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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정치에 대한 얄팍한 단상.txt
게시물ID : sisa_51588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iramisu
추천 : 3
조회수 : 31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5/23 16:08:20
제가 정치에 대해서 뭘 아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개인적인 단상입니다. 

세월호 사건이나 이후 정부 대응을 보면서 분노하는 사람도 있고 세상이 원래 그런 거지 하면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지요. 최저임금법 개악 가능성을 보면서 분노하는 사람도 있고 원래 그런 거지 하면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근데, 많이들 하는 이야기지만, 이런저런 불합리한 일이 벌어질 때, 그런 불합리에 가장 궤멸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저소득층은 의외로 담담한 반면, 사회에 약간 부조리가 있더라도 당장 큰 피해를 입을 것 같지 않은 중산층이 오히려 더 분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걸 가지고 좌파들은 '도대체 왜 저소득층은 합리적인 생각을 할 줄 모르는가?' 라고 하고, 
우파들은 '어린놈들이 배부른 소리 한다' 라고 하지요. 

여기에 대해서, 어쩌면 모두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하나 할까 합니다.

중산층 vs 저소득층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나누는 기준이 아마 꽤 많겠지요. 저는 그냥 아마추어답게 '그럭저럭 살 만한가 아닌가?' 를 기준으로 나누겠습니다. 
반면, 부유층과 중산층을 나누는 기준으로는 약간 엄격하게 '꼭 본인이 일을 해야만 현재의 생활이 유지 가능한가?' 로 나누겠습니다. 
후자쪽의 기준은 어떻게 보면 너무 빡빡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당장, '아니 그럼 연봉 5억 벌면서 그 돈을 대부분 다 써버리는 고소득 전문직도 중산층이란 말이오?' 라는 반론이 가능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나누는 이유가 있는데, 차차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중산층

저런 기준으로 볼 때, 중산층은 3 ~ 50대에는 열심히 일해서 약간씩이나마 저축하면서 살고, 퇴직 후에는 본인의 저축을 까먹으면서 살다가 마침내 죽습니다. 그리고 자녀에게 크게 남겨주는 것이 없으니 자녀들도 부모와 동일하게 열심히 일하면서 살다가 죽겠지요. 뭔가 불쌍한 느낌이 드는 묘사이긴 합니다만, 사실 사회가 안정적으로 굴러가려면 중산층의 삶은 저래야만 합니다. 중산층이 열심히 살아서 자녀들에게 너무 많은 돈을 남겨주게 되면, 자녀들은 일을 하지 않아도 살 수가 있게 되고, 그런 사람이 너무 많아지면 사회는 노동 인구의 부족으로 인해서 무너집니다. 
가난의 세습이 우리 사회의 큰 문제라고는 하지만,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가난의 (중산층의 그것을 가난이라고 정의한다면) 
세습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원동력인 거지요. 

그런 중산층은, 처음에는 청운의 꿈을 안고 살지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차차 본인과 본인 자녀는 영원히 중산층의 삶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됩니다. 물론 예외는 있지요. 당장 저만 해도 지인 중에 백만 불 연봉을 받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은 계층 이동에 성공하는 케이스입니다. 하지만 이건 정말로 예외적인 케이스이고 우리들 중 대부분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근데 사실 중산층의 사람들은 '나름대로 똑똑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사람들' 이라고 (본인 스스로는) 믿기 때문에 본인 (최소한 본인 자녀가) 이 상류층으로 편입할 수 없다는 것이 매우 불공평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지요. 

뭐 그것까지는 괜찮은데, 사회를 굴리기 위해서 필요한 세금의 대부분을 중산층이 부담한다는 사실까지 깨닫고 나면 분노가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습니다. 약간 과장 섞어서, 사회가 굴러가면서 생기는 돈의 대부분은 상류층이 가져가고, 사회를 굴리기 위해서 필요한 세금의 대부분은 중산층이 부담한다는 말이 있지요. 물론 일대일 비교로는 상류층이 더 많이 내지만 집단 대 집단으로는 얘기가 다르니까요. 이런 부분이 정의롭게 돌아가려면 '소득세' 보다는 (상류층과 중산층의 '소득' 은 몇 배 차이밖에 나지 않습니다) '재산세' 가 (근데 그 결과 쌓이는 '재산' 은 수십 배 차이가 나지요. 쓰고 남은 돈을 모은 것이 재산인데, 버는 돈이 세 배면 저축하는 돈은 수십 배가 될 수 있으니까요) 국가의 주요 수입원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식으로 법이 바뀔 리가 없습니다. 노파심에 말씀드리지만 저는 지금의 대한민국이 세계 제일의 불평등 국가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그냥 현대 사회란 것이 본질적으로 저런 면이 있지 않겠나 하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지금까지 이야기만 보면 단순히 더 높이 올라가지 못하는 불만 수준으로 그칠 수도 있지만, 중산층은 불만 못지 않은 공포에도 시달립니다. 지금 당장 그럭저럭 살 만한 생활을 하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노동으로 인한 것인데, 덜컥 병이라도 걸린다든지 회사에서 잘렸는데 치킨집도 실패한다든지 하면 일 년 뒤에는 본인도 저소득층으로 떨어질 수 있거든요. 이건 근거 없는 공포가 아니라 주변에서 체험담이 끊임없이 들려오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결국 중산층은 야성향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상류층보다 못한 게 없는데 실제로는 삶의 질이 말도 안 되게 차이가 난다. 그리고 이 정도 삶이나마 보장된 것도 아니다. 아악 불공평하다. 이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법은 이 사회 구조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요.

