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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라는 이름의 괴물
게시물ID : sisa_13542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하연.
추천 : 1
조회수 : 577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1/11/19 02:36:42
이미 지난 영화니 설마 싶지만 '바시르와 왈츠를'이란 영화를 볼 계획이 있는 사람은 살포시 뒤로가기.


'바시르와 왈츠를'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스라엘인으로서 이스라엘-레바논 전쟁에 참가했던 아리 폴만이라는 감독이 만든 영화다. 그리고 이 영화는 이스라엘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주인공은 사나운 사냥개들에게 쫓겨다니는 꿈을 꾼다. 한 두번이 아니라 매번. 견디다 못한 그는 정신과에서 상담도 받아보고 친구들이랑 얘기도 해보다가 뭔가 기억에 문제가 있다는 걸 느끼고 옛 친구들을 찾아다닌다.

그가 되찾아가는 기억은 참전 당시의 기억이다. 그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포위전까지 올라가면서 전투했지만 그의 기억은 불확실하다. 차츰차츰 기억을 떠올려나가지만 그의 전쟁에 대한 기억은 항상 꿈과 환상과 겹쳐지며 불확실한 채로 남는다. 그리고 그가 찾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그가 전쟁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걸 꺼려한다.

어디서부터 실제 기억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일까... 차분한 혼란속에서도 차츰차츰 나아가던 그는 영화 마지막에 사실에 도달한다. 떠올려서는 안되었던 그것.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그 사실은 간단하다. 최소한 이스라엘-레바논 전쟁에 있어서 이스라엘은 침략군이었고, 일방적인 살육을 자행했으며, 명분조차도 말도 안되었다는 것.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계 무장단체인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들어갔지만, 애시당초 레바논이 PLO를 지원한것도 아니고, 그런 이유로 남의 국가를 침략해서 뒤집는다는 건... IRA를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영국이 아일랜드를 침략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러나 그 사실은 억압되어야만 했다. 적들에 둘러싸여 고립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모든 전쟁은 절대적으로 옳아야하니까. 명분없는 전쟁에 끼어든 개인으로서, 또는 명분이 있었더라도 결국 전쟁으로 상처받은 개인에게 이스라엘은 따스하지않다.

강대한 군사국가 이스라엘에서 모든 군인은 영웅적이어야 한다. 그들은 스스로의 살인에 대해 죄책감을 느껴서는 안된다. 물론 전쟁이 옳았는가는 묻는 것은 반역이다. 선악이 분명한 세계관 속에서 적을 죽이는 것에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이스라엘인과 이스라엘만을 생각해야만 한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의 기억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이단이고 이단으로서 군사국가에서 산다는 것은 고립과 고통이므로.

영화 초반의 개들은 아주 간단하다. 묻어도 묻어도 따라오는 죄책감. 피를 내뿜으며 쓰러져가던 '적'과 처참한 살육앞에 그들 앞에서 울부짖던 민간인들. 남의 소중한 집을 폐허로 만들고 남의 소중한 사람들을 고깃덩이로 만들고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했던 기억들. 그런 죄책감이 잊혀진다면 그게 사람일까.

그러나 잊어야했다. 이스라엘이라는 군사국가에서 살아가기위해. 또는 죄책감에 사로잡히지않고 살아가기위해.
그리고 그 기억들은 결코. 결코 쉽게 되살아나지 않는다. 사실과 거짓이 섞이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모든 것은 무의미한 기억의 파편으로서만 존재한다. 그것은 이스라엘이라는 사회 자체의 모습이다. 사회 자체가 잘못됬던 과거를 부정하며 그 사실에 거짓을 섞어 무의미한 파편으로 만든다. 결국 남는 것은 그저 '적'과 '승리'에 대한 집착뿐이다.

이렇게 개인들은 자신의 경험을 왜곡하고 파편화한다. 거기에 회복이나 화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누구에게도 지지않을 강대한 군사국가를 위해, 개인들은 일그러짐을 안고 살아가거나 일그러짐조차 느끼지 못하는 괴물이 되어간다.

바시르와 왈츠를은 애니메이션 영화다. 거기에 담담한 진행이 더해져 관객들은 전쟁의 광경을 매우 담담히 지켜보게된다. '그래, 이건 남의 얘기야'하고.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순간 차도르를 쓴(얼굴은 드러났다) 여성들이 울부짖으며 주인공과 동료들에게 걸어온다. 눈물을 흘리며 뭐라뭐라 소리를 질러대지만 여전히 별 감흥이 없다. 그리고 장면은 실제로 기록된 필름으로 넘어간다.

실존했던 사람들이 눈앞에서 울부짖는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자막도 없다) 살육에 항의한다. 부서진 건물들과 시체들이 보이고... 건물의 잔해속에서 어린아이의 손만이 살짝 나와있다. 뭔가를 말하고 싶은 것처럼.

그는 이 충격적인 대비효과를 통해 '이건 다 명백한 사실'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스라엘이 저지른 명분없는 살육. 그러나 이 영화의 개봉으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이스라엘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보안이라는 괴물은 그 이름아래 국가를 군사국가로 변화시키며, 그 속에서 개인들은 치유할길 없는 상처를 안고 비틀린채 살아가거나, 그 조차도 느낄 수 없는 괴물이 된다.


나는 그대들이 인간이길 원한다. 설령 폭력에 정당성이 있다해도, 죄책감을 못느껴서는 안된다. 시대는 옛날과 많이 다르고, 우리는 더 이상 히틀러와 같은 괴물을 만들어내어서는 안된다.




Ps.

손님들이 많이 왔길래 열심히 썼는데, 너무 길어서 그 손님들이 볼런지.
아 피곤하면 자야지 쓸데없이 버닝하니 글이 너무 길어졌어. 짜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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