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5.18 희생자 몇몇 분들 이야기입니다.
게시물ID : sisa_5135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찌찌바
추천 : 4
조회수 : 139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5/18 13:40:28
윤상원.jpg

윤상원 (31세): 전남대 졸업후 78년 주택은행 입사했으나 

6개월만에 사표 쓰고 노동운동에 헌신하던 중 5.18항쟁에 참여하여

 항쟁지도부 대변인으로 활동하다가 5월 27일 도청에서 계엄군의 총격으로 사망

  최후까지 도청에 남아 여자와 학생들을 돌려보내고 사망하신분입니다.

5.18 추모곡 임을위한 행진곡은  

함께 노동운동을 했던 박기순이라는 연인이 78년 12월 연탄가스로 사망하여 동료들이

 82년 박기순과 윤상원의 영혼 결혼식을 올려주었고 이를위한 노래가 임을 위한 행진곡임

손옥례.png

손옥례: 21일 대검으로 왼쪽 젖가슴이 잘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진압봉으로 짓이겨지고 아랫배에는 수십발의 총탄을맞고

가장 잔인하게 살해됨.

 남동생은 계엄군에 맞아 정신분열증세로 고통받고 아버지는1년뒤에 어머니는 6년뒤에 으깨져서사망

오월가에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 날이 다시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부분이  이분에게서 나온 가사라합니다.

제1역_3열_60호(최미애)_300.jpg


최미애 : 임신 8개월의 신부 남편이 집에 돌아오지않자 대문밖에 나가 기다리다가 총에맞아사망 뱃속의 아기도 사망 


김경철.png


5.18 최초 희생자

김경철  농아 5월18일 딸의 돌잔치? 가족모임후 처남을 버스터미널에서 배웅하고 친구들과 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놀다가 계엄군에게 뒤통수를 맞고 쓰러짐 병원 에 실려갔으나 19일 03시사망 잔혹하게 맞아서 뒤통수 깨지고 왼쪽눈알 터지고 오른팔 왼쪽어깨 엉덩이와 허벅지등 온몸이 두부처럼 으깨져서 사망 

농아라는점이 당시 광주 의 상황과 비슷했고 5.18하면떠오르는 대표적 인물이 됨.

sacrifice_09.jpg


방광범 

전남중 1학년 5월24일 원제마을 저수지에서 친구들과 수영하다가

 지나가던 계엄군이 쏜총을 머리에맞고 사망  아버지는 정신분열증으로 고통



sacrifice_08.jpg


김부열 

조대부고 3학년  19일계엄군이 여대생을 속옷만입히고 토끼뜀 시키는것을 보고 분노 

20일부터 항쟁에 참여 시민군으로 활동중 지원동 야산에서 주택가에 총격을 가하는 계엄군을 쫒아가다 사망 

사체에 계엄군이 잔인하게 머리와 팔을 자름

sacrifice_12.jpg

전영진


대동고 3학년이던 전영진군은 5월 18일 참고서를 사기 위해 시내에 나갔다고 공수부대에게 얻어맞고 돌아와 치솟는 울분을 참느라 밥도 먹지 않았다. 
21일 그는 도청 옥상에서 정조준한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졌다.


sacrifice_01.jpg


박금희

헌혈을 호소하는 방송차량을 보고 기독병원에서 헌혈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계엄군의 총격에 배를 맞고 기독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지고 말았다.

sacrifice_07.jpg
문재학(17세)

광주상고 1학년이던 문재학군은 21일부터 시위에 참여하여 27일 도청에서 숨진다. 
26일 밤 도청으로 찾아온 부모님에게 “얼마나 많은 광주시민들이 죽었는데, 집에 돌아가 편히 잠잘 수 있겠어요? 도청에 남아 심부름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부모의 간곡한 요구를 뿌리쳤다. 
뻔히 죽을 중 알면서도 도청에 남아 시민군들과 함께 했던 문재학군의 정신은 우리 청소년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sacrifice_02.jpg
박성룡 (18세)

“공수부대는 이 나라 군인이고 국민인데 왜 부모형제 같은 광주시민을 이렇게 무참히 죽이는 것인가!”19일 파출소가 불타는 것을 구경하러 나갔다가 21일 저녁에 어머니께서 걱정하고 계실까봐 집에 들어와 토한 울분이었다. 
그는 3일 만에 집에 들어와 광주역에서 사람들이 총에 맞아 죽었고 광주공원에서는 자기 친구가 공수부대에게 맞아 죽었다고 하면서 어머니 앞에서 분노를 누르지 못했다. 그는“광주시민을 이렇게 다 죽이고 있는데 젊은 놈이 어떻게 집에만 있을 수 있겠느냐!”며 26일에 다시 집을 나가 27일 도청으로 들어가 27일 새벽 최후항쟁에 참여하여 숨졌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