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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 이대로 괜찮은가
게시물ID : sisa_2151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름다운시선
추천 : 0
조회수 : 35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7/19 13:43:52

제약업으로 엄청나게 큰 돈을 번 50대 자산가가 있었다.

속을 썩이던 장남은 공부에 관심이 없어 국내에는 들어갈 대학이 없었다.

돈이면 안되는 것이 없다고 믿었던 부모는 아들을 미국으로 유학보냈다.

지인들이나 주위 사람들에게는 '우리 큰아들 미국으로 유학갔다'며 자랑도 잊지 않았다.
미국으로 간 아들은 한국에서처럼 흥청망청 놀기만 했다. 한국에서 부모와 살때도 자기 멋대로 살던 아들이 먼 타향으로 혼자 가서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는데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할 리 만무했다.

결국 한국에 돌아온 아들은 깊은 밤 안방에 들어가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불을 질러버린 패륜아로 연일 뉴스를 뜨겁게 달군다.

이 아들이 바로 국내 최초의 패륜존속 살인사건 1호의 주인공 박한상.

당시 23세였던 박한상은 미국유학중 도박과 향락에 빠져 빚이 늘어나는 생활이 지속되자 아버지의 반 강제적인 호출을 받고 국내로 귀국했다.

이 일로 인해 아버지에게 심한 반감을 갖게됐고 부모의 100억원대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부모를 살해했다.

이후 1995년 8월 25일 대법원은 존속살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한상에게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현재 대구교도소에서 복역중인 박한상을 5년 반동안 만나 본 사람이 있다.

다름아닌 심리상담가이자 베스트셀러 '인생 9단'의 저자인 양순자(73) 씨



지난 30년간 사형수들을 만나 교화해온 양순자 씨는 박한상 살인사건이야말로 자식이 부모를 죽인 것이 아니라 부모 스스로가 죽음의 덫을 놓은 셈이라고 말했다.

현명한 부모는 자기 자식이 몇점인가를 안다. 국내 대학에도 못들어갈 정도로 불성실했던 아이가 미국에 간다고 적응할 수 있을까. 박한상의 부모는 자신들의 돈과 허세에 의존하다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양순자 씨는 2010년 대장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두번이나 받았다. 비록 완치되지는 않았지만 '암세포들과 남은 인생을 함께하리라' 마음먹고 마음편히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그에게 암은 오히려 인생의 분수령이 되었다. 양순자 씨는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돌아보게 됐고 앞으로 자신이 상담을 해줄 수 없는 많은 이들을 위해 진짜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를 전해주고 싶었다.

인생의 남겨진 시간을 소중하게 쓰기 위해 삶의 가치들을 재점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줄 책 '어른 공부(시루 출판사)'을 펴냈다.

저자가 말하는 '어른 공부'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돈으로 못 드는 인간보험 들기, 남보다 조금 앞섰다고 뽐내지 말기 등 양순자 씨의 삶의 지혜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것들이다.

7월 중순 서교동 한 카페에서 양순자 씨를 만났다. 고희를 넘긴 나이에 암투병까지 한 분 치고는 너무나 생기있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유난히 젊게 사시는 비결이 뭔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양순자 씨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타고난 성향이 있는 것 같다.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환경에서 키운 자식들도 각자 성격이 다르지 않나. 난 사람마다 각자 다른 자기만의 '블랙박스'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스트레스 없이 인생을 사는 비결은 내 맘에 안드는 '블랙박스'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피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음 속의 잡다한 것을 버리고 욕심없이 사는 것이 그만의 젊음유지법인 셈.

남녀가 만나 부부가 된후에는 부부싸움 없이 살수는 없다. 양순자 씨도 그랬다.

그러나 이제와 생각하니 '왜 그렇게 필요없이 소모적인 싸움을 계속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나고보면 모두 쓸데없는 감정대립이었고 아무런 가치도 없을 뿐더라 해결책도 없는 싸움이었을 뿐이다.

오늘이 내 인생 마지막 날이다 생각하면 그렇게 쓸데없이 허비할 수 있을까.

