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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를 믿는 쪽이 이긴다 / 이철희
게시물ID : sisa_11725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arcy
추천 : 0
조회수 : 57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21/04/13 08:3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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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ㅣ 지식디자인연구소장

 

 

 

선거에서는 잘해서 이기기보다 못해서 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승패의 독립변수는 여당이 잘하느냐 못하느냐다. 야당의 잘잘못은 종속변수다. 대부분 여당이 못하면 회초리를 들고, 잘하면 박수 쳐준다. 권력을 준 쪽에 상벌의 책임을 묻는 사회심리적 패턴은 대의제 민주주의의 구조적 현상이다. 이번 4·7 재보궐선거의 승패도 여당에 대한 찬반에서 결정되었다. 병법에서 말하듯이,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것이 선거다. 어떤 정당도 늘 이길 수 없고, 어떤 정당도 항상 지지 않는다. 만물이 돌고 돌듯 승패도 돌고 돈다.

 

 

문제는 선거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것이다. 패한 이가 취하는 가장 나쁜 태도는 패배를 패배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덤덤하게 여기는 태도다. 어쩌다 보니 졌는데, 그걸 핑계로 과하게 호들갑 떨 필요 없다는 인식이다. 크든 작든 선거는 유권자가 자기 권력을 행사하는 장이다. 가장 강력한 민심의 표출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진 쪽은 깊이 성찰하고, 과감하게 혁신해야 한다. 패배에 불복하고, 패배의 원인에 둔감하면 더 큰 패배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람시가 말했듯이, 선거의 결과는 긴 과정의 마지막 의식일 뿐이다. 우연한 계기나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 때문에 승패가 결정됐다고 생각하는 건 게으른 자기최면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잘못됐다는 식의 전면부정론도 위험하다. 이는 기존 노선을 더 강하게 밀고 가자는 정면돌파론만큼이나 위험하다. 어렵지만 부정과 돌파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부정의 늪에 빠지고 특정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면 결국 분열하기 십상이다. 돌파의 유혹에 빠져서 모든 책임에 나 몰라라 하면 십중팔구 더 큰 패배를 낳는다. 정치는 좋든 싫든 숙명적으로 민심을 따를 수밖에 없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이 패배했다. 당시 홍준표 대표는 버티려 했으나 유승민 등 최고위원들의 사퇴로 결국 지도부가 물러나고 박근혜 체제로 전환했다. 집권 정파인 친이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총선 공천권 등 전권을 넘겼다. 그 결과 뒤이은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런데 이 사례를 오독해선 안 된다. 유력한 대선주자에게 당권을 넘긴 것이 승리의 요체는 아니다. 그들이 패배를 극복해낸 것은 대립과 분열에 빠지지 않고 변화를 주되 통합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박근혜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감성적’ 차별화에 빠지지 않았다. 패배가 추동하는 변화를 권력투쟁의 수단으로 삼으면 그 끝은 공멸이다.

 

 

심판 정서 때문에 이겼는데, ‘우리가 잘해서 이겼다’고 착각하면 독이 된다. 작은 승리에 취해 큰 선거에서의 승리를 차버리는 꼴이다. 대개 승리 후에 겸허한 자세를 취하지만 승리를 더 큰 혁신의 동력으로 삼기란 쉽지 않다. 승리의 덫이다. 정치나 선거가 상대적 우위를 점하는 게임이지만 그럼에도 상대의 실수에만 편승해서는 집권하기 어렵다. 대안이 될 정도로 예쁘고 미더워야 한다. 정치에선 호감이 전략을 이길 때가 많다. 또 다른 변수는 제3의 공간이다. 우리 정치에서는 민주화 이후 제3 인물·세력에 대한 열망이 집요하게 이어지고 있다. 아직 그 화산이 대선에서 터진 적은 없지만 이번에 터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기성에 대한 일체의 거부 정서가 새로운 인물을 만나면 폭발할 수도 있다. 2017년 프랑스의 마크롱이 좋은 예다.

 

 

승리에 따른 도취감에 현혹되어 오직 반대만 외치고, 마치 집권했거나 곧 집권할 것 같은 태도를 보일 수도 있다. 이럴 경우 흔히 나타나는 병폐가 집안싸움이다. 서로 키를 잡겠다고 다투고, 내가 더 먹겠다고 덤비는 이전투구가 루틴으로 자리잡는다. 1994년 중간선거에서 승리한 미국 공화당의 깅그리치가 대통령제의 나라임에도 마치 총리인 것처럼 행세했다. 그러다 2년 뒤 치러진 대선에서 공화당은 ‘링 밖으로 내던져진 인물’로 치부했던 클린턴에게 완패했다.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그랬다. 승리가 보이는 앞면이라면 보이지 않는 뒷면의 얼굴은 패배다. 여야가 선거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수용하고,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내년 대선의 승패가 결정될 것이다. 유권자는 차가운 현자다! 나라면 이를 믿고 뚝심 있게 실천하는 쪽에 걸겠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90630.html?_fr=mt0#csidxb6dd462b187d90fa4a2151e831b3d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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