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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말하기를 “창덕궁 주인은 무당이다”
게시물ID : sisa_11898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반백백마법사
추천 : 6
조회수 : 61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2/01/24 09:40:32

1882년 음력 69일 구식 군대가 반란을 일으킵니다. 신식군대인 별기군 급료는 후한 반면 구식군대는 쌀로 받는 월급이 열네달 밀렸고, 겨우 받은 한 달 치 살은 양도 적을뿐더러 절반이 모래였습니다.

 

결국 구식군대는 분노했고, 월급 담당 기관인 선혜청과 일본공사관이 불탔습니다.

 

구식군대는 이튿날 창덕궁으로 진입을 합니다. 타깃은 민비(명성황후)였습니다. 민비는 궁녀로 변장에 궁을 탈출했고, 흥선대원군은 종적을 알 수 없는 민비가 죽었다고 선언합니다.

 

민비는 청나라 군대와 함께 그해 8월 초하루 화려하게 환궁을 하죠.

 

민비는 구식군대에게 쫓겨나서 장호원으로 피신을 가는데 이때 무녀 박창렬을 만납니다. 민비는 무녀 박창렬에게 나는 언제 환궁하느냐고 물었고, 무녀 박창렬은 “8월 보름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비록 보름 차이였지만 환궁을 하고 난 후 민비는 무녀 박창렬에게 진령군이라는 군호를 내립니다. 여자에게 군호를 내린다는 것은 파격적입니다.

 

그때부터 무녀 박창렬 아니 진령군을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무녀 박창렬은 궁을 제집처럼 드나들었고, 무당이 궁에 상주한다는 소문이 퍼져나갔습니다. 무녀 박창렬은 나는 관운장 딸이니 관운장 사당을 지어달라고 하고, 동소문 안쪽에 부교가 건설됩니다.

 

1884년 김옥균이 주도한 갑신정면 때 고종과 민비는 북묘로 피신해서 목숨을 건지면서 무녀 박창렬을 더욱 맹신하게 됩니다.

 

1894년 지석영은 상소를 보내는데 신령의 힘을 빙자하여 임금을 현혹시키고 기도한다는 구실로 재물을 축내며 요직을 차지하고 농간을 부린 요사스러운 계집 진령군에 세상 사람들이 살점을 씹어 먹으려고 한다고 적혀있습니다. 무당의 농간이 10년을 넘었다는 것이지요.

 

북묘는 매관매직으로 인해 문전성시를 이뤘고, 매천야록에서는 그의 말 한마디에 화복이 걸려 있어 수령과 변장들이 그의 손에서 나오기도 하였다. 염치없는 자들이 간혹 자매를 맺기도 하고 혹은 양아들을 맺자고도 하였다. 그중 조병식, 윤영신, 정태호 등이 더욱 심하게 보챘다.”고 기록했습니다.

 

당시 상소가 빗발쳤습니다. 하지만 고종과 민비는 꿈쩍도 하지 않았죠. 결국 민비는 일본 낭인에 의해 시해가 됩니다.

 

진령군은 거열형을 선고받았다고 하지만 형 집행 여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민비와 무녀가 사라졌지만 황제가 된 고종은 성강호라는 점쟁이에게 죽은 왕비의 혼령이 어디 있는지 캐묻곤 했다고 합니다. 또 정환덕이라는 시종에게 수시로 왕실과 나라 운세를 자문했다고 하네요.

 

무녀 박창렬이 살아 있을 당시 백성들은 창덕궁의 주인은 무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나는 새도 떨어뜨렸던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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