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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국노 김갑순의 생애
게시물ID : sisa_123259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근드운
추천 : 8
조회수 : 82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4/03/01 09:00:17

접기/펼치기생애 및 활동사항

1900년 9월 충청북도관찰부 주사로 관직에 진출했다. 1901년 8월 중추원 의관에 임명되었으나 다음 달에 사임하고 11월 내장원 봉세관(封稅官)으로 임명되었다. 봉세관으로 근무하면서 충청남도 지역의 역토주1 · 둔토주2 · 개간지에서 도조(賭租)주3 · 해세(海稅)주4 · 포사세(庖肆稅) 등을 수납했다.

1902년 4월 충청남도관찰부 부여군수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1903년 8월 노성군수, 1905년 6월 임천군수, 1906년 7월 공주군수, 1908년 강원도관찰도 김화군수, 1909년 9월 충청남도관찰도 사무관, 1910년 1월 충청남도관찰도 아산군수를 역임했다. 합병 후에도 재직하다가 1911년 3월 사직했다. 1912년 8월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다.

봉세관과 군수로 근무하면서 지세와 수세를 면밀히 조사하여 황무지를 매입했다. 군수직을 사임한 후 본격적으로 황무지 개간, 택지 매립 및 수리사업에 뛰어들었다. 합병 후 땅값이 오르면서 대지주로 성장했다.

1910년대 조선총독부가 도로공사를 할 때 인부와 부지를 제공했는데, 1912년 3월 충청남도 노성군 도로공사를 시작으로 부여와 공주 간 도로, 논산 내 도로, 경상남도 마산과 칠원 간 도로 등 다수가 있다. 그 대가로 조선총독부가 1913년 3월과 10월, 1914년 12월, 1915년 12월 등 4회에 걸쳐 목배(木杯)를 수여했고, 1914년 5월과 1915년 12월에 은배(銀杯)를 주었다.

1913년 7월 충청남도 지방토지조사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어 1918년 8월까지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에 협력했다. 이와 함께 계속 토지를 매입해서 1918년에는 몇 천석을 받아들이는 갑부가 되었다. 이후에도 꾸준히 개간사업에 힘쓰며 여러 직책을 맡았다. 1914년 9월 조선물산공진회 평의원, 1915년 10월 일본적십사자 특별사원을 지냈다. 1915년 11월 다이쇼[大正] 천황 즉위기념 대례기념장을 받았다. 1916년 4월 공주위생조합 부조합장, 1917년 6월 제국군인후원회 통상회원, 같은 해 10월 공주군 공주면 상담역, 1919년 9월 공주금융조합장을 역임했다.

1920년 11월 ‘신일본주의’를 표방하면서 조선인 참정권운동을 추진한 국민협회의 충청남도 지부장이 되었고, 12월 충청남도 도평의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이듬해인 1921년 4월에는 조선총독의 자문기구인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었다. 이후 1930년대까지 공주읍 협의회원 2회, 중추원 참의 3회, 충청남도 도평의회원 4회를 역임했다.

대전군 유성면에 있는 유성온천을 주식회사로 개발하여 1921년 11월 대전온천주식회사주5 전무(專務) 취체역(取締役)으로 참여하였다. 이와 함께 대전역과 유성온천을 왕래하는 자동차 운수업을 개시했다. 자동차 운수업을 계속 확장하여 공주 · 대전 · 금산 · 평양 · 대구 · 안동 등에서 여객운수사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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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일제강점기때 일제에 부역하며 호의호식하던 매국노들 파묘를 해야는데 아직도 후손들이 저리 알뜰하게 챙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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