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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누가 배신자인가
게시물ID : sisa_47626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하연.
추천 : 5
조회수 : 35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12/30 19:51:34
갑작스러운 파업철회 소식에 많은 분들이 충격을 받았을거라 생각합니다. 일순간 멘탈이 날아가는 느낌이었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멘붕을 준 주체들을 배신자라며 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 그게 부적절하며 매우 불합리한 비판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투를 신경쓰는게 좀 불편하니, 본론은 편하게 얘기하도록 하죠.


오전에 갑작스러운 철도파업 철회뉴스가 나왔고, 잠시 혼란이 있었으나 결국 철도노조 지도부의 기자회견을 통해 파업철회가 확실해졌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두고 ‘배신’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들의 호소로 광장에 모였는데, 정작 그들은 빠지는 것이 말이나 되냐고 성토하고 있는 것이다. 그 기분은 충분히 이해된다. 우린 먼저 앞에서 당당히 맞서던 그들을 지지하기 위해 모였었으며, 그들과 함께 철도를 지켜내고 나아가 박근혜를 규탄하고자 했으니까. 그런데 고작 이틀만에 대열에서 이탈한다니. 사태의 핵심에 철도가 자리하게 되었고, 광장에 모이는 명분이 파업의 지지가 되었는데, 여기서 파업이 중단되면 구심점이 날아가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 충격을 철도노조에게 전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철도 파업은 중단되었지만, 철도노조가 민영화 지지로 입장을 바꾼 것은 아니다. 비록 파업이라는 중요한 동력은 포기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민영화에 반대하고 있다. 현정권을 규탄하고 있다. 즉 그들은 투쟁의 최전선에서 깃발을 휘날리며 격렬히 맞서싸우는 위치에서 다른 저항자들과 함께 나란히 서는 위치로 돌아온 것 뿐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철도가 사태의 핵심인가. 저 불법정부를 규탄할 말은 참으로 많은데 왜 철도인가. 답은 간단하다. 그들이 최전선에 있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 정부를 규탄했지만, 거리에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시국선언이 줄을 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선언일 뿐이었다. 집회도 여러번 있었지만 현정권에 위기감을 불러일으킨 적은 없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영위하며, 그저 박근혜가 무력화되기를 소망할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사상 최장기간의 철도파업이 벌어지고, 민주노총이 침탈되며, 결국 총파업이 선언되니 모든 이목이 거기에 집중된 것이다. 그렇게 정권은 그들에게서 위협을 느꼈고, 우리는 그들에게서 희망을 얻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안도하며, 우리는 좌절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한번더 질문을 던져보자. 왜 그들이 우리의 희망인가?
대체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그들이 자신의 일터를 떠나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해가면서 투쟁할때, 우리는 무엇을 포기했으며 무엇을 각오했는가. 독재자를 끌어내리는 것은 분노한 시민들의 힘이라고 버릇처럼 말했지만, 그 시민들은 대체 어디에 있었는가.
2008년의 시민들은 그 누가 앞서 나가지 않아도 먼저 앞서 나갔다. 그 누구보다도 먼저 청계광장에 있었으며, 우리를 따라 각종 시민단체와 정당, 노조들이 대오를 이루었고, 그랬기에 그 누구도 어떤 특정 집단의 힘에 의존하지 않았다. 앞에 서줄 사람이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누군가 앞에 서있던 사람이 힘들어서 뒤로 빠지면 다른 사람이 앞을 채우고, 그렇게 휴식을 취한 사람들이 다시 앞으로 나왔다. 그러나 오늘 2013년 12월 30일의 사람들은 그때와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앞에서 투쟁하던 이들이 빠지자 그들을 배신자라고 욕하고 있다.

굉장히 부조리하다.
누가 누구를 배신자라고 욕한단 말인가. 우리는 28일날 고작 반나절의 시간동안 추위에 떨며 거리에 있었을 뿐이지만, 그들은 더 가혹한 22일을 투쟁해왔다. 우리가 잃은 것은 주말 하루뿐이고 우리가 각오한 것은 피로와 감기 또는 약간의 충돌이지만, 그들이 잃은 것은 일상 그 자체였으며 그들이 각오한 것은 직장과 그 이상의 것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최전선에서 물러났다. 우리는 일상속에서 잠시 거리로 나왔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그들은 거리에 계속 나와있었다가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부터 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얘기는 넘기자. 그런 얘기나 하고 있을 상황은 아니니까.

문제는 이제부터다.
민주노총의 주말 투쟁은 계속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태도다. 누군가가 앞에 서주기를 바라고, 누군가가 위험을 부담하길 바라지만, 그 누군가가 물러났을때 그 자리를 대신할 생각은 전혀 없고 배신이라고 욕하기 바쁜 우리의 태도 말이다. 아주 대놓고 말하건데, 그런 식으로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저 최전선에 섰던 이들만 차례로 희생양이 되어 스러져갈 뿐이다. 적의 희생양이자 우리의 희생양이다. 지금 이 나라가 변해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일상은 온전히 유지한채로 다른 누군가가 변화를 이뤄주길 바라는 우리의 태도가 만들어낼 희생양들이다. 

그러니 결국 배신자는 우리다.
최전선에 있던 이들을 연대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는 커녕, 더이상 우리 대신 피를 흘려주지 않는다고 배신자라고 욕하는 그 행동이야말로 배신이다. 그런 식이라면 더 이상 그 누구도 앞에 서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한 발짝 내딛으면 환호해주지만, 거기서 한 발짝 물러나면 비난이 몰아치는데 그 누가 앞으로 나서고 싶겠는가. 연대의 의미는 잊은채 그저 응원하는 역할로 만족하려는 이들뿐이라면 앞으로 나서야할 이유가 없다. 철도노조도, 민주노총도, 정당들도, 종교인, 예술가, 법조인, 아니 그 누구라도. 메시아가 아니다. 단지 어깨를 나란히하고 불법정권에 맞서싸울 동지일 뿐이다. 그리고 이제 철도노조는 최전선에서 물러났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앞으로 나서야 할때라는 말은 접어두겠다. 그건 쉬운일이 아니니까. 솔직히 나도 그건 사정상 어렵고. 

하지만 최소한, 그들을 대신해 최전선으로 나설 것도 아니면서 뒤로 물러났다고 배신자가 어쩌니 하는 말은 하지말자. 
그건 자신이 그들과 연대했던 동료가 아니라 단지 그들이 우리를 구원해주길 바랬던 구경꾼에 불과하다는 고백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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