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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는 친일파 김활란이 부끄럽습니다..
게시물ID : sisa_12348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근드운
추천 : 14
조회수 : 951회
댓글수 : 13개
등록시간 : 2024/04/04 10:4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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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샷 2024-04-04 104107.png

 

지금 민주당 국회의원 후보가 김활란 명예를 훼손했다며 난리죠...이대생 성상납을 김활란이 주도했다란 말을해서리..

물론 정확한 근거 없이 말한것도 잘못이겠지만(솔까말 이것도 팩트 체크 조사해봤음 좋겠음)

 

 이화대생조차 그의 친일 행적때문에 부끄러움을 느꼈었습니다...

 

일제협력자 김활란

재차 귀국 후 이화여전에서 교감으로 여성교육에 종사하면서 사회운동에 주력하던 김활란은 중일전쟁을 전후하여 일제에 적극 협력하는 행보를 보였다. 그녀의 친일행적은 사회운동에서 이룬 김활란의 명성과 활동에 대비되면서 충격을 안겨다준다.

김활란이 일제에 협력하기 시작한 시기는 중일전쟁 이전인 1936년경이었다. 김활란은 1936년 조선총독부가 주관한 ‘가정의 개선과 조선인 교화운동의 촉진을 위한 간담회’에 참여하였고 1937년 1월 13일에는 ‘방송선전협의회 부인강좌’에 강사 자격으로 참여하였다. 또한 같은 해 역시 1월에 조선총독부 학무국이 주관하는 조선부인문제연구회(朝鮮婦人問題硏究會)에 상무이사로 참여하였다. 학무국은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을 담당하는 부서였다. 조선부인문제연구회는 생활개선과 부인을 계몽하고 그 내용을 연구하는 단체로 활동 내용으로 보면 김활란이 YWCA 등을 통해 해왔던 계몽운동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김활란은 중일전쟁 직후 결성된 애국금차회(愛國金釵會)에 발기인으로 참가하면서 본격적으로 일본에 친일행위를 하였고 특히나 일본이 벌인 전쟁이 적극 협력하였다. 1941년 8월에는 임전대책협의회(臨戰對策協議會)에 참여하였다. 이 단체는 미국과의 전쟁을 앞두고 각계 인사들이 결성한 전쟁선전단체였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김활란은 조선인들을 전쟁에 동원하는 데 적극 나섰다. 김활란은 야마기 가쓰란(天城活蘭)으로 창씨개명을 하고 1941년 12월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 주최의 ‘임전보국단 결전 부인대회’에서 여성의 전쟁 참여를 독려하였다. 1942년 1월 조선총독부는 조선임전보국단 산하에 부인대를 신설하여 여성 동원을 강제하였는데 김활란은 지도위원으로 이 단체에 참여하였다. 일제가 전쟁에 조선인을 동원하기 위하여 1942년 징병제 실시를 발표하였을 때 김활란은 징병제를 맞이하는 조선 여성의 자세를 다음과 같이 설파하였다.

...국가를 위해 즐겁게 생명을 바친다는 정신이다,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다, 내 남편도 내 아들도 물론 국가에 속한 것이다. 국가에 속한 남편이나 아들 또한 내 생명이 국가에서 요구될 때 쓰인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출처: 「여성의 무장」, 『대동아(大東亞)』, 1942년 3월 발행 )

 

이런 친일 행적에 언제는 김활란이 부끄럽다던 이화대생들이

이젠 김활란 명예를 위해 이화대생들이 들고 일어섰다니 참 아이러니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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