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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광주 5.18 묘지에 참배 갔다가 세월호 유가족 분들을 만났습니다.
게시물ID : sisa_5930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HYU
추천 : 18/5
조회수 : 951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5/05/17 22:44:20
5.18 묘지 방문기.

국립묘지 참배에 앞서 
망월동 구묘역의 민족민주열사묘역에 먼저 갔었는데 우연찮게도 세월호 유가족 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민주노총과 합동으로 진행된 5.18 민중항쟁 추모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같이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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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희생자 분들 중 실종자는 65인입니다.
대부분 계엄군에 의해 살해 후 암매장되어 시신을 찾지 못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간혹 광주 전남 일대 야산 등지에서 시신이 발견되는 경우 
지금까지도 5.18 실종자 가족 분들이 가셔서 가족이 아닌지 확인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망월동 구묘역은 본래 5.18 희생자들이 묻혀계시던 곳으로, 본래 일반 공동묘지라고 합니다. 

이후 국립 5.18 민주묘지가 만들어지면서 5.18 희생자 분들은 대부분 국립묘지로 이장하셨고, 
사회 곳곳에서 자유 평등 정의 민주주의 등을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민족민주열사분들을 위한 묘역으로 탈바꿈한 곳입니다.

수많은 민주열사, 노동열사, 통일열사 분들이 묻혀계신데, 이곳이 원래 공동묘지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묘와 구분을 위해 열사의 묘에는 설명판이 옆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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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31일에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과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서울역 고가에서 분신서거하신 고 이남종 열사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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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시인, 민중시인으로 유명한 고 김남주 선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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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도 다 아시는 이한열 열사이십니다. 연세대생으로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의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서거하시고
마침내 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되셨죠.

그 밖에도 수많은 열사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신묘역으로 갔습니다. 구묘역과 신묘역은 붙어있기 때문에 조금만 걸어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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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묘지 기념탑. 내일 있을 관의 기념행사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더군요. 임을 위한 행진곡도 부르지 못하게 하며 5.18 정신을 또다시 훼손하고 있는 이들이 5.18 기념행사를 주관한다는 사실이 씁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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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수도 없이 많은 5.18 열사들.
시신을 찾지 못한 행방불명자가 60여명이나 됩니다. 대부분 계엄군에 의해 암매장당해 시신의 소재를 알지 못합니다. 
행방불명자 가묘만 모여 있는 묘역도 있습니다.
지금도 광주 일대 야산 등지에서 간혹 시신이 발견되면 실종자 가족분들이 혹시 내 가족이 아닐까 확인하러 가신다고 합니다.


5.18 민중항쟁의 최초 사망자로 18일 새벽 전북대에서 추락사하신 이세종 열사,

광주에서의 최초 사망자로 19일 처남을 버스터미널에 데려다 주고 집에 돌아오던 길에 계엄군에 붙들린 채 구타당해 말도 하지 못하고 살려달라고 빌다가 온몸이 으스러져 사망하신 청각장애인 김경철 열사,

옥중에서 단식투쟁 하다 사망하신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 열사,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시며 27일 새벽 최후의 전남도청 결사대로 싸우다 사망한 윤상원 열사와 
함께 야학운동을 했던 박기순 열사(두 분은 영혼결혼식을 하셔서 합장되어 계십니다. 두 분의 영혼결혼식에 바쳐지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가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입니다.),

시민군 부상자를 위해 헌혈을 하고 병원을 나서던 중 계엄군의 총탄에 복부를 맞아 사망하신 여고생 박금희 열사,

밖에 나간 남편이 걱정되어 집을 나서 기다리다 계엄군의 총탄에 머리를 맞아 사망하신 최미애 열사
(최미애 열사는 당시 신혼의 임산부였는데, 친정어머니가 딸의 사망소식을 듣고 나가니 딸은 길바닥에 뇌와 피를 쏟으며 죽어있는데 뱃속의 아기는 여전히 살아서 태동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광주 일대의 병원 이곳저곳에 전화를 하며 아기라도 살리려 했으나 아무도 오지 않아 결국 아기까지 죽고 맙니다.)

등 수많은 열사분들의 묘를 참배하고 왔습니다.


여전히 5.18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최초발포명령자가 누구인지 등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은 수없이 많고, 
극우세력의 폄훼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5.18을 잊지 맙시다. 열사분들께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됩시다.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싣고 어딜 갔지

망월동에 부릅뜬 눈
수천의 핏발 서려 있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 <오월의 노래 2>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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