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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순씨닷넷] 그동안은 가난했지만 행복한 가정이었는데,이제 널 보내니..
게시물ID : sisa_5206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ㅠoㅠ
추천 : 3
조회수 : 49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6/01 15:17:50
*출처: 원순씨닷넷 (http://wonsoonc.net/posts/5389eccbe3e89340bb0016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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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안녕 세상이여. 안녕. 그로버스 코너스. 엄마와 아빠. 시계의 똑딱거림도 안녕. 그리고 엄마의 해바라기, 음식과 커피. 새로 다림질해놓은 드레스, 그리고 뜨거운 목욕... 잠자고 깨어나는 것.
연극 <Our Town>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극 중에선 죽음 직후에 전생으로 잠깐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아이를 출산하다가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게 된 주인공 에밀리도 생과 사를 관장하는 자에게 애원하여 어린시절의 한 때로 돌아갑니다. 너무 특별하지도 너무 평범하지도 않은 일상의 하루를 선택해서 돌아가지만, 주어진 24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끝내 결국 스스로 죽음의 세계로 다시 돌아오기를 결정하게 됩니다. 죽기 전에는 몰랐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매 순간을 서로 제대로 마주볼 새도 없이 너무나도 빠르게 흘러버리는 1분 1초가 견딜 수 없어서 스스로 돌아온 것이죠.
엄마의 해바라기며 새로 다림질해놓은 드레스며, 겨우 돌아왔던 이승세계를 떠나며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건네는 그리움의 리스트는 참 소박하기만 합니다. 물론 시대배경이 자본주의가 성행하기 전이라 즐길거리 자체가 화려하지 않은 시대이긴 합니다만, 만약 이 작품이 현대를 배경으로 쓰여 졌어도 그 리스트는 마찬가지로 평범한 일상의 기억이 묻어난 것들일거란 생각이 듭니다.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에 유가족들과 조문객들이 아이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로 가져다 놓은 것들도 그랬습니다. 분향된 국화꽃 사이로 콜라며, 과자며, 그다지 비싸지 않은, 고인들이 평소에 즐겼을 일상의 물건들을 발견했을 때 나는 자연스레 <Our Town>의 에밀리가 했던 위 대사가 떠오르며 울컥거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소박한 일상의 파편들은 새삼 희생자들이 얼마나 어린 친구들인지, 그리고 사소한 것에 울고 웃었을 그들의 일상이 어른들이 강제한 지겨운 반복에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얼마나 찬란했을지 짐작케 했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짧은 마지막 순간에 간절했을 것들은, '그냥 딱 하루만 돌아와서 같이 잠만 자고 다시 돌아가도 여한이 없겠다'는 남겨진 가족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한 달동안의 멘붕에서 점점 벗어나 어찌되었든 산 자로서 일상으로 복귀하고 있는 우리들이 아무리 공감한다해도 마지막을 경험하기 전엔 알기 어려울 그리움과 고통입니다.
이런 일상의 파괴 후에도 정치는 참 비루하기 짝이 없습니다.
 
성찰을 피하고, 책임을 지는 시늉만 하고, 이용해 먹으려 들고, 떳떳하지 못하고, 정치게임이 성행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레르기를 가지는 것이 당연할 정도로 정치는 썩어 있습니다.
고인 물에서 나는 악취처럼 구린내가 납니다.
그러니 혹여 그 썩은 물이 내새끼한테 닿을까봐, 나의 부모는 이 시국에도 집회같은데 얼씬하지도 말고 가만히 있으라 합니다.
정치가 하도 부패하고 실망을 준 탓에 우리의 참정권은 자의반/타의반 박탈당해 왔습니다.
'그동안은 가난했지만 행복한 가정이었는데, 이제 널 보내니 가난만 남았구나'
사랑하는 이가 함께 하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던 일상까지도 박탈당했습니다.
똑같이 정치에 무관심했었을 가장과 주부들이 일상의 뼈아픈 상실 이후에 길바닥에 내앉게 된 것을 두고, 어떤 자들은 단편적으로 '정치적'이라고 표현하고 심지어 '미개하다'라고 합니다. 이 순간에도 좌빨과 종북을 운운하며, 순수한 유가족과 그렇지 못한 유가족을 나누고, 정치참여를 기준으로 좌/우를 나누려고 듭니다. 희생자들을 위해 눈물 흘리며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시민들이 연행되었고 청와대 앞 추운 길바닥에 내앉은 유가족들을 수많은 경찰과 경찰버스로 가로막았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이것이 과연 좌/우의 이념 문제인지 정말 묻고 싶습니다.
되려 우리들은 지극히 보수적인 이유로 정치를 다시 일상의 영역으로 복원시키려 하는 것 아닐까요.
바로 우리의 찬란한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서 말입니다.
지켜내지 못했을 때의 그 고통, 무력감, 죄책감, 자괴감과 절망을…우리 모두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으며 물려주고 싶은 유산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정치의 일상화가 필요합니다.
더러움에서 최대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것 만으론 내 새끼를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고,
나 자신 조차도 그 귀함을 일 분 일 초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나의 일상은 너무도 아름다운 나머지, 누군가 대신 알아서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목도했고,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경제 생활을 하듯, 일상을 지키기 위해 정치 활동도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 우리입니다.
살면서 소중한 것 하나 쯤은 제대로 지켜줄 수 있는 어른이고 싶습니다.
좌우 논리로 멋대로 나누려는 '배후세력'의 '선동'을 단호히 거절하고,
야유의 대상도 아닌, 환호의 대상도 아닌, 잠자고 깨어나는 것처럼 일상적인 정치를 시작했으면 합니다.
지금, 여기 우리로부터 말입니다.
:: Yeji Julia Cheon with wonsoonc.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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