다.

학생에게 학교선생이 더이상 절실하지 않다면 그것은
학생이 근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을 더 이상 학교선생이 충족시켜 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본질적으로 학교는 학생들에게 배우게 하고 경험하게 하는 장이기 때문에
학교선생이 학생에게 충족시켜주는 것은 배움이고 경험일텐데
학교에서 배우고 경험하는 것이 학생에게 더이상 절실하게 필요하지 안는다는 것이다.

학생에게 학교선생으로부터의 배움과 경험이 절실하지 않다면 그것은
몇십년전 못살던 시절과는 달리 지금의 학생에게는 
학교선생 아니라도 따로 배우고 경험할 기회가 충만하기 때문이며,
나아가 학생이 본질적으로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도 배움과 경험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학생들에게 배움이나 경험보다 절실한 것은 좋은성적이나 좋은성적을 얻는 기술일듯 하다.
그런것이라면 학교선생보다는 학원선생이 더 적합할 것이기 때문에
그런 학생들에게라면 학교선생보다 오히려 학원선생을 더 고맙고 귀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학생에게 지식보다 성적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학부모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학부모가 자녀가 배운 지식보다는 자녀의 얻은 좋은 성적에 더 좋아하고 더 격려하면
자녀는 자연스럽게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을 더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좋은 성적을 보편적 지식이나 이치를 깨닳는 것 보다 더 가치있게 생각할수 밖에 없다.
그런식으로 학부모의 욕망이 자연스럽게 자녀에게 투영이 되면서
자녀는 마치 그것이 자기 스스로의 욕망인양 착각하며 거기에 몰두 하는 것이다. 

학부모가 지식보다 성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자녀를 어떻게든 좋은 대학교에 입학시키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어떻게든 대학교는 졸업하려고 하다보니 대학교 입학경쟁은 치열하다.
그리고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려면 많은 지식보다는 좋은 성적이 유리하다.
왜냐하면 성적과는 달리 지식이라면 남이 그 가치를 한번에 검증하고 평가하기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이 이왕이면 성적이라는 객관적 지표가 좋은 사람을 선호하는 것은 어쩔수 없다. 

학부모가 이렇게 하면서 까지 좋은 대학교를 보내려고 한다면 그것은
일단 대학교라도 나와야 사람대접을 받을수 있는 현실때문일 것이다.
최소한 대학교 정도는 나와야 어디 취직이라도 할수 있고 (대학교는 이제 더이상 지식의 상아탑이 아니라 취직 공장이 되었다.)
가정을 꾸리거나 사회에 독자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취직은 해야 한다.
예전에 지식이 귀했던 힘든시절에는 자신의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하나라도 더 알거나 기술 하나라도 더 익히려는것이 중요했다.
배움을 얻는 것이 어려워서 그렇지 그때는 일단 기술 하나만 잘 익혀도 취직은 어렵지 않게 할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술 하나를 알고 모르고 보다는 좋은 대학교를 나오는 것이 취직에 중요하다.
그러니까 기술이 있어도 대학교 안나왔으면 좋은 인재로 인정 못받고, 
기술이 없어도 좋은 대학교 나왔으면 그런 기술쯤이라면 마음 먹으면 언제든 취할수 있는 인재로 인정 받는다. 
그리하여 많은 학생들이 그 귀한 청소년 시기를 성적에 메달리고 비싼 학비를 물면서 까지 대학교를 가는 것이다.

학벌이 좋은 사람만이 제대로된 일자리를 취할수 있다면 그것은
제대로된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 수요에 비해 제대로된 일자리 공급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제대로된 일자리는 급여가 많은 일자리가 아니라 자신의 노력과 능력에 맞는 정당한 기회와 댓가가 보장되는 일자리를 말한다.
그리고 그 공급은 별로 없고, 그 한정된 공급을 취하려는 수요는 너무나 많다. (그것은 어쩌면 존재에 대한 필수조건이다.)
예전에 업무수행을 위한 실질적인 필수 능력이나 기본소양을 갖춘 사람은 별로 없던 시절에는
그런능력만 갖추었다면 어렵지 않게 취직을 할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고학력 시대에는 구직자 거의 모두가 그정도의 능력은 기본적으로 갖춰었다고 보면된다.
대학교가 이왕이면 성적이 좋은 학생을 뽑듯이, 선택지가 많은 고용자 입장에서보면 이왕이면 학벌이 좋은 구직자를 뽑을수 밖에 없다. 
(이정도라도 되면 다행이지만 사실은 학연 지연 혈연 같은 능력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각종 인맥 연줄이 취직에 작용한다.)  
그리고 구직자는 그에 맞춰 어쩌면 업무수행과는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능력이나 스펙을 위해서 자신의 에너지를 소모하기도 한다.
 
요점은 지금의 상황은 특별한 인재가 재대로된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이 재대로된 대접을 못받는 상황이다.
즉, 지금의 상황은 10 이면 취할수 있는 것을 위해 100 을 준비해야 하거나, 또는
10 이면 취할수 있는 것을 50 을 준비하고도 취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산업 자동화를 넘어서서 첨단 정보화 되어가고 있는 이 좋은 세상에서 
사람들은 더 없어 편하고 안락하게 지내야 할 것 같은데 이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이 아니라 할수 없다.

쓰다보니 글이 계속 심각하게 삼천포로 빠져드는것도 같은데
이렇게 그 이유를 계속 따져들어가다보면
그 시작점은 아마도 민족반역 매국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광복직후로 까지 들어가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그때 세상을 해쳐먹던 나쁜 놈들을 사회는 제대로 처단하기는 커녕 오히려 힘을 실어주는 바람에
그리고 그 불씨가 지금까지도 살아서 계속 활개를 치는 지금 시점에서라면
이렇게 불법과 편법을 쓰면 처벌이 아닌 성공이 보장된다는 살아있는 선례를 제대로 처단하여 후회하게 하기 전까지는 
그래서 행여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것이라면 감히 엄두도 못내게끔 인식시키기 전까지는 
선량한 약자가 상식적인 방법으로 노력해서 정당한 권리와 댓가를 누릴수 있는 사회를 기대하는 것이 어쩌면 어불성설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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