저소득층

근데 저소득층은 이야기가 많이 다릅니다. 물론 저소득층도 중산층과 일정 부분 같은 문제를 가지고는 있습니다. 이를테면, 저소득층은 평생 가난하게 살다가 죽을 것이고 아마 그 자녀도 가난을 세습받겠지요. 하지만 이분들과 중산층 간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두 가지 있다고 생각하는 데요, 

첫 번째는, 중산층이 상류층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사실상 0% 인 것을 자각하고 있다는 것이 비해, 이분들은 본인 스스로가, 혹은 최소한 그 자녀들이라도, 중산층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도 중산층-상류층 간의 계층 이동에 비해서 저소득층-중산층의 계층 이동이 잦은 편이고요. 따라서 이분들이 미래에 가지고 있는 희망의 본질은 '사회가 더 평등해져서 내가 최저임금을 5% 더 받는 것' 이 아니라 '나 개인이 중산층으로 편입되는 것' 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아무리 진보 정당에서 '님들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서 우리 정당이 최저 임금을 8% 올려드리겠습니다' 라고 외쳐봐야 소용없지요. 왜냐하면 이분들이 원하는 것은 본인이 그 계층을 탈출하는 것이지 그 계층에 남아있으면서 월 소득 만 원 늘어나는 게 아니거든요. 오히려 자꾸 이분들에게 '님들 같은 사회적 약자' 라는 말을 자꾸 하는 것은 모욕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중산층이 상류층에게 '니가 나보다 잘난 게 뭔데?' 라고 느끼듯이, 저소득층은 중산층에게 마찬가지 감정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두 번째는, 이분들은, 약간 미안한 얘기지만, 본인들이 경쟁에서 패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자각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인간이란 것이 자존심 빼면 시체인지라, '나는 경쟁에서 패했다' 라는 명제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매우 힘들지요. 
따라서 '나는 경쟁에서 패한 것이 아니라, 사회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표현을 약간 바꾸기를 선택합니다. 
이 틈을 보수정당에서 파고들 수 있지요. '여러분 같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최저 임금을 올려드리겠습니다' 라고 진보 정당에서 이야기하는 동안, '여러분 같은 위대한 국민 덕분에 우리 대한민국이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보수 정당에서 말하는 것이 이분들의 자존감에는 더욱 와 닿을 수 있는 면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Self cocooning

'고치를 만들어서 그 안에 안주한다' 는 표현인데, 뉴욕 타임즈에서 언젠가 본 기사의 헤드라인에서 저런 문구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보수적인 사람과 리버럴한 사람은 각자 본인 보고 싶은 뉴스만 골라 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이 굳어질 수밖에 없고, 그렇게 십 년 이십 년을 살다 보면 결국 완전히 딱딱한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어, 이후에는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는 대화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는 기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부모님 복이 있는 편이었어서 어렸을 때도 중산층으로 살았고 저 본인도 그럭저럭 제 앞가림은 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나아가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잘난 내가 왜 더 나은 대접을 받지 못하는가! 나보다 못난 상류층 자제분들이 한 트럭인데!' 라는 생각을 종종 하면서 살았었는데, 문득 그게 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사회가 돌아가려면 소수의 상류층 - 다수의 중산층 - 약간 덜 다수의 저소득층이라는 구조가 확고해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바탕에서 생각해보면, 제가 야성향인 것도, 저보다 소득이 적은 사람들이 여성향인 것도 그냥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다면 '너는 가난한 주제에 왜 여당 편이냐?' 라는 질문 자체가 참 무의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짧은 생각이 나마 까먹기 전에 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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