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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지 운지 하는 우리반 애들..
게시물ID : sisa_2137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우주아빠
추천 : 14/5
조회수 : 1510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2/07/11 16:03:45

현직 초등교사입니다.

요즘 교사에 대한 인식이 바닥이다보니 이런 곳에 글 쓰기도 좀 망설여지긴 합니다만..

애들 가르친지 1년 남짓..하도 답답한 마음이 들어 글을 남겨봅니다.

 

현재 6학년 담임을 맡고 있습니다.

두달, 세달 지나가면서 아이들과 정도 들고 즐겁게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떠들때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자꾸 들리더군요.

바로 인터넷 비속어들이었습니다.

'찰지구나' '게이' '고자라니'등등..

(게이라는 말은 비속어는 아니지만..초등학생들이 장난스럽게 쓰기에는 좀... 그렇더군요.)

여기까지는 뭐, 장난은 장난이니까 하고 넘어가려고 했습니다.

'고자라니'의 경우는 반에 '고자'라는 발음과 이름이 비슷한 아이가 있어서 놀리는 말이라 사용하지 않도록 지도를 했습니다.

(가운데 손가락 올리는 짓거리도 많이들 하길래 fuck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뜻을 알려주었습니다.

알 건 다 아는 애들이라... 어느 정도 충격 요법이 되어 한동안은 사용하지 않더군요)

좀 뜸하다 싶더니만, 얼마 후

'운지', '운지천'하는 소리가 자꾸 들리더군요.

사실 그 때까지도 들어만 봤지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고 있었는데 애들이 자꾸 그 말을 사용하니까 궁금해지더라구요.

헐.....

네이버에 검색해 보고 나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 끔찍한 말을 열두살 먹은 애들이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반 교실에서요.

무슨 뜻인지 아냐고 물었습니다. 잘 모르더군요.

 

공무원들은, 특히 교사들은 정치적으로 특정 세력이나 정치인을 지지하는 발언을 할 수가 없죠.

저도 그런 면에서는 항상 조심해 왔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아니었습니다. 정치 뭐 그딴거 다 제껴놓고 돌아가신 분을 모독

하는 말을 애들이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으니까요.

 

자리를 바꾸고 각자 모둠 이름을 정해 보라고 했을 때 급기야 어떤 녀석이 '운지천'으로 하고싶다고 했을 때 참을성이 다하고 말았습니다.

자리 바꾸던 걸 때려치고 '운지', '운지천'이라는 말에 담긴 뜻을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희들은 존경하는 사람이 있냐. 쌤은 반기문 총장님을 존경한다. 그리고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

그렇다고 해서 너희들에게 선생님처럼 노무현 대통령을 존경하라고 강요는 절대 안한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김대중, 전두환, 노태우, 박정희 전 대통령들을 존경한다고 이야기한다면 그대로 존중해 줄 거다.

또 쌤은 너희들에게 어떤 인터넷 사이트나 커뮤니티에 들어가 봐라, 들어가지 말아라 소리를 할 권리가 없다.

인터넷은 자유로운 공간이니까, 그 안에서 너희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남기는지 알 수도 없고, 안다고 해서 침해할 권리도 없다.

하지만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는 권리는 있다.

이렇게 생각해 봐라. 너희 아버지가 강도가 쏜 총에 맞아 돌아가셨다.

그런데 누가 초상집에 와서 백지영의 '총맞은 것처럼'을 불러댄다고 생각해봐라.

그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거나, 인격에 큰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이 드립은 네이버에서 검색했을 때 나온 걸 인용했습니다)

너희들이 요즘 자주 사용하는 운지 어쩌고 하는 말이 그것과 다르지 않다.

여러분들은 6학년이다. 어리다면 어리지만, 알 만큼은 아는 나이다.

그래서 더 걱정이다. 너희들이 그런 말들을 썼다는 사실에. 정확한 뜻을 알

고도 그랬을까봐서.. 인터넷의 무서움을 새삼 느끼고 있다.

여기 있는 여러분은 모르고 있었다가 이제서야 알게 되었을 거라고 믿는다... 앞으로는 그런 말을 입에 담지 않기를 바란다.

 

글로 써 놓고 보니 시공간이 오그라드는 대사들이 된 것 같네요...

여튼 이 말을 한 지 며칠이 지났는데 아직까지는 아이들이 그런 말을 사용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요즘 인터넷 여론을 보면,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고리타분한 어른들의 세태를 욕하고,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학생들의 비도덕성을 욕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더군요.

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시험 점수에 찌들고, 또 오로지 시험점수를 위해 다니는 학원에 찌들어 버린 아이들이

학원에 다녀 와서 지친 마음을 의지할 곳은 게임과 인터넷 공간밖에 없습니다.

(사실 저 자신도 아니라고는 할 수가 없네요)

그러다 보면 잡다한 정보들을 많이 접할 수는 있지만 질이 높은 고민을 하기는 어렵죠.

아이들은 무조건 먹고, 무조건 배설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듯, 저는 누군가를 존경하고 지지해야 한다고 강요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스스로 판단하는 법'을 가르쳐야겠죠?

국가수준 학업 성취도 평가(두둥)라는 그 이름도 삭막한 예비 수능시험이 다행히 1학기에 끝났으니,

2학기부터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는 토의, 토론 수업을 많이 해보려고 합니다.

 

얼마 전 친구와 술을 마시다 보니 정치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전 별로 할 얘기가 없어 아이들이 운지 운지 하는 소리를 해서 고민이라는 얘기를 했죠.

그러자 그 친구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그런 인격 모독적인 말을 쓰는 것이 잘못이라면,

현 대통령에게 쥐새끼 라는 말을 하는 건 괜찮냐는 얘기였습니다.

물론 그 사람의 잘못된 정책이나 죄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국민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에게 '운지'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한다면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그런 말을 써서는 안 되지 않을까 하는 얘기였죠.

'비판'할 권리조차 박탈하려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말입니다.

순간 저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 친구가 딱히 이명박대통령을 지지하는 친구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정치 자체에 약간 회의적인 친구...)

 

제가 애들한테 항상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아이가 다른 아이를 때리거나 놀립니다.

"너 왜 00때리니?"

그럼 그 아이는 십중팔구 이렇게 얘기합니다.

"얘가 먼저 절 놀렸거든요."

그럼 저는 이렇게 얘기하죠.

"널 때린 사람에게 똑같이 때려서 갚아주면 그건 싸움에서는 비기고 똑같은 사람이 되는 거다.

 싸움에서 이기더라도 똑같은 사람이 된다. 하지만 널 때리더라도 참고 이야기로 해결한다면

그건 싸움도 이기고 그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는거야."

 

물론 성인군자나 할 소립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도 맞는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욕에 욕으로,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하는 것은 결국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 아닐까요?

잘못된 정책에는 정당한 비판으로,

잘못된 정권에는 투표로,

그런 게 민주주의라는 생각이 드네요.

또 무분별한 욕을 싸지르기 보다는 그런 것들을 통해 정치에 참여하는 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기도 하구요..

 

쓰다 보니 정체성 없는 이상한 글을 올리게 된 것 같은데요..

끝까지 읽어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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