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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혁명당 사건때 사형 확정시킨 대법원장 이력.
게시물ID : sisa_2266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SKY!
추천 : 11
조회수 : 49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9/16 03:40:22

민복기 ( 1913년 ~ 2007년 7월 13일 ) - 인민혁명당 사건 당시 대법원장.


1937년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합격
1939년         경성지방법원 판사
1945년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1947년-1949년         법무부 검찰국장 겸 대검찰청 검사
1950년-1951년         대통령 비서관
1961년-1963년         대법원 판사
1963년-1966년         법무부 장관
1968년-1978년         대법원장

1977년         국가질서확립에 대한 공로로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여
1980년-1984년         국토통일원 고문
1986년         헌정제도연구위 위원장
1986년         법무법인태평양 고문

2000년         제8회 자랑스러운 서울법대인상 수상


민병석의 아들이다.

민병석은 을사오적인 이완용이라는 개새끼와 사돈지간 / 처내종 관계였고, 이것만으로도 알수 있겠지만 친일파다.

성씨를 보고 짐작할수 있겠지만 민비와 친척 관계다. 그래서 민비 시절에는 민비빨로 출세가도를 달렸다.

1889 년 ~ 1894 년동안 평안감사를 지냈는데, 온 평안 사람들의 증오를 받을 정도로 악정을 펼쳤다.

1910 년 한일병합조약, 통칭 경국치에 찬성해서 경술국적 타이틀을 획득했고, 일본에게 자작 작위를 받았다.

의민태자와 일본 왕족인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를 결혼시키는데도 개입하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에도 14년간 재임했다.

어쨋든 부패+친일파 새끼고, 장남인 민홍기, 차남 민복기와 함께 친일파로 공식 등재되었다.


민복기 본인또한 친일파이며, 1940 년 경성지방법원 판사였다.


해방후 미 군정청 사법부 법률기초국장 겸 법률심의국장을 역임하고, 법무부 검찰국장 겸 대검찰청 검사, 서울지검 검사장, 대통령 비서관, 법무부 차관을 역임하였다. 1954년 11월 30일 현재 외자구매처 차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1955년부터 1956년까지 검찰총장, 1963년부터 1966년까지 법무부장관을 역임하였다. 1968년 10월 21일 제5대 대법원장에 취임, 1973년 3월 14일에 다시 제6대 대법원장으로 연임되었다.


1975년 4월 8일 대법원장 재임시, 이른바 인혁당 사건(인혁당재건위 사건)의 상고를 기각해 8명의 사형과 8명의 무기징역, 그 외 피고들에게 15~20년 징역형 등을 확정했다. 1978년 12월 21일 정년퇴임하였다. 이로써 초대 김병로 대법원장의 재직기간 9년 4개월보다 10개월이 더 많은 10년 2개월간을 재직함으로써 법조사상 최장수 대법원장 기록을 세웠다.


1978 년에는 '국가질서확립' 에 대한 공로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국민훈장중 최고등급) 수여받았다.

1980년 국정자문회의 위원에 위촉됐다. 1981년 4월 23일 전두환에 의해 국정자문회의 위원에 선출되었다. 1987년 11월 4일 총리공관에서 열린 만찬에 국무총리 김정렬의 초청을 받았다


2000 년에는 서울대 법대로부터 제 8회 '자랑스러운 서울법대인'  으로 선정되어 수상.


아들 둘은 기업인, 한명은 법조인이다.


사형 판결을 내린 판사들은 민문기 , 안병수 , 양병호 , 한환진 , 주재황 , 임항준이다. 이일규 판사는 혼자서 원심 파기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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