 



지난 1997년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사형이 집행된 적이 없지만 무수한 사형수들이 현재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교도소에서 사형수들을 만나온 양순자 씨의 증언에 의하면 사형수들은 집행 날은 모르고 집행장으로 간다고 한다.

갑자기 문을 열고 교도관 몇사람이 들이닥치면 오늘이 가는 날이구나 하고 직감할 뿐이었다.

어떤 사형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물을 쏟고 일어서지도 못한다. 어떤 사형수는 소리 소리 지르면서 '나는 못가, 나는 못가'하고 통곡을 한다.

양순자 씨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죽었다고 생각하고 한번 살아보라. 그러면 용서 못할 일도 없고 싸울 일도 없고 속상해 할 일도 없다. 하루가 덤으로 오는 보너스 같다. 그래서 매일 고맙게 된다"고 조언했다.

암을 겪어보니 자신의 몸속 장기의 신기로움도 새삼 느끼게 됐다.

몸속 장기들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예민하다. 이제와서야 '내가 머리로 얘들을 함부로 대했구나' 반성하게 됐다고.

그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내 몸속에는 내란이 일어난다. 내 몸이 편안하면 암세포도 자라나지 않지만 음지만 보고 흠잡을 곳만 보고 내가 가진것을 감사할 줄 모르면 몸은 병이 들게 된다"는 생각도 밝혔다.

최근 극악한 흉악범죄가 늘어나고 있어 사회적으로 사형집행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반면 사형제도는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시킨다며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 또한 공존한다.

상담해온 사형수중 11명이 떠나는 것을 지켜봐온 양순자 씨의 속마음은 어떨까.

그는 "유영철 같은 경우는 21명의 무고한 생명을 해쳤다. 그 피해자들에게는 한명당 5~6명의 가족은 딸려 있을 것이니 결국 유영철이 해친건 단지 21명이 아니다. 그 가족 모두를 폐인으로 만든 것이다. 교도소 안에서 그 사형수들이 속죄한다고 피해자들이 살아돌아올 수 있나. 그들이 살아있는 한 그 피해자 가족들의 원한과 증오는 멈추지 않는다. 피해자들의 고통에 마침표를 찍어줘야 한다고 본다"며 우회적으로 사형집행을 찬성했다.

부모를 죽인 박한상은 양순자씨에게 수십통의 편지를 보냈지만 내용은 늘 한결같았다.

양순자씨는 그에게 일말의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감옥에서 수십년간 자연사할때까지 먹고 갇혀 지내는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인가. 결국 피해자들이 벌어 낸 세금으로 그들의 밥을 먹이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양순자 씨가 만난 살해범 박철웅씨는 세 사람을 살해해서 자기집 정원에 매장했다가 3개월뒤 붙잡혔다.

그는 사형되기 전 구치소 안에서 '나처럼 살지 말아라'라는 의미에서 참회록을 썼고 그 인세로 심장판막증을 앓는 세 아이가 수술후 새삶을 살았다.

"손뜨개질을 하다 보면 한 코 한 코 잘 뜨다가 어느순간 한 코를 놓치는 일이 있다. 한참 실을 뜨다가 뒤늦게 한 코가 빠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작품을 제대로 완성하려면 실을 풀어 코가 빠진 지점까지 되돌아 가야한다. 풀기가 아깝다고 그대로 가면 불량품이 된다"며 저자는 후회로 통곡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기를 바란다.

궁극적으로 양순자 씨는 세상살이가 힘들다고 버거워하는 독자들이 희망을 갖고 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어른 공부'는 읽는 것만으로도 내가 성장한다고 느껴지는 책이다.

대부분의 사형수들이 제대로 된 부모밑에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어머니가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양순자 씨는 "아이를 지키는 것은 바로 어머니의 힘이다"라면서 "아이를 언어로 교육시키려 하지말고 몸으로 행동으로 보여줘라. 우리 아이가 어떻게 커갈지는 지금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저 오랜 시간동안 사형수들의 옆에서 지켜본 양순자씨의 얘기에 "사형=반대"라는 막연한 생각에 조금의 의식 변화를 주는 기사 내용이네요!

 

#감사합니다.

#잘 키워 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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