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하거나 글을 써 놓고 사람들 반응을 살펴보면 전체 텍스트에 대해 반응하는 지점이 사람마다 천차만별 입니다.
전체적인 맥락을 짚는 유형이 있고,
지엽적, 부분적인 사실에 치중하는 유형이 있고
그보다 더 미세하게 철자법 같은 것에 치중하는 유형도 있음.
언론은 부분적인 사실만을 보여줌으로써 전체적인 맥락을 왜곡하는 유형이었음.
가령, 검찰 총장이 지검장 모아놓고 회의하여,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보도하는 것은
전체적인 틀에서 보자면 유시민을 모함하기 위해 언론 기자와 검사가 모의한 것이고,
이를 수사하는 것을 검찰총장이 관여하지 못하게 법무부가 수사 지휘하는 것에 대하여 반기를 드는 상황에 대한 것일진데,
언론은 사건의 출발 지점인 검찰과 언론이 한 사람을 무고하려했다는, 전체적인 맥락을 소거하고 법무부와 검찰총장의 대립 그 자체만 보도하고 있음.
이때 언론이 초점잡은 영역은 반응할 가치가 없는 이야기임. 시야의 왜곡이기 때문임.
대중은 언론이 부분적으로만 보여주는 것에 대해 더 넓은 전체 텍스트를 스스로 설정해야 함.
시야의 폭이 다른 사람과는 대화의 초점이 맞지 않음.
연동형 캡에서 부터, 정의연 보도에 대한 태도, 뭘 해도 정의당에게 문제가 되어왔던 것은 시야의 폭이라고 생각함.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조차 자신들의 정치적 영역에 입각해서 판단함. 이건 조화 보낸 것에 대한 이야기임.
우리는 종교적, 정치적 입장이 달라도 현실에서는 굳이 그 지점을 부각해 타인의 눈앞에 들이밀지 않을 때가 있음.
타인과의 관계나 죽음에 대한 예의처럼,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부각되는 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