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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관련] 내가 잘못 알고 있던 사실들
게시물ID : sisa_4073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gt.Pepper
추천 : 3/2
조회수 : 46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6/25 21:19:39
1. 1950년 6월 25일 새벽 예측못한 북한군의 기습작전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
-> 아닙니다. 미국은 훨씬 전부터 이미 북한 병력의 이동상황을 알고 있었고 소련-중국과 북한이 미리 이야기 한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 남한 정부도 전쟁발발 최소 3일 전엔 북한군 병력의 70% 이상이 38선 부근에 집결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2.  1.4 후퇴는 인해전술 때문이다?! 
-> 아닙니다. 당시 연합군 병력 32만, 중공+북한군 전력 23만 이었답니다.
    번쟁에 임하는 각오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3. 왜 10월 1일이 국군의 날인가?
->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이후 우리 군이 처음으로 38선 이북으로 진격하였습니다. 그 날이 바로 10월 1일이어서 국군의 날로 지정되었습니다.
 
참고로 6월 25일 전쟁발발 -> 9월 인천상륙작전 -> 바로 이듬해 1월 4일이 1.4후퇴입니다.
그로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완료되기까지 약 2년 6개월의 기간동안
 
1. 엄청난 민간인 사상자 발생
2.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도저히 믿기 힘든 이승만의 권력욕
   (이승만은 조국의 독립, 나라의 평화, 통일국가 완성 등과 같은 모든 것에 '내가 대통령'이란 전제를 달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해방이 된다해도, 평화가 온다해도, 통일이 된다 해도 '내가 대통령이 아니면 난 반대' 란 생각을 하고 있었죠.)
   가장 대표적인 사건으로 미국이 휴전협정을 하려 분위기를 막 조성하고 있을 때 이승만은
    '미 헌병'이 지키고 있던 거제 포로수용소를 습격하여 북한군 포로를 석방하죠.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고 합니다. 재임기간 통털어 그런 적은 이날 단 하루였다고 하죠.)
3. 사회 기반시설의 약 90% 파괴
   -> 북한군과 중공군은 회퇴하면서도 학교나 성당 등의 건물은 그대로 두고 철수한데 반해
        연합군측은 북한군이나 중공군이 다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다 부쉈습니다.
        연합군(88%는 미군이죠)에 의해 파괴당한 시설이 오히려 더 많은 정도라고 하네요.
 
6.25에 관한 책을 읽을수록 왜 그 전쟁이 아직도 계속된다고 하는지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
지금의 한국사회에 만연한 가치관이나 패러다임을 보면 그 기원이 대부분 6.25 전쟁에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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