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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이 없는 사회
게시물ID : sisa_50313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광야에서
추천 : 3
조회수 : 471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4/04/19 13:42:02

1.
이번 참사는 평온한 대한민국에 갑자기 일어난 비극이 아니다.
다리가, 건물이, 지하철이, 배가, 강당이 무너져 내리고 사고가 났던 과거가
또 다시 반복된 것이다.

경제규모가 어떻고, G20 개최로 국격이 어떻고 하는 나라에서
(이 말들이 빈 껍데기일 뿐이라거나 허망한 말이라는 건 일단 제껴두자.)
어떻게 이런 사고가 나고, 또 이렇게 어처구니 없이 많은 피해자가 생기는지..
어쩌면 그 이유와 답을 모르는 게 차라리 누군가를 원망하는 데 더 편할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우리 사회엔 시스템이 없다. 있더라도 빈약하거나 형식적이기만 하다.

사고를 예방하는 시스템.
사고가 났을 때 재빨리 대처해서 피해자를 줄이고 구조하는 시스템.
자기 자리에 맞는 책임을 지고 의무를 다하는 시스템.

시스템의 부재가 사고를 키우고 우왕좌왕하게 만들었고,
사고를 책임져야할 사람이 도망가는 황당한 모습을 보게 만들었고,
가장 기본적인 인원수 확인을 들쭉날쭉하게 만들었고,
정부의 발표는 오락가락, 결국 거짓말에 거짓말을 거듭하게 만들었다.

이래도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
원칙과 규정보다 뇌물과 청탁에 익숙한 풍토..
문제가 생기면 잘못된 관행과 권위로 해결하는 사회..
경제적 이익 앞에 기본 설계를 넘어서는 개조를 하는 회사..
사고가 날 때마다 개선을 외치지만 매번 공허한 메아리일 뿐인 정부..

이런 사회에서 시스템은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럽고 번거로운 짐일 뿐이다.
'거 세상 살 줄 모르네', '이렇게 해도 괜찮아', '그래 니 잘났다'..


2.
정의가 없는 사회에선 시스템은 필요없다.
시스템이 없는 사회는 정의가 없는 사회의 적자(嫡子)다.
돈과 권력, 혈연과 지연, 뇌물과 청탁, 룸싸롱으로 해결이 다 되니까.
시스템이 해야할 일을 음지에서 덮고..
시스템으로 못하던 일이 높으신 분의 말 한마디로 해결된다.
그러니 그저 높으신 분의 행차만 바라게 되고.. 약삭빠른 사람은 줄 대느라 분주하다.
이런 환경에서 굳이 시스템을 만들자는 사람은 바보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사회가 병들어가는 동안.. 사고가 터지고 사건이 생기면..
책임져야할 사람들은 양심을 내팽개친 채, 제 한몸 지키자고 도망 가기 바쁘다.
아니, 도망만 가면 그나마 다행.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더 부자가 되고 권력을 거머쥔다.
IMF때, 또 그 이후로.. 회사는 망해도 회장과 사장은 더 부자가 되었던 걸 숱하게 보아왔다.
여러 사학들에서 부패하고 전횡을 일삼던 이사진과 일가족들은 다시 권력을 찾아갔다.
결국 피해는 제일 아래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알바, 학생들, 선량한 시민들의 몫..

정의가 없으니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될 리 없는 사회에서..
일이 터지면 책임져야할 사람들은 도망가고..
감옥에 가야할 사람들은 휠체어에 앉아 병원에 숨는다.
시스템이 채워야할 빈 자리는 평소에 그 권력 밑에서 숨죽이고 있던 일반 시민들이 메꾼다.
그렇게 시민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채워놓은 자리엔, 얼마 안가 다시 그들이 화려하게 돌아온다.
왕의 귀환! 그리고 다시 사고가 터질 때까지 권력을 누리며 마법의 주문을 외운다.
'저 놈 빨갱이다', '종북이 나타났다', '자유 민주주의 만세!', '갱제(!)가 어렵다'..

그렇게 누군가 통제를 벗어난 권력을 누리고, 방관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동안..
방값을 못낸 모녀는 세상을 떠나면서도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죄 없는 어린 학생들은 물 속에서 생을 놓치고 있고,
죄 없는 어린 아이는 가족을 잃고,
죄책감을 못이긴 교사는 스스로 목을 맨다.

정의는 죽고 시스템은 없다.


3.
언제쯤이면 시스템이 제 자리를 찾게 될까..
권력이 평소엔 겸손하게 스스로를 낮추다가..
사고가 나고 사건이 터지면 책임있게 앞장 서는 모습을..
언제쯤이면 볼 수 있을까..
아니 시스템이 잘 돌아가면 이런 사고도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아까운 생명을 헛되이 잃게 되는 비극도 줄어들지 않을까..

오늘은 다시 또 4.19..
부정부패와 잘못된 사회에 항거했던 그날은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왔다.
이 시기에 또 다시 터진 이번 참사는
시스템의 부재, 정의의 부재를 또 한번 가슴 아프게 확인시켜주고 있다.

언제까지 시스템의 부재로 시민들이 고통 받아야하는지..
참 안타깝고 애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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