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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한별 컬럼] 조선일보의 대미 저자세, 위험수위 넘어 커밍아웃
게시물ID : sisa_245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강적
추천 : 14/7
조회수 : 460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06/10/09 10:33:14
[문한별 컬럼] 조선일보의 대미 저자세, 위험수위 넘어 커밍아웃
[데일리 서프라이즈 2006-10-09 10:12]    
"정부수립 이래 외교라는 이름 아래 45년의 대외적 행위가 있어왔지만 그것은 좀 과하게 표현하자면 굳이 외교라고 할 것까지도 없었다....우리의 외교는 항상 남의 그늘에 묻혀 독자성 독창성을 잃었다...."
"한마디로 우리 외교는 편싸움외교, 패거리외교를 벗어나지 못했다. 어떤 외교적 명제가 있을때 우리는 항상 미국이 어느 쪽인가를 살폈다...그리고 미국의 뒤에 가서 줄을 섰고...손을 들었다. 그리고 북한만 반대하는 쪽이면 어느 쪽도 찬성했다...."
"냉전체제가 와해되면서 우리의 외교기회는 넓어지고 있고 또 더 넓어질 것이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도 경제력의 성장과 함께 높아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제 덮어놓고 미국-일본 서방을 따라가는 줄서기외교를 지양해야 한다. 우리의 외교는 어디까지나 우리의 국익을 우선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제 변화를 읽을 줄 아는 능력, 전체의 판을 볼 줄 아는 시각이 절실히 필요하다. 누구 말처럼 설거지 외교의 수준에 한국외교를 더이상 방치할 수는 없다."

거의 운동권 내지는 심하게 말하면 '주사파 빨갱이'(조선일보적 표현)의 입에서나 나올 법한 이 무시무시한 말을 내뱉은 사람이 누구일까? 놀라지 마시라. 조선일보의 인격적 구현이랄 수 있는 '언론인' 김대중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김대중 칼럼, <줄서기외교 끝났다>, 1992.10.25)
그가, 얼핏 들으면 반미를 부추기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는 이런 말들을 거리낌없이 할 수 있었던 것은, 92년 당시 미 대선에서 민주당 진영의 클린턴 정부가 들어설 것이 거의 확실시되면서 노태우 정부가 당혹해 하는 것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친미본색' 조선일보가 한국의 국익을 미국과 구별해서 생각하고, 미국만 일방적으로 따라가는 줄서기외교, 편싸움외교, 패거리외교, 설거지외교를 지양해야 한다는 날선 목소리를 가다듬은 것은 이때가 유일하다.
그리고 2001년 1월. 클린턴에 이어 부시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북 햇볕정책을 추진하던 김대중 정부는 큰 타격을 받게 됐고, 이와 동시에 조선일보의 음색 또한 "한국외교에 있어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막중하다. 그런 만큼 대미접근은 신중하고 치밀한 전략을 사전에 전제해야 한다"며 자동으로 복원됐다.(사설, , 2001.1.10)
이후 북한을 둘러싸고 강경 일변도의 부시와 햇볕정책을 유지하려는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이 부딪힐 때마다 조선일보는 "동맹간에 이 같은 이견이 발생하는 것은 결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국민은 불안하기만 하다"는 식으로 김 대통령을 타박하며 부시의 미국을 싸고 돌았다. '줄서기외교는 끝났다'고 선언한 조선일보의 김대중이 '줄서기외교를 해야 살아 남는다'고 말을 바꾼 것도 이 무렵이었다.
"한국, 어느 쪽에 설 것인가?" 제목부터 거시기한 칼럼에서 자칭 '직필'(直筆)의 화신 김대중이 상대따라 어떻게 입술을 뒤집는가를 직접 감상해 보시라.
"9·11사태 이후 국제질서가 재편되면서 한국은 나라의 장래를 가름하는 중대한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해 우리는 이른바 「문명권과 이에 도전하는 질서, 둘 중에 어느 쪽에 설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미국의 지도부가 이제 미국이 테러의 대상이 되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을 것임을 전세계에 천명하면서 세계를 「우리 편」과 「테러 편」으로 양분하고 전세계 나라들로 하여금 어느 쪽에 설 것인가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이런 자세가 옳으냐 그르냐의 가치판단 문제는 별개로 이것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며 우리처럼 미국과의 관계를 중대한 변수로 지니고 있는 나라는 가타부타 이전에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한 나라가 국제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마음에 없는 소리도 해야 하고 하기 싫은 일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들의 숙명이다."

복기하기조차 싫은 조선일보의 변신을 부러 되새김하는 까닭인즉, 조선일보의 이런 '대미 저자세'가 사대의존의 논조를 넘어 언론의 ABC라 할 기사노출 내지는 작성의 바로미터로까지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 없이 비근한 예만 들어보자.
(1)조선일보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나라당의 '조공외교' 파문을 끝내 활자화하지 않았다. 한나라당 방미단장인 이상득 의원 입에서 “옛날에 우리가 죽지 않으려고 조공도 바치고 책봉도 받아가면서 살아남지 않았느냐”는 기가 막힌 망언이 튀어 나왔음에도 전혀 못 들은 척 귀를 닫았다.
입만 열면 '독자의 알권리'를 우려 먹는 신문이 왜 그랬을까? 망언의 주인공이 한나라당 의원이라서? 아님 괜히 이런 말을 보도했다가 미국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감만 더 커질 것 같아서? 그래서 '파문'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발언이 나왔다는 '팩트'조차 꿀먹은 벙어리마냥 굳게 입을 다물었나?
▲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아미티지 위협을 다룬 기사.(2006.9.23, 16면) ⓒ조선일보PDF 

(2)조선일보의 이해할 수 없는 보도행태는 이것만이 아니다. 조선일보는 세계를 경악케 한 아미티지 전 미 국무차관보의 파키스탄 위협발언마저 '비판'을 말끔히 세탁한 채 500자도 못되는 글자수로 단촐하게 마무리하는 놀라운 기술을 선보였다.
그런데 "미국의 대테러전쟁에 협조하지 않으면 파키스탄을 석기시대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한 아미티지의 위협을 한 마디 비판도 없이 '그런 말이 있었다'는 식으로만 짤막하게 보도하는 것이 가능한가?
▲ ⓒ 
아미티지의 발언으로 테러전쟁을 수행한답시고 온 세계를 전쟁의 공포 속에 몰아넣은 미국의 정체가 만천하에 폭로됐다. 자유와 정의를 독점한 미국이야말로 진정한 악의 축이며, 조선일보가 추종해 마지 않는 '팍스 아메리카나'란 기껏해야 조폭의 평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조선일보가 진정 평화와 자유, 인권에 지대한 관심을 쏟는 신문이라면, 아무리 상대가 미국이라 하더라도 입바른 소리를 한번 쯤은 했어야 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한다'는 신문이 그 정도도 못 한대서야 말이 되는가 말이다.
폐일언하고, 한국의 제1 야당 국회의원들이 워싱턴을 향해 '조공외교, 책봉외교'를 뇌까리며 머리를 조아려도 끝내 눈을 감고, 아미티지가 조폭을 능가하는 위협을 일삼아도 3자연(然)하는 무심한 표정으로 비판의 말을 탈색한 것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버린 조선일보의 대미 저자세를 커밍아웃하는 것에 다름 아닐 터다.
이런 신문지가 북한에 대해서는 새삼 '자존심'을 들먹이며 한국 정부의 '저자세'를 쉬임없이 질타하는 것 자체가 웃음을 거세당한 대한민국의 블랙코미디 아닌가.

문한